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을 지탱해 온 평화헌법 시행 60주년을 맞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3일 헌법개정을 촉구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일본 총리가 헌법 기념일에 담화를 발표한 것은 1997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 이후 두번째이다.
하시모토 총리의 담화는 평화 헌법의 기본 이념을 지켜나가겠다는 내용이었다는 점에서 아베 총리의 이번 담화는 더욱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일 정상회담 이후 중동 5개국을 방문중인 아베 총리는 2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헌은 2005년 자민당이 발표한 신헌법초안을 바탕으로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민당 초안은 평화헌법의 상징인 9조 중 제 2항을 삭제하는 등 보수ㆍ우익 성향이 강해 향후 개헌 논의가 순탄하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각 정당도 담화를 발표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9조를 유지를 전제로 환경권 등을 추가하는 ‘가헌’(加憲)의 입장을 다시 한번 밝혔다.
사민당이 “아베 정권이 전후체제를 부정하며 일본을 근본부터 다시 만들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등 야당들은 아베 정권이 주도하는 개헌 시도를 정면으로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전후 평화와 번영을 가져 다 준 일본의 평화헌법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절대적인 호헌기과 개헌논쟁기를 거쳐 개헌실현기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주도자는 아베 총리이다. 지난해 9월 정권을 잡은 그는 전후 체제에서의 ‘탈각’을 주창하며 전후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개헌을 공약했다.
그에게 있어 개헌은 ‘일본이 진정한 독립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 ‘아름다운 나라에’에서 “1951년 샌프란시스코조약의 체결에 의해 형식적으로는 주권을 회복했지만 전후 일본의 틀인 헌법은 물론 교육방침의 근간인 교육기본법 마저 점령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는 5년내 개헌을 목표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개헌을 7월 참의원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시킬 예정이다. 전후 처음으로 국회에 상정된 국민투표법도 늦어도 이번 가을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개헌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 등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을 받았던 국가들은 아베 정권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일본이 군국주의로 회귀하려 한다”는 등 날선 비판까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개헌 논의는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달 NHK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상징적이다. 일본의 여론은 개헌 찬성(47%)이 반대(20%)보다 많다.
하지만 평화헌법의 핵심 조항인 ‘9조 개정’에 대해서는 반대(44%)가 찬성(25%)을 크게 앞선다. 상당수 일본인들이 개헌이란 총론에 찬성하지만 그렇다고 전력(戰力) 보유 금지와 국가 교전권 불인정을 명시한 평화헌법의 핵심조항까지 바꾸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소수인 보수ㆍ우익 세력의 교묘한 물타기이다. 이들은 개헌이 대세라는 점을 이용해 새 헌법에 전전(戰前) 일본을 연상하게 하는 대목을 끼워넣으려 하고 있다.
보수 성향의 초당파 그룹인 ‘신헌법제정촉진위원회 준비회’가 3일 천황을 국가 원수로 하고, 집단적자위권을 인정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개헌 제안’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