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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독도 측량과 ‘영국해도 No.2347’ 일본 및 조선해안 일부

개정판에서 독도를 리앙쿠르암, 호넷섬으로 병기

1863년 영국 해군 수로부의 개정판 해도 2347(출처: 우리문화가꾸기회).

독도가 서양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849년 고래잡이를 위해 동해에 들어왔던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Le Liancourt호에 의해서이다. 갈로트 드 수자Galotte De Souza, 일명 로페즈 선장이 귀항한 뒤 제출한 항해보고서를 접수한 프랑스 해도국은 〈수로지〉 제4권에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수록했다.

‘이 배가 동해를 항해하던 중 1849년 1월 27일 다줄레섬 부근에서 어떠한 지도나 항해지침서에도 표시되지 않은 바위섬을 발견했다. 다줄레섬을 북북동 방향으로 바라보는 지점에서 이 바위섬을 측정했는데, 그 위치는 북위 37° 2′, 동경 131° 46′이었다.’

리앙쿠르호가 측정한 독도는 ‘리앙쿠르암Rocher du Liancourt’이란 명칭으로 1851년 프랑스 해군성 해도국이 제작한 해도 <태평양전도Carte Generale de L'Ocean Pacifique>에 최초로 표기된다. 동판조각으로 제작된 해도는 단색으로 인쇄되었고, 축척은 1:300만, 크기는 가로세로 103.5cm×69.6cm이다. 조선은 꼬레Coree로 표기되고, 울릉도는 마쓰시마Matssima, 동해는 일본해Mer Du Japon, 제주도는 켈파트I. Quelpaert로 표기되었다.

그 뒤 러시아 푸차친E. V. Putiatin 함대의 올리부차Olivutsa호가 1854년 1월 24일 일본 나가사키長崎항을 출발해 대한해협을 통과한 뒤 북상하다가 4월 2일 독도를 발견하고, 서도西島를 측정한 값은 북위 37° 13′, 동경 131° 55′이었다. 이때 서도를 ‘올리부차’라고 명명하고, 동도東島를 올리부차호가 흑해함대 소속이었을 때 이름을 기념해 ‘메넬라이’라고 명명하고, 1857년 러시아 해군성 수로국은 <조선동해안도>를 간행했다.

1855년 4월 25일에는 영국 함대가 동해상에서 해도에 없는 두 개의 섬을 발견하게 된다. 호넷함의 포사이스Charles Cobrington Forsyth 사령관의 보고에 따르면 지빌레Sybille함에서 측정한 북서쪽 섬에 대한 위치는 북위 37° 12' 0", 동경 131° 51' 0"이고, 호넷Hornet함에서 측정한 위치는 북위 37° 17' 9", 동경 131° 54' 23"이고, 비터Bittern함에서 측정한 위치는 북위 37° 16' 0", 동경 132° 0' 0"이었다. 이 세 함정이 측정한 평균 좌표값은 북위 37° 15' 3", 동경 131° 55' 8"이다.

포사이스 사령관은 “다줄레Dagelet가 해도에 잘못 올려져 있고, 우리가 본 땅이 서북서로 48마일(약 77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임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라페루즈La Perouse에 의하면 다줄레섬은 둘레가 3리그(약 4.8km)이며, 나무가 우거져 있고, 사람이 거주한다. 이 두 섬(거의 서로 연결되어 있음)은 훨씬 더 작고 사람이 살지 않으며 나무도 없고 바다 위로 높이 솟아있는 바위섬일 뿐이다. 북서쪽 섬의 위치는 북위 37° 17' 9", 동경 131° 54' 23"이고, 해수면의 높이는 410피트(약 125m)이다. 북북서와 남남동에는 두 개의 섬이 있는데, 약 4분의 1마일(약 402m) 떨어져 있으며, 암초는 2마일(약 3.2km) 정도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3마일(약 4.8km) 이내로 그 섬에 다가 갔으나, 아무런 위험도 관찰하지 못했다. 섬 주변은 매우 깊게 보였으며, 움푹 팬 곳의 풀을 제외하고는 섬은 매우 척박했다. 매우 평온한 날씨가 아니면 접안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고 보고했다.

1855년 영국 함대가 측량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해 10월 12일 영국 해군 수로부에서 발행한 해도는 No.2347<일본 및 조선해안 일부Preliminary Chart of Nipon, Kiusiu & Sikok, and part of the Korea>이다.

이 해도는 동판조각으로 제작되어 단색으로 인쇄되었고, 축척은 1:180만, 크기는 가로 96cmㆍ세로 77cm이다. 해도의 해안선과 산지는 토지의 기복을 나타내는 운옹식暈滃式으로 입체감 나게 표현되었다.

해도에 그려진 범위는 북쪽은 북위 42° 30′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이고, 남쪽은 남위 30° 40′ 일본 규슈 남쪽의 다네가섬種子島까지, 동쪽은 동경 143° 20′선까지, 서쪽은 동경 122° 38′ 중국의 산둥반도 동쪽 끝부분으로 전체적으로는 조선과 일본의 근해를 나타내고 있다. 동해안 북부와 남부 해역 일부분과 제주도 남쪽에서 서해안을 따르는 해역에는 함정이 항해 도중 측정한 해심海深이 표기되어 있다.

조선은 ‘Korea’, 동해는 ‘Sea of Japan’으로 표기되었고, 울릉도는 1787년 5월 27일 프랑스 항해가 라페루즈가 명명한 다줄레섬으로 표기되고, 독도는 호넷섬Hornet Is.으로 표기되었다. 울릉도 서북쪽에는 1791년 영국 탐험가 제임스 콜넷James Colnett이 동해안을 북상하다가 울릉도를 발견하고 자신의 배 이름인 ‘아르고노트Argonaut’라고 명명하고, 영국 해군 수로부에 보고한 뒤 해도에 표시되기 시작한 실재實在하지 않은 아르고노트섬이 파선으로 그려져 있다.

1863년 영국 해군 수로부가 개정판으로 간행한 해도 No.2347<일본 및 조선해안 일부>는 먹색과 담갈색 2색으로 인쇄되었고, 축척은 1:180만, 크기는 가로 95cmㆍ세로 66cm이다. 해도의 그려진 범위는 북쪽은 북위 41° 15′ 한국의 어대진, 남쪽은 남위 30° 40′ 일본 규슈 남쪽의 다네가섬種子島, 동쪽은 동경 143° 10′선, 서쪽은 동경 122° 45′ 중국의 산둥반도 동쪽 끝부분까지로 1855년 판과 유사하다.

1855년 판과 크게 달라진 점은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이다. 울릉도는 마쓰시마Matusima로 표기하고 괄호 내에 다줄레섬Dagelet I. 4000을 높이와 함께 병기했다.

울릉도의 형태가 좀더 확실해지고, 울릉도 동북쪽의 죽도竹島는 라페루즈 함대 부솔함La Boussole의 이름을 따서 부솔암Boussole R.k으로 표기하고, 남쪽 돌출부는 실곶Seal P.t으로 표기했다.

독도는 리앙쿠르암Liancourt R.ks과 함께 ‘1849년 프랑스에 의해 발견Discd. by Franch 1849’이라고 표기하고, ‘영어로 호넷섬Engh. Hornet I.s’, ‘러시아어로 메넬라이와 올리부차RusRk.Menelai & Olivutsa’를 병기했다.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풀어야 할 과제라는 관점을 일관하면서 독도의 중립적 명칭인 ‘리앙쿠르암Liancourt Rocks’을 고수하고 있고, 일본 명칭인 ‘다케시마Takesima’를 단독 표기하거나 병기하는 나라도 적지 않게 있는 실정이다.

19세기 프랑스 포경선에 의해 붙여진 독도의 명칭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독도 영유권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선웅(한국지도학회 부회장) [월간 산 3월호]

독도본부  2020.03.20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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