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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선데이 프로젝트」 '철저검증 독도분쟁'

나레이션 : 반일운동이 격화되었고, 일만인 규모의 시위가 행하여지고 있으며 일본제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넓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는 반년전에 한국과의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일본명 다케시마 한국명 독도의 영유문제이다. 다케시마는 시마네현 오키로부터 157km 한국 울릉도로부터는 96km 일본해에 뜬 무인도이다. 일-한에 불꽃이 튀기게 되는 것은 하나의 국제조약이 그 발단 이었다.

1996년 2월 20일 일본 정부는 UN해양조약의 비준을 각의, 결정하였다. 그 내용은 새롭게 설정되는 200해리 배타적 경제 수역을 다케시마를 기점으로 해서 친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측은 그 섬 근해에서 군사연습을 시작하고, 3월 1일 독립기념일에는 많은 시민들이 다케시마에 상륙, 일본을 비판하는 식전이 행하여졌다.

다케시마의 크기는 겨우 히비야공원과 비슷하다. 이 조그마한 섬이 월드컵 공동개최를 앞두고 있는 일-한간의 최대 장벽으로 되어가고 있다. 2002년까지 해야할 해결책은 무엇일까?

다카노 하지메 리포트 일-한은 지금! 철저검증 다케시마 분쟁!

남자사회자 (시마다 신수케) : 특집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일본 영토의 문제인데요. 월드컵 공동개최가 일-한의 새로운 시대를 고한다는 말도 있는데, 그 앞에 놓여있는 다케시마 문제입니다.

여자사회자 : 지금 일본이 안고 있는 세 개의 영토문제를 여기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선 북방영토, 그 다음에 센카쿠 제도 그리고 다케시마 라는 것인데 다케시마는 시마네현의 오키와 한국의 울릉도 사이에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한국측에 조금더 가까운데 이 다케시마 분쟁의 최전선을 다카노씨가 8월 한국에서 취재하셨습니다. 다카노씨 8월이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다카노 : 그렇습니다. 8월 15일은 한국이 일본에서 독립한 기념일입니다. 그러니까 그날 전후하고 또 하나 3월 1일, 옛날 일본의 지배에 대한 독립운동의 기념일이고 그 전후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일본문제가 클로즈업되는 그런 두 개의 고비가 있고 그 중 하나가 8월입니다.

남자사회자 : 우리들하고는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군요. 2차 대전에 대해서도 정반대로 이 쪽은 패전의 날이고 그 쪽은 독립기념일이라고 하니까. 그러면 한국 국민에 다케시마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 그리고 다케시마를 둘러싼 양국의 사고 방식의 차이를 보시겠습니다.

나레이션 : 51번째 독립기념일을 맞이한 8월의 한국의 옛 일본통치시대의 상징인 구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 공사가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즉시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보겠다.

한국에는 이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이유중의 하나가 모든 방송매체에서 이 문제를 보도하기 때문이다.

다카노 : 젊은층 문화의 중심인 CD숍에도 다케시마, 독도 문제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랩밴드 DJ DOC 의 최신 앨범입니다. 이 사진은 물론 다케시마 사진이고 여기에는 대한민국 만세라고 써 있습니다.

나레이션 : 그 안에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곡이 들어있다. 몇 년전에 유행한 것을 rock조로 편곡한 것이다. 출판계에서도 조용한 붐이 일어나고 있다. 올 봄부터 신간서 발간이 잇따르고 다케시마를 다루는 책은 열권이 넘는다. 그 중에도 주목할 만한 것은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일-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일본 자위대가 다케시마에 상륙하는 내용이 쓰여지고 있다. 놀랍게도 백만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또 한국의 민간 TV방송국 MBC에서는 특집프로를 만들 뿐만 아니라 인터넷으로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내용의 정보를 영문으로 세계에 발신하고 있다. 아주 독특한 방법을 실행하는 기업도 있다. 한국에서 두 번째인 소주 제조회사 "금복주". 여기는 5월부터 "독도"란 이름의 소주를 판매하게되었다. 실은 이 매출된 소주한병당 10원을 독도기금으로 축적하고 미래의 독도개발에 이용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판매된 후 단 3개월간에 기금은 3000만원에 달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독도문제에 대해 3월경처럼 과열된 반응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변한 것일까? 일-한관계에 정통한 저널리스트에게 물어보았다.

*저널리스트 : 한국사람이란 쉽사리 흥분하고 또 쉽게 차가워진다. 또 하나는 한국에서는 4월에 총선거가 있었습니다. 그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판단이 있었지 않았을까 합니다. 여당도 야당도 특히 일본에대해서는 강하게 대하는 것이 선거때의 득표와 연결이 되니까요.

나레이션 : 그런데 매스컴과 함께 또 하나 한국의 여론을 형성하는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역사교육. 이것은 중학교의 국사 국정교과서이다. 다케시마는 사진과 함께 기재되어 있다. 한국 역사교육의 상징적 존재가 서울의 남쪽 60km 지점에 떨어져 있는 독립기념관이다.

독립기념일을 전후해서 많은 사람들이 가족동반이나 커플로 찾아온다. 이 독립기념관은 일본 역사교과서에 대한 비판이 계기가 되어 한국 국민으로부터 500억원, 일본돈으로는 65억원이란 모금을 모아 만들어진 것이다. 6개의 전시관중 장사의 열을 형성하는 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일제 침략관이다.

다카노 하지메 :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줄을 만들고 보고 있는 것은 일본의 조선지배시대에 일본 관헌들이 조선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하고 있는 장면의 납인형 전시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보았을 때에는 납인형은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요즈음은 쓰러진 머리가 실룩실룩 움직이거나 뒤에서 비명소리가 테이프로 흘러나와 더욱더 전시 내용이 현실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레이션 : 이러한 전시를 보면 일본과 한국 사이의 역사관의 큰 차이가 따르게 된다. 그리고 다케시마 문제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 섬을 둘러싼 일-한의 주장 차이를 보도록 하겠다. 양국이 영유를 주장하는 역사적 근거는 3개의 쟁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쟁점은 어느쪽이 일찍이 이 섬을 발견하여 그 후 실효적 지배를 계속해 왔는가이다. 양쪽 주장은 다음과 같이 엇갈린다.

한국측에 따르면 '이 섬은 6세기 이후 한국 고유의 영토이다. 신라나 조선왕국의 역사서나 지도에 당시 우산(于山)이라고 불리던 독도가 여러번 등장하고 있다'고 하며 일본측에 의하면 우산이 다케시마라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 그린 지도에는 우산은 울릉도보다 서쪽에 그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에도시대 당시 마쓰시마라고 불리던 다케시마에 일본인이 건너간 기록이나 지도가 많이 있다'.

두 번째 쟁점은 1905년 2월 일본의 다케시마 편입을 둘러싸고 일본측은 '각의 결정과 시마네현 고시에 의한 이 다케시마 편입은 국제법에 따라 다케시마 영유를 재확인한 것이므로 합법적 조치이다'라고 한다. 반면 한국은 '신라시대부터 한국영토였기 때문에 이 조치 자체가 무효다. 당시의 한국 외교권은 일본의 괴뢰인 외국인 고문에게 주도권을 잡히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반론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국사람들에게는 저 고문장면과 다케시마 문제가 중복되게 가는 것이다. '독도는 1910년 한국합병의 앞단계로서 1905년 일본에 의해 우격다짐으로 빼앗겼다'라고 되는 것이다.

세 번째 쟁점은 전후처리를 둘러싸고 한국측은 '강제로 빼앗긴 영토이니까 당연히 반환되어야 한다. 1946년 1월 29일자 연합국의 각서에서도 독도는 일본영토로부터 떼고 있다'고 하며 일본측은 이 각서는 연합국의 최종결정은 아니다. 그 증거로는 오키나와도 오사가와라도 그 선 밖에 있었다'고한다.

다케시마 분쟁 그 배후에는 양국 역사관 사이의 큰 차이가 보이게 된다.

남자사회자 : 하나의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날만큼 한국 사람들이 이 섬에 관심을 가지고 구애되어 있는데, 다카노씨, 그런데 우리 일본사람들은 북방영토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다케시마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요?

다카노 하지메 : 원래 이것을 섬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암초 바위 같은 곳이니까 사람이 그곳에서 살았던 것도 아니고 북방영토처럼 옛날에 살고 있었으니까 그리워 한다거나 묘소가 있다거나 한 것이 아니니까 북방영토에 비해 일본의 입장에서 관심이 그다지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여자사회자 : 한국 사람들은 쉽사리 흥분하고 또 쉽게 차각워진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교과서에 재대로 기재되어 있지 않나요. 일본측은 어떻습니까?

다카노 하지메 : 글쎄요. 일본에서는 조사해 봤는데 중학교까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지리나 정치경제 교과서에서는 영토문제의 하나로 조금 기재가 되어있습니다.

남자사회자 : 그것에는 일본영토라고 써 있습니까?

다카노 : 써 있겠지요...써 있습니다. 지도책에도 큰 지도에는 써 있습니다만 국토지리원이 발행하는 5만분의 1 지도에서는 그것은 옹 영토를 커버하고 있는데 그 섬의 지도는 발행되어 있지 않습니다. 외교적 배려 내지는 현지조사도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곳에 갈 수도 없으니까요.

남자사회자 : 다음으로는 역사적 차이가 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만 마수조에씨, 이 차이를 메울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마수조에 요우이치 : 예를 들면 유럽에서는 독일하고 프랑스는 자꾸 전쟁을 해왔는데 육지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면 다시 교류하고 또 할아버지들이 일차대전때 부터의 이야기를 늘 해주는데 일본에서는 가정 안에서 역사이야기를 해주지 않을 뿐 아니라 '시험공부의 해'라고나 할까..현대사에 이르기 전에 학교의 역사 수업이 끝나 버리고 해서 이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선데이 프로젝트 전체 사회자 다와라 소이치로 : 그건 그렇고 왜 한국사람들이 다케시마에 대해 이렇게까지 고집하는 것일까요.

다카노 : 글쎄요. 아까도 이야기가 있었지만 1905년에 일본이 다케시마 영유를 선언하고 그 5년후 1910년에 일본의 한국 합방이 일어나고 그것을 연속적인 것으로 그쪽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국이 합방당한 그 시작은 거기에 있다고, 그러한 일본에 대한 의식의 시발점같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남자사회자 : 우리들, 제가 이 문제를 알게된 것은 최근의 일인데 2-3년 전부터이죠..그런데 한국에서는 교과서에 기재되어 있는 만큼 늘, 의식해온 문제인 것 이지요.

다하라 소이치로 : 과연그럴까요? 나는 그것이 오히려 부채질하고 있다고 봅니다.

다카노 : 글쎄요. 일면에서는 아까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 것 처럼 선거를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든가. 근대 일-한 사이에서 그 문제가 늘 현안이었던 것은 사실이고 예컨데 1965년에 일한기본조약을 체결하는 교섭과정에서 당시 김종필씨가 수상인가 외상인가였는데 괴로우니까 그 섬을 폭파해버리면 문제가 없어진다는 발언이 비화로 나왔는 만큼 양쪽이 서로 어려워 하는 문제였습니다.

남자사회자 : 그런 작은 바위 덩어리가 큰 문제로 되어버리는 것 자체가 큰 문제이지요.

여자사회자 : 자, 지금 현재의 상황도 알고 싶은 것인데요.

남자사회자 : 이번에 다케시마까지 취재하러 가려고 했는데, 그것은 안되었고 다케시마 문제의 한국측 최전선이라는 울릉도까지 취재에 나갔습니다.

여자사회자 : 독도가 지도에는 크게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하비야공원정도의 크기입니다.

남자사회자 : 울릉도의 상황과 일본측의 대처방식, 일본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나레이션 : 한국 본토로부터 약 1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울릉도. 한국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독도는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한다. 전후 다케시마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이 섬의 도민들이 주인공이었다.

1952년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소위 이승만라인 중에서 독도 영유를 선언했다. 이어서 울릉도의 민간인들이 1953년 상륙겅비대(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 상주하게 되었다. 3년후 그 임무는 국가의 경비대에 계승되어 등대와 초소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실질적 지배는 40년 이상 계속되어 왔다. 그 위에 울릉도의 한 어민이 다케시마에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전복이나 미역을 잡을 수 있는 11월에서 5월까지 실제로 그 섬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인물 김성도씨를 일본 매스컴으로서는 처음으로 취재할 수 있었다.

김씨가 그 섬에서 살기 시작한 동기는 무엇일까? 또 울릉도에는 다케시마에서 산림활동을 하는 시민단체가 있다.(푸른 울릉도-독도가꾸기 모임) 나무가 없는 섬에 숲을 형성시키고 음료수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활동하고 있다. 한편에 일본측 다케시마 최전선은 시마네현 오키섬이다. 여기에서는 어떤 대응책이 행해져 있을까.

일본의 다케시마 문제 최전선 시매네현 오키. 일본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다케시마는 시마네현 오키군 고가촌에 속한다. 오키는 이즈모 반도의 난바다 70km에 뜬 게나 오징어 등의 어업을 중심으로한 섬이다. 전쟁전 오키의 어민들은 다케시마에 어로를 하러가고 미역, 전복, 그리고 기름과 가죽을 얻기 위해 강치 어로를 하고 있었다. 현지에서 다케시마에 대한 관심도를 물어본다.

주민 : 글쎄 다케시마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데

또다른 주민 : 레이다로 잠깐 본 적이 있지만 섬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습니다.

나레이션 : 섬에 사는 와키타씨와 야하타씨는 다케시마에 상륙한 마지막 일본인들이다. 둘이는 이승만 라인이 선언된 직후인 1954년 그것에 대한 대책으로 해상보안청의 순시정의 호위를 받으면서 하루만에 다케시마로 어로활동을 하러 갔다. 둘이는 40년전의 미역잡이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와키다 : 대단히 긴 미역이엇고 바다 수면위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야하다 : 그래요, 아주 긴 미역이 수면까지 와서 그 나머지는 가로 누워있었는데, 조수의 흐름이 빠르니까 그 미역으로 배를 묶고 배를 안정시켜서 어업을 했다.

와키다 : 우리들이 돌아와서 일주일 정도 됐을 무렵에 그 쪽 경비병 몇 명이 거기에 상륙해 있었다. 우리들도 단 하루만 이었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더 한번은 가고싶다.

나레이션 : 다케시마에 실제로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단 수명만이 되어버린 오키, 그러나 200해리 문제가 부상하면서 도민의 관심은 강해지고 있다. 8월에는 심포지엄이나 현지사에 대한 청원이 잇따랐다.

오키-사이고 어협 조합장 : 그거야 물론 일본국의 영토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그리고 강하게 일본정부는 주장해서 그것을 가능케 만들어 줄 것을 희망한다. 일본정부에게 소위 저자세 외교가 아니고 강한 마음으로 교섭을 해주기를 바란다. 지금은 10며웅 한 사람이라도 일본 정부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나레이션 : 그러면 일본정부는 어떠한 대책을 행하여 왓을까요. 외무성은 1954년 이래 이 문제를 네덜란의 해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려했다. 그러나 구제재판에서는 당사자 양국이 재판을 여는 것에 대해 동의를 하지 않는한 법정은 열리지 않는다.

한국은 시종일관 재판을 거부하는 자세다. 그러면 그 거부하는 논리는 무엇인가. 한국의 국회의원에게 물어보았다.

민주당 국회의원 : 국제재판이 된다면 19세기부터 20세기초에 걸쳐서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 했던 시대 많은 외교자료를 왜곡화 했습니다. 그래서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사이의 문제를 국제적인 문제로 만들어도 그것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나레이션 : 한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강한 불심감이 있는 것 같다.

국회의원 : 일본이 독도를 현안사항으로 꺼내는 것은 다른 한-일간의 문제를 유리한 조건으로 교섭하기 위하여 카드로 삼고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나레이션 : 한국의 자세는 변하지 않을 것인가. 그것은 일본의 대응 여하에 걸려있다고 지적하는 한국의 지식인도 많이 있다.
한국의 일본학 연구소소장: 일본에서 폭언이 자주 나온다. 그런 말이 나오는 과정에서 독도문제가 나오면 더 비판적으로 되고 그래서 독도문제에 대해서는 더 비판적으로 되고 그래서 독도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타협도 용납할 수 없다는 식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아세아에 대하여 또 한국에 대하여 새로운 자세를 보이면서 그런 과정에서 과거의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독도문제도 교섭한다는 식으로 간다면 더 납득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나레이션 : 8월 13일 도쿄에서 일-한 경제수역 교섭, 200해리의 구체적인 선을 긋고 지역을 정하는 일-한간의 교섭이 시작됐다. 한국쪽이 영토문제 대한 의논을 거부하고 있는 이상 다케시마를 둘러싼 공방은 이 회의에서 행해진다. 과연 교섭의 행방은? 일-한은 1965년 일-한조약과 똑같은 방법 요컨대 다케시마를 계산하지 않고 보류해 두는 것이 아닐까 라고 국제법 전문가는 보고 있다.

고배대학 아시다켄타로 교수 : 다케시마를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1965년의 일-한 협정의 북부협정에서 중간선을 썼던 때의 방법이었습니다. 200해리 수역의 선을 그을 때에 1965년을 기초로 한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였습니다. 요컨대 다케시마를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레이션 : 유엔해양법조약에서는 인간이 그곳에서 생활할 수 없는 섬을 암초로 판단하고 200해리를 기점으로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석이 있다. 이 부류론으로 한다면 200해리의 선은 오키와 울릉도의 중간점에 쓰여진다. 그러나 그럴때에는 다케시마는 한국쪽으로 된다.

남자사회자 : 국내적 열기도, 외교적 작전도 한국측이 한 수 위이다는 느낌이 드네요.

다카노 : 글쎄요, 200해리 문제로 교섭이 시작됐다는 것이 하나의 양쪽에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이고, 이건 여러 가지로 생각해봐도 어려운 문제인데 요컨데 200해리라고 해도 양쪽에서 중복되는 부분은 양쪽 영토사이의 중간에 선을 쓰게 되는데 혹시 다케시마가 일본이라고 가정하면 울릉도와의 사이에 선을 긋게 되고 일본의 주장대로 된다면 그렇게 됩니다.

한편에 다케시마가 한국영토라고 하면 오키와의 중간이 되니까 이 오른쪽 선 대로 되고 한국측 주장대로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보류론식으로 한다면 다케시마는 계산하지 않고 소속이 확실한 울릉도와 오키의 중간으로 한다면 다케시마는 한국쪽으로 들어가니까 일본측에서는 상당히 용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남자사회자 : 다케시마에는 자원이 없고 결국 이 주변바다의 어업권의 싸움이 될 것이니까 다케시마가 어느쪽에 들어가든 이 중간의 선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다카노 : 그런데 영토문제라고 생각할때에는 여기서 양보한다면 북방영토에서도 양보하게 되지 않을까요. 또 센카쿠열도에서도 양보하게 되지 않을까요. 또 센카쿠제도에미치는 영향은 어떨까등 연관성이 있지요.

역시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국가나 정부가 목숨을 걸게 되는 그런 경향이 있으니까 그렇게 간단하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수조에 : 물고기를 잡을 문제 만이 라면 타협할 수 있지요. 그런데 지금 내쇼널리즘의 문제가 있네요. 유럽의 경우에는 독일하고 플아스는 아까 말씀했듯이 전쟁을 해왔는데 무엇이 원인이냐고 하면 그것은 석탄과 철강을 둘러싼 싸움이였지요. 그래서 EC의 전신은 석탄-철강 공동체이고 그것을 공동관리를 하자는 것이고 지금은 유럽연합 공동체로 되어 있으니까 그런 문제도 그다지 상관없게 되었습니다. 거기 독도에도 오히려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좋을지도 몰라요 육지하고 바다는 사정이 다르겠지만.

다카노 : 우선 이 섬이 어느 쪽 것이냐는 이야기는 끝이 없으니까 역시 아까 그 유럽의 사례도 있고 해서, 일본해 전체의 유동자원이나 환경문제도 오염이 심각하니까 관련각국이 공동 관리해 가는 그런 큰 틀을 우선 만들어가고 그래서 거기에서 공동적인 노력을 쌓이면서 시간을 벌고 시간의 경과를 기다리고 해결해 가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수조에 : 해저 터널을 만드로 일본과 한국을 연결하고 새마을호도 이론 신칸선안에도 들어오게 되면 그런 문제는 없어지지 않을까요.

남자사회자 : 그러니까 역으로 말하자면 지금 월드컵도 일한 공동개최도 이것이 마찰의 계기가 되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가고 오늘 주제의 문제도 그것을 계기로 해서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종합사회자 : 공동관리란 한국쪽이 OK하지 않겠지요.

다카노 : 글쎄요, 그런데 아까 한국측 어민도 말하고 있었는데 한국주변에서도 점점 물고기가 못잡히게 되어가고 있는 그런 상황이니까 서로가 자기 영역을 주장하고 싸운다면 양쪽이 전체적으로 나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남자사회자 : 어떻게든 서로 대화를 나누어 가면서 교류의 자리가 되어가면 좋겠는데요.

다카노 : 네, 진짜 안전보장 이란 그런 것이지요.

여자사회자 : 월드컵도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남자사회자 : 차라리 여기서 결승전을 할까요? 우리들 일본인에게도 이 다케시마 문제는 머리속에 넣어두어야 할 문제입니다.

1996.9.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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