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케이신문 2011.09.18
【탐방 방인의 풍경 2011】

▲우즈카노미코토(宇受賀命)신사를 둘러싸는 것처럼 물든 논. 전방에는 푸른 바다와 도고(島後)가 보인다.
다가갈 수 없는 영토, 끓어오르는 분노
익어서 추수만을 기다리는 벼들, 안쪽으로는 푸른 바다. 정겨운 일본의 풍경, 마쓰에(松江市)에서 북쪽으로 약70킬로미터 일본해에 떠 있는 오키제도(隠岐諸島). 농어업, 축산 등, 거의 모든 제1차 산업이 동시에 행해지고 있는 풍요로움이 자랑거리다.
도고(島後), 나카노시마(中ノ島), 니시노시마(西ノ島), 치부리지마(知夫里島)의 총 4개 섬, 3개의 정(町)과 1개의 촌(村)으로 구성된 총면적 346평방킬로미터. 북서쪽 약150킬로미터에 있는 다케시마(독도)도 오키제도에 들어간다. 바다와 산에서 나오는 산물이 특히 풍부한 건 나카노시마(中ノ島)이다. 행정적으로는 「아마쵸(海士町)」로 동서 약9킬로미터, 남북 약20킬로미터, 인구 2400명 정도의 섬에는 창오징어와 바위굴, 전복, 소라 등이 채취되고, 벼농사도 활발하다.
나카노시마(中ノ島)에서는 일본명수백선인 「텐가와노 미즈(天川の水)」등, 각지에 있는 용천수가 논농사에 쓰인다. 미네랄을 포함한 해풍이 벼를 강하게 만들어 쌀은 달고 차지다. 1221년, 고토바천황(後鳥羽上皇)은 「조큐의 난(承久の乱;1221년 고토바 상황(後鳥羽上皇)이 가마쿠라막부에 대한 토벌군을 일으켰으나 패배한 병란.(출처: 네이버백과사전)」으로 교토에서 유배되어 이곳에서 19년을 지냈다. 「섬으로 유배되었어도 시대의 천황. 풍요로운 섬이라는 증거(島流しされても時の天皇。豊かな島だった証拠)」라며 도민들은 자부심을 갖는다.
현재 아마쵸(海士町)는 I턴;(원래 대도시 주민이었던 사람이 농촌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함.)의 섬이다. 자연과 휴식, 농업과 어업의 노하우를 찾아 섬에서 취직하는 도시 젊은이가 적지 않다. 이런 “신주민”은 인구의 10%에 달한다.
오키(隠岐)에서는 「국경의 섬(国境の島)」이라는 의식이 옅다. 다케시마(독도)와의 사이에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정한 경계선(이승만라인)이 있어 한국군과 연안경비대가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일본의 영토에 어선도 다가갈 수 없는 불합리한 현실이 있다.
다케시마(독도)의 어부 2세인 야와타(八幡昭三) 씨(82세)는 「부친이 1929년에 신청했던 『다케시마와 그 주변 500미터에서 어업하는 권리(竹島とその水際500メートルで漁をする権利)』는 지금도 유효하다. 전쟁 전에는 강치와 전복, 소라 등을 채취했다. 항상 만선이었고, 풍요로운 바다였다」고 회상한다. 현 상화에 대해서는 「시마네현도 국가도 “현지에 가지마라”고만 말할 뿐, 보고도 못 본 척 한다(島根県も国も『現地に行くな』というだけで見て見ぬふりだ)」고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쵸(海士町)사무소의 산업창출과장은 「바다가 거칠어지면 국경의 섬이라는 사실을 느낀다. 50~60척의 중국과 한국, 북한의 어선이 만 안쪽으로 피난해와 몰려들어 있으면 무섭다. 섬에 경관은 2명뿐이다(時化(しけ)ると国境の島を感じる。50~60隻の中国や韓国、北朝鮮の漁船が湾内に避難し群がると怖い。島に警官は2人だけなので)」라고 말했다.
독도본부 2011. 10. 08. www.dokdocente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