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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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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주권'의식의 고양을 활용하라

일본대학・모모치 아키라(百地章) 교수

 1982년의 포클랜드전쟁(;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자국과 가까운 포클랜드 섬(혹은 말비나스 섬)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하며 침공한 전쟁이다. 이 전쟁은 2개월 만에 아르헨티나군의 항복으로 종료되었으며, 이로 인해 갈티에리의 군사독재정권은 실각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 전쟁을 두고 말비나스 전쟁이라고 부른다. <출처: 위키백과>) 때, 개전에 반대하는 각료들을 향해 대처 총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내각에 남자는 1명밖에 없는 건가요」? 전쟁은 영국군의 승리로 끝났고 총리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단 한명의 남자도 없었다」≫
 남대서양에 떠 있는 포클랜드제도는 인구 약2천, 악천후가 많고, 바람도 강해 수목이 자라지 않는 불모의 섬이다. 영국령에 속하지만 섬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에 오랜 다툼이 있었고, 서로가 정당성을 주장하며 양보하지 않았다(안도 니스케=安藤仁介 「포클랜드제도의 영유권분쟁과 국제법(フォークランド諸島の領有権紛争と国際法)」). 그런 가운데, 아르헨티나군의 갑작스런 공격에 대해 영국이 멀리 기동함대를 파견해 방위한 것이 이 (포클랜드)전쟁이었다.

 이와 비교해 센카쿠열도는 오랜 세월 영유권다툼 등은 존재하지 않았던 일본고유의 영토다. 주변에는 풍부한 어장이 있으며, 이라크에 필적한다고도 말해지는 석유자원이 잠들어 있다. 메이지정부는 조사를 거듭해 무주지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1895(메이지28)년, 일본이 영유를 선언했다. 당시 중국(청나라)을 포함한 국가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후, 일본인이 거주하였고, 많았을 때는 200명 이상이 가다랭이포 공장을 운영하거나 하면서 “실효지배”를 해왔다. 중국이 갑자기 (센카쿠에 대한)영유를 주장하기 시작한 건 1971년, 유엔이 석유매장을 발표한 직후다.

  이 센카쿠열도에 대해 중국이 영토적인 야심을 표출시킨 건 재작년 9월 7일의 중국어선 충돌사건이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정권은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중국인 선장을 재빨리 석방시켜버렸다. 간 나오토 정권에는 「단 한 명의 남자도 없었던 것」같다.

 ≪안일함에 빠져 국가의식 결여≫
 자국영토에 대한 이런 의식의 희박함은 무엇이 원인일까.

 민주당정권의 체질에도 기인하지만, 7년 가까이에 달하는 연합군총사령부(GHQ)에 의한 일본약체화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자국의 「안전」과 함께 「생존」까지 타국에게 맡긴 현행헌법의 영향도 크다. 나아가 (샌프란시스코)강화 독립 후에도 미국의 보호 하에 있어 편안함을 탐식한 나머지 헌법 개정과 자주방위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 온 일본인 스스로의 국가의식의 결여도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민주당정권의 어리석은 총리는 「일본열도는 일본인만의 것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하는 형국이다. 다루기 쉽다고 판단한 한국은 불법점거를 이어오는 다케시마 지배를 강화했고, 러시아도 북방영토에 대통령이 방문, 중국도 틀림없이 센카쿠열도를 빼앗으러 오고 있다.

 본래 국가주의란 국가의 독립성, 바꿔 말하면 타국으로부터 간섭당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고, 각국 모두 자국영토와 국민에 대해 포괄적이고 배타적인 지배권을 갖는다. 전자가 영토주권(영역주권), 후자가 대인주권이다. 그런데 점령 하에서 국가주권이 제약당한 적도 있어 우리나라(일본)에서는 국민의 주권감각이 마비되어 버렸다. 

  물론, 글로벌화의 진행으로 현재 전통적인 주권국가가 어느 정도 변용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영토주권은 「무용지물」도 아니며, 영토에 기초를 둔 국민국가(주권국가)는 지금도 중요한 존재로 봐야만 한다(기무라 히로시=木村汎「글로벌화로 “영토주권”은 무용지물이 되었는가(グローバル化によって“領土主権”は時代遅れとなったのか)」). 그와 같은 자각의 결여가 다케시마문제와 센카쿠사건을 야기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평화로운 잠을 깨운 중국어선≫
 그렇다고는 해도 센카쿠사건은 70년 가까이 계속된 일본인의 평화로운 잠을 깨워, 수백 명, 때로는 수천 명이나 되는 데모가 전국각지에서 일어나게 되었고, 도쿄도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에 의한 센카쿠열도 구입발언 이래, 벌써 7만 건, 10억 엔이 넘는 기부가 접수되었다고 한다. 「영토영해를 지키는 법 정비 확립(領土領海を守る法整備の確立)」을 요망하는 전국에서의 서명도 212만 명이 넘어 국민들 사이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영토의식의 고양이 보인다.

 여론을 배경으로 외국어선의 불법조업에 대한 단속과 영해경비체제의 강화를 위해 드디어 해상보안청법의 개정안이 각의 결정되었다. 법안에서는 해상보안청의 임무로 새롭게 「영해경비」업무가 명기되어 영해를 침범한 외국어선에 대해 「현장검사」 및 「철수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되어 무인도에 상륙한 수상한 자에 대한 체포권이 해상보안관에게도 인정되고 있다. 정말이시 획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센카쿠열도를 비롯한 우리나라(일본) 영토를 단호하게 방어하기 위해서는 자위대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자위대)법에는「영공침범」규정은 있지만 「영해침범」과 「영토침범」에 대한 대처규정은 없다. 때문에 자위대법에 「경계감시」와 「영역경비」규정을 마련해 평소부터 「경계감시」에 임하게 하고, 더불어 「치안출동」과 「방위출동」이전단계부터 「영역경비」가 가능토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민을 가장한 병사와 무장게릴라의 상륙강행을 막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영역경비규정의 정비는 미래에 헌법9조2항의 개정, 즉 군대설치로까지 꼭 연동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모모치 아키라)[산케이신문 2012.06.04]

 

 

독도본부 2012. 06. 30.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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