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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약탈 의궤도 반환해야”

일제약탈 의궤도 반환해야”  

일본 궁내청이 소장한 왕실 의궤도 프랑스 소장본처럼 반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일본의 규장각 의궤 약탈사실은 현재 정부의 프랑스 소장 의궤류 반환협상과 맞물려 앞으로 미묘한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궁내청 소장 의궤는 천해봉 전 성균관대 교수와 박상국 국립문화재연구소 실장 등이 구성한 해외전적조사연구회가 98~2000년 현지조사에서 확인한 것이었다. 이들 의궤는 유일본인 광무 2년(1907)의 <예원보략수정의궤>를 비롯해 <철종대왕 국장도감의궤><명성후 가례도감의궤>(이상 복본) 등으로 고종대에 주로 편찬됐다. 일제시대 일본으로 가져간 오대산 사고에 대부분 소장되어 있던 것들이다.

서울법대 백충현 교수 등 학계에선 일단 일본 궁내청 소장 의궤의 반환여부는 매우 모호한 문제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의 상황에서 보면 일본쪽 소장의궤는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약탈문화재다. 하지만 주권이 없던 식민지 시대에 총독부가 합법기증형식을 빌어 의궤를 반출했고, 일본과는 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경제지원을 대가로 약탈 문화재반환협상을 서둘러 마무리지었기 때문이다. 건국대 법대의 이근관 교수는 “일본은 60년대 문화재 반환 협정에서 논의를 이미 끝냈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법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65년 한일협상 당시 문화재 협정에서 두 나라는 1400여 점의 약탈문화재 반환에 합의했으나 이후 추가로 확인되는 약탈문화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도 만들지 않았다. 일본 국민이 약탈 문화재를 소유할 경우 일본 정부가 기증을 권고하는 선에서 합의의사록을 별도작성한 바 있지만 의궤를 소장한 궁내청은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여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허건 교육문화팀장은 “60년대 문화재 협정 이후 일본에서 확인된 약탈문화재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해외유출 문화재에 대한 국가차원의 본격적인 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비록 국제법적으로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문화적 도덕적 차원에서 정부가 의궤 반환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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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 새로 밝혀진 사실들

한 교수가 공개한 의궤 종합조사 결과는 국내외 4개 소장처의 의궤의 기본적인 총수와 세부내용을 포괄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의궤 연구의 기본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새로 밝혀진 사실들을 정리했다.
의궤는 조선 전기와 일제시대에도 만들었다=<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최초의 의궤는 태조 때 정도전 등이 편찬한 종묘 제사 때의 의례에 관한 것이며, 태조 4년 경복궁 창건과정을 정리한 <경복궁 조성 의궤>도 편찬됐다. <선조실록>은 전기에 편찬된 의궤들이 임진왜란 중 다 사라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1910년 왕조 멸망 뒤에도 의궤 편찬은 지속되어 고종, 순종 장례 관련 의궤 등 25종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편찬 주역은 국가관청인 도감이 아니라 이왕가의 주감으로 바뀌었다. 사적인 사업으로 퇴락한 것이다.

◇ 역사의 굴곡을 반영한 의궤 형식의 변화=현존 의궤 가운데 제일 오랜 것은 1601년(선조 34년)에 나온 선조비 의인왕후의 <산릉도감 의궤>와 <빈전혼전도감 의궤>다. 이후 전란의 혼란에서 벗어나 안정을 되찾으면서 편찬이 잦아지고 수준도 높아진다.

의궤의 고급화는 어람용 의궤 편찬이 시작된 인조 때부터다. 병자호란 직후 1637년(인조 15년)에 편찬된 <종묘수리도감 의궤>가 최초의 어람용 의궤다. 한 교수는 호란 직후부터 어람용을 낸 것은 반청의식과 소중화사상의 결과라고 해석했다. 1897년 대한제국으로 바뀌면서 형식도 바뀐다. 고급 의궤의 표지가 녹, 청색 비단에서 황색 비단으로 바뀌고 황태자를 위한 홍색 표지의 고급 의궤를 한 건 더 만들었다.

◇ 어람용 의궤는 정조 때 폐지=정조는 즉위 직후 궁 안에 있는 의궤는 휴지에 불과하다며 어람용으로 임금에게 바치는 일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임금에게 바치는 관행은 없어졌으나 어람용 양식을 지닌 고급 의궤 편찬은 지속되어 창덕궁 규장각이나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하는 관행이 생겼다. 그러나 철종조 이후 외규장각에 보관하는 관례는 지켜지지 않았다. 바로 이 덕분에 철종 이후 규장각용 고급 의궤와 헌종조 의궤 일부는 병인양요 때 약탈을 면했다.

노형석 기자
2002.10.11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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