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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8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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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 '한국의 고문헌에는 울릉도는 있어도 독도는 없었다'?

최장근 대구대학교 교수
지리적으로 보면, 과거 독도는 한국 사람이 사는 울릉도에서 가시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대의 울릉도는 우산국이 있었고, 우산국사람들은 울릉도에서 바라보이는 독도를 당연히 우산국의 영토라고 여겼다. 반면 고대의 일본은 독도가 일본열도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 17세기에 일본어부들이 몰래 울릉도에 불법적으로 도항하면서 그 길목에 위치한 독도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일본의 고지도상에 독도가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지도는 나가쿠보 세키스이(長久保赤水)가 1779년 간행한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改正日本輿地路程全圖)"로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본토와 함께 채색되지 않은 채 경위도 선 밖에 그려져 한국영토로 그려졌다. 또한 1785년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제작된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에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것'이라고 명확히 기록했다.

독도가 등장하는 일본의 가장 오래된 문헌은 일본의 운주(雲州) 번사(藩士)였던 사이토 호센[齋藤豊仙]이 1667년 집필한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로서, '일본의 서북경계는 오키(隠岐)섬이고, 서북쪽에 울릉도와 독도가 위치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이처럼 유력한 일본의 고지도와 고문헌에 독도가 일본영토로 기록된 것은 없고, 모두 한국영토로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한국이 예로부터 다케시마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예를 들어, 한국 측은 조선의 고문헌 '삼국사기'(1145년),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 '동국문헌비고'(1770년), '만기요람'(1808년), '증보문헌비고'(1908년) 등의 기술을 근거로 '울릉도'와 '우산도'라는 2개의 섬을 오래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 '우산도'가 바로 현재의 다케시마(독도)라고 주장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일본정부는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일본측 고문헌을 숨기고, 또한 한국측의 수많은 고문헌의 관찬기록을 모두 부정하여 오히려 일본이 17세기부터 독도의 영유권을 확립하였다고 독도의 영유권을 날조하고 있다.

첫째, 일본정부는 ''삼국사기'를 보면 우산국이었던 울릉도가 512년 신라에 귀속되었다는 기술은 있지만 '우산도'에 관한 언급은 없다. 또한 조선의 다른 고문헌에 나와 있는 '우산도'에 관한 기술을 보면 그 섬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큰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등 다케시마(독도)의 실상과는 맞지 않는 점들이 있어 오히려 울릉도를 상기시키는 내용이다‘라고 주장한다.

'삼국사기(三国史記)'에는 512년 신라가 우산국을 정벌했고, 원래 울릉도에 우산국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울릉도에서 독도가 가시적으로 보이는 섬이기 때문에 울릉도와 더불어 독도도 우산국의 영토였다는 증거가 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울릉도와 우산도(독도) 2섬은 날씨가 맑고 바람이 부는 청명한 날 서로 바라볼 수 있다'라고 하여 15세기 조선조정에서 동해의 울릉도와 독도 두 섬이 조선의 영토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팔도총도'라는 지도를 삽입하여 동해바다에 울릉도와 우산도 두 개의 섬이 존재하는데 이 섬들이 조선의 영토임을 명확히 표기했다.

이들 조선시대의 고문헌들은 오늘날처럼 과학 기술 문명이 발달한 시기에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울릉도 동남쪽 87.4'에 위치하여 사람이 살지 못하는 바위섬 독도의 존재를 정확하게 표기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500년 전의 독도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섬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지 않다고 하여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는 것도 영유권 날조행위이다.

둘째, 일본 정부는 ‘한국 측은, '동국문헌비고', '증보문헌비고' 그리고 '만기요람'에 '여지지(輿地志)'를 인용하여 '우산도는 일본이 말하는 마쓰시마이다'라고 기술되어 있어, 우산도가 독도(다케시마의 한국명)인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지지' 본래의 기술을 보면, 우산도와 울릉도는 동일한 섬이라고 되어 있으며, '동국문헌비고' 등의 기술은 '여지지'에서 직접 올바르게 인용된 것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연구도 있다. 그러한 연구에서는, '동국문헌비고' 등의 기술은 안용복이라는 인물의 신빙성이 낮은 진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또 다른 문헌 '강계고(彊界考)'(1756년)를 근거로 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동국문헌비고(東国文献備考)'(1770년), '만기요람(萬機要覧)'(1808년), '증보문헌비고(増補文献備考)'(1908년)에는 '일본이 말하는 송도(당시 일본의 독도 명칭)는 우산도(한국의 조선시대 독도명칭)로서 울릉도와 우산도 모두 우산국의 영토이다'라고 하여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이들 고문헌들은 당시대의 상황과 인식을 반영하여 시대별로 독도가 울릉도와 더불어 한국영토임을 명확히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러한 독도 영유권을 결정짓는 명확한 고문헌 기록조차도 부정하지 않으면 독도 영유권을 포기해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사실과 관계없는 자료를 갖고 와서 비과학적인 논리를 만들고 있다.

셋째, 일본정부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첨부되어 있는 지도에는 울릉도와 '우산도'가 별개의 2개의 섬으로 그려져 있지만, 만약 한국측이 주장하는 대로 '우산도'가 다케시마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 섬은 울릉도의 동쪽에 울릉도보다 훨씬 작은 섬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지도에서의 '우산도'는 울릉도와 거의 같은 크기로 그려져 있으며, 더욱이 한반도와 울릉도 사이(울릉도의 서쪽)에 위치하는 점 등으로 보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울릉도에는 고대신라, 고려시대에는 사람들이 살았지만, 조선 500년 동안은 섬을 관리하기 위해 거주민을 쇄환하고 수시로 섬에 수토사를 파견하여 관리하였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무인도이기 때문에 고대신라, 고려시대처럼 울릉도에 사람이 살아야만이 섬의 위치나 크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울릉도에 사람이 살았던 신라, 고려시대의 인식을 바탕으로 동해바다에 2개의 섬을 명확히 그려서 모두 한국영토임을 확실하게 표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섬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는 날조행위이다.

이처럼 일본정부가 독도가 한국영토이라는 한국측 고문헌의 기록을 부정하고, 일본측의 고지도와 고문헌을 숨겨야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일본정부가 1905년 독도를 원래 주인이 없는 섬이라고 하여 국제법으로 합당하게 편입하여 일본영토가 되었다'고 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1905년 이전에 독도가 한국영토였다고 하는 한국측의 고문헌 기록을 인정하고, 일본 측의 고문헌, 고지도의 기록을 숨기지 않는다면 일본은 더 이상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날조행위는 아주 유치하고 치사한 수준이다.[한국일보 2020.09.10]

독도본부 2020.09.20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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