SAPIO 2011.09.26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일본. 하지만 최근, 일본외교의 반격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저널리스트인 다케토미 가오루(武冨薫) 씨가 지적하는 건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일한의원연맹」이 물러난게 영향이라고 지적한다。
지진피해 직후 한국정부는 지진재해 직후인 3월 말에 다케시마(독도)에서 헬리포트 확장공사에 착수, 6월에는 대한항공기가 일반적인 비행루트에서 벗어나 일부러 다케시마(독도)상공을 시험 비행하는 「영공침범」사건이 발생, 이에 대해 대한항공기의 영공침범에서는 마츠모토 다케아키(松本剛明)・전 외무장관이 「영공침범이다」라고 항의하고 외무성 직원에게 1개월간, 대한항공의 이용을 금지했다. 일본 외무성이 한국에 명확히 「보복조치」를 취한 건 최근에는 없었던 일이다.
나아가 외무성은 다케시마(독도)영유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방침을 검토 중이다. 한국에 제소를 제의한다면 이전에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외무장관이 한국에게 제안한 이래, 49년 만의 일이 된다.
이런 반격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민주당정권은 센카쿠문제를 비롯해 영토외교에서 「저자세」를 비판받아왔지만, 본래 일본의 저자세외교는 자민당정권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잘못된 유산이기도 하다.
일본정부가 한국의 다케시마(독도)실효지배 강화에 수수방관해 온 배경은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초당파 「일한의원연맹(日韓議員連盟)」의 존재가 있다. 이들은 항상 한국과의 사이에서 파랑이 일지 않도록 융화노선을 취하고, 양국 간에 일이 발생하면 「부자는 싸우지 않는다(金持ち喧嘩せず: 부자는 계산이 빨라서 얻는것 없이 싸우지 않는다는 뜻)」는 듯, 일본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아 왔다.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 올해 8월에도 있었다. 「다케시마 강경파(竹島強硬派)」인 자민당 국회의원 3명이 울릉도 시찰을 위해 한국・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입국을 거부당한 사건이다. 이때, 멤버 중 한 사람은 사전에 일한의원연맹의 중진인 자민당의 거물의원으로부터 「일본과 한국은 북한의 6자협의에서도 협력해 나가야만 한다. 여기서 일한관계를 악화시키는 시찰을 해서는 안 된다. 진짜 갈 생각은 아니겠지(日本と韓国は、北朝鮮の6か国協議でも協力し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ここで日韓関係を悪化させるような視察をすべきではない。まさか本当に行くつもりじゃないだろうな)」라며, 강한 압력을 받았다고 한다.
외무성에서도 「역대 주한대사는 일한의원연맹의 회장을 역임한 다케시마 노보루(竹下登)・전 총리, 모리 요시로(森喜朗)・전 총리 등, 친한파 정치가와 가까운 관료에서 기용되어 왔다」(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OB)고 한다.
외교교섭에서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자세를 유지해 온 결과, 자민당정권 말기인 2008년, 일본은 다케시마(독도)문제에서 역사적인 외교패배를 맛보았다.
그해 8월의 부시대통령의 한국방한 전, 미국정부의 지명위원회는 한국 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통령의 지시로 다케시마 표기를 「독도(独島)」로 정하고, 사실상 귀속지를 「한국(韓国)」이라 인정한 것이다. 미국은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때, 한국으로의 외교문서에서 「다케시마는 일본령(竹島は日本領)」이라 설명했기 때문에 이는 방침의 대전환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재개에 반대하는 반미데모가 펼쳐지고 있었다고는 해도 미국이 「다케시마(竹島)」를 한국에 판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 결정에 대해 당시 후쿠다 정권이 「미 정부의 일개 기관이 하는 일에 너무 과도하게 반응할 게 아니다(米政府の1機関がやることに、あまり過度に反応することはない)」(당시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관방장관)라며, 일체 항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케시마(독도)문제에서의 일본의 자세에 항의해 일시 귀국했던 한국의 주일대사가 미국의 독도용인 후에 의기양양하게 일본으로 되돌아오자, 당시 야부나카 미토지(薮中三十二)・외무사무차관은 「잘됐다(結構なことだ)」라며 환영했다. 정말이지 자민당도 외무성도 무사안일주의 외교 체질에 푹 빠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불과 3년 전의 일본 외교의 모습이었다.
그 후, 일본에서는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로 긴 일한외교를 좌지우지해 왔던 자민당의 한국융화파는 정권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하토야마정권 시절에도 고등학교 지리의 신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 다케시마(독도)를 일본령으로 명기하지 않고,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전 외무장관은 「불법점거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도록 교섭하고 있다(不法占拠という言葉は使わないよう交渉している)」고 언명하는 등, 가능한 한국을 자극하지 않는 자세를 취해왔다.
이에 탄력을 받은 한국은 영공침범 외에도 다케시마(독도) 북서 1km 해상에 「종합해양과학기지」건설을 계획하고, 울릉도의 해군기지를 3배로 확장하는 공사를 시작하는 등, 실효지배를 강화. 너무 늦었다는 감은 있지만, 외무성의 영토파는 「여기서 국제사회에 의견을 전달하지 않으면 향후에 기회는 없다(ここで国際社会に声をあげなければこの先チャンスはない)」며 물러설 곳이 없는 상태에 내몰려있었다. 위기감에서 나온 반격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SAPIO 2011년 10월 5일호
독도본부2011.10.05.www.dokdocente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