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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국호-NY 타임스 1853년 한국해(Sea of Corea) 첫 보도

162년 전 뉴욕 타임스 창간 두 달만에



'한국해(Sea of Corea)'가 162년전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사실이 확인됐다.

2월26일 뉴시스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뉴욕타임스는 1853년 3월3일 2면에 '한국해(Sea of Corea)'를 첫 언급했다. '한국해'는 각종 고지도와 책자 등 문헌에서는 많이 발견됐으나 19세기 중반 미국 신문의 표기 사례는 그간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당시 한국해가 미국 등 세계인들에게 보편적인 지명으로 쓰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국해(Sea of Corea)'가 162년 전 뉴욕 타임스에 보도된 사실이 확인됐다.

2월26일 뉴시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뉴욕 타임스는 1853년 3월3일 목요일 2면에 '한국해(Sea of Corea)'를 첫 언급했다. 타임스는 "일본과 유럽의 교류는 동방 교역의 선구자인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시작됐다"며 "300년 전인 1542년 중국에서 류큐로 가려던 (포르투갈 상선의)페르난도 멘데스가 강한 서풍에 휘말려 한국해(Sea of Corea)의 북서쪽 섬 나가사키 히라도 항에 닿았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한국해'는 각종 고지도와 책자 등 문헌에서는 많이 발견됐으나 19세기 중반 미국 신문의 표기 사례는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 타임스의 표기는 당시 미국 등 세계인들에게 한국해가 보편적인 지명으로 쓰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국 신문의 역사는 1721년 8월7일 보스턴에서 발행된 '뉴잉글랜드 쿠란트'로 사실상 시작되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형 제임스 프랭클린이 창간한 뉴잉글랜드 쿠란트는 런던의 신문들에서 발췌한 소식과 보스턴의 홍역 사태 등을 창간호에서 보도했다. 약 90년이 지난 1810년까지 미국의 신문들은 366개를 헤아릴 만큼 빠른 속도로 퍼져갔다.

뉴시스가 미국 신문에서 확인한 최초의 Corea는 1847년 11월10일 '더 캘리포니안'에서 나온다. 1846년 8월1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창간된 캘리포니안은 A3 크기의 한 장 신문로 앞면은 영어, 뒷면은 스페인어로 발간됐다. 1848년 5월29일 폐간돼 불과 1년9개월여 남짓 존재하는 사이에 최초의 Corea 표기를 남긴 것이다.

그러나 Corea는 우리나라를 지칭한게 아니라 미국의 고래잡이배 이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기사로 나온 것이 아니라 일종의 안내 광고였다는 사실이다. '알림(Notice)' 제목 아래 '미국 포경선 Corea호의 선원들이 거래한 사람들이 누구이든지 부채에 대한 책임을 일체 지지 않음을 알립니다. -B B 헴스테드 선장'이라고 게시됐다.

선장과 선원의 분쟁(?)에서 언급된 Corea호가 먼 바다까지 나가는 고래잡이 배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극동의 왕국 코리아 이름을 딴 것으로 추정된다.

◇ Corea 국호 첫 표기는 1847년 캘리포니아스타

코리아가 국호로 표기된 첫 기사는 캘리포니안의 라이벌 매체 캘리포니아스타(1847년 1월9일 창간)에서 볼 수 있다. 신문은 1848년 2월5일 "(1847년 8월) 한국 해안(Coast of Corea)에서 좌초한 프랑스의 전함 글르와르와 빅토리우스의 라 피에르 제독과 선원들이 영국의 대덜러스 전함과 상선 제레미스 가넷호를 타고 마카오로 이동했다.

피에르 제독은 12월 홍콩에서 페킹호를 타고 프랑스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캘리포니아스타는 같은해 2월16일 중국과 영국의 분쟁 뉴스를 다루며 다시 한번 Corea를 언급했다. 89명의 해적이 푸젠(福建)성 아모이(샤먼)에 주재하는 영국 영사에게 인계된 내용과 두 척의 프랑스 전함이 Corea 해안에서 좌초된 소식을 다시 한번 소개한 것이다.

이 기사에선 중국 도시 상하이를 한국식 발음 상해(Shanghae)로 표기해 눈길을 끈다. 1849년 2월28일 캘리포니아스타는 Corea호를 언급했지만 앞서 캘리포니안이 언급한 포경선과 동일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일본 해안에서 좌초한 Corea호 등 두 척의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이 나가사키로 송환됐다.

일본의 법은 모든 외국 선박의 선원들은 황제의 명에 따라 관대한 처분을 받을 수 있다."미국의 대표 신문 뉴욕 타임스가 처음 Corea를 언급한 것은 1851년 11월14일이다. 사실 뉴욕 타임스는 불과 두 달 전인 9월18일 선보인 신생 매체였다. 헨리 레이몬드 등이 창간했고 처음 이름은 뉴욕 데일리 타임스로 시작됐다.

당시 뉴욕 타임스가 언급한 'Corea'호는 영국 선박(British ship Corea)이라는 사실로 미뤄 'Corea'호가 여러 배들의 이름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며칠 전 코리아호의 선원 한 명과 선장이 (사우스캐롤라이나)찰스턴 항구에서 바다에 투신, 실종됐다"는 사건 보도였다.

뉴욕 타임스는 1853년 3월3일 마침내 '한국해(Sea of Corea)'라는 지명을 등장시키며 'Corea'를 한국의 국호로 공식화시켰다. 기사 내용은 일본이 유럽과 교역을 시작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었다. "일본과 유럽의 최초의 교류는 동방 교역의 선구자인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시작됐다.

300년 전인 1542년 우연한 사고에 따른 것이었다. 중국에서 류큐(琉球諸島)로 가려던 (포르투갈 상선의)페르난도 멘데스가 강한 서풍에 휘말려 피항한 것이다. 한국해(Sea of Corea)의 북서쪽 섬인 나가사키 히라도(平戸) 항에 도착한 이들은 따뜻한 환영을 받았고 곧 무역을 시작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 시기 일본의 (지방)왕자들은 중앙의 쇼군(將軍)과 상관없이 독자적인 권한이 있었다는 것이다…"이처럼 일본은 16세기부터 유럽과 문물을 교류했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19세기 중반은 일본의 영향력이나 지명도가 조선(Corea)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해(Sea of Corea)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한국해'가 오랜 역사 속에 공인된 지명이었다는 방증이다.1853년 4월30일엔 또다른 유력지 뉴욕 옵저버가 'Corea'를 언급했다. 미국과 일본의 본격적인 교류를 보도한 내용이었다. 한반도가 열강의 각축장이 될 것을 예고하는 안타까운 보도이기도 했다.

"페리 제독이 두 번째 (일본)방문의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세 개의 항구가 미국과의 무역을 위해 개방되고 석탄을 미국 증기선에 제공키로 합의했다"는 내용과 "Corea와 일본 사이에 있는 섬 쓰시마의 왕자들…"이라는 사진 설명을 붙였다.

신문 사료 전문가 문기성씨는 "150여년 전 미국 신문들을 보면 Corea라는 국호가 대세였다. 특히 뉴욕 타임스 보도에서 Corea가 들어간 한국해의 표기가 발견된 것은 큰 수확"이라고 평가했다.[뉴시스 2015.02.27]

독도본부 2015.03.18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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