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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의 가공할 사적파괴령 비밀문서

총독부의 가공할 사적파괴령 비밀문서  

무엇보다도 일제의 발악적인 석조문화재 파괴와 무자비한 유린은 조선 총독부가 1943년에 각 도경찰부장에게 지시·명령한 「유림(儒林)의 숙정(肅正) 및 반(反)시국적 고적의 철거」에서 절정에 이른다. 태평양전쟁을 도발했던 일제가 미·영연합군의 무서운 반격을 받아 패색에 휩싸이게 되자 조선총독부는 이 땅의 항일민족사상과 투쟁의식을 유발시키고 있는 민족적인 사적비들을 모조리 파괴해서 없애려고 든 것이다.

가령 이성계가 왜구를 크게 무찌른 기념비인 '황산대첩비'를 비롯해서 임진왜란 때 수만 명의 왜군을 남쪽 바다에서 궤멸시킨 이 땅의 성웅 이순신 장군의 전승 기록을 새긴 비석같은 것들을 남김없이 말살시키라는 것이었다. 그때 총독부가 작성한 파괴 대상의 격파기념비 목록은 다음과 같다.

1.고양 행주전승비(幸州戰勝碑) 2.청주 조헌전장기적비(朝憲戰場紀蹟碑) 3.공주 명람방위종덕비(明藍芳威鍾德碑) 4.공주 명위관임제비(明委官林濟碑) 5.공주 망일사은비(望日思恩碑) 6.아산 이순신신도비(李舜臣神道碑) 7.운봉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 8.여수 타루비(墮淚碑) 9.여수 이순신좌수영대첩비(李舜臣左水營大捷碑) 10.해남 이순신명량대첩비(李舜臣鳴梁大捷碑) 11.남해 명장량상동정시비(明張良相東征詩碑) 12.합천 해인사 사명대사석장비(泗溟大師石藏碑) 13.진주 김시민전성극적비(金時敏全城劇敵碑) 14.통영과 남해의 이순신충렬묘비(李舜臣忠烈廟碑) 15.부산 정발전망유지비(鄭撥戰亡遺址碑) 16.고성 건봉사 사명대사기적비(泗溟大師紀蹟碑) 17.연암 연성대첩비(延城大捷碑) 18.경흥 전보파호비(廛堡破胡碑) 19.회령 고충사타(顧忠祠墮) 20.진주 촉석정충단비(矗石旌忠壇碑)

다음은 조선총독부가 이 땅의 민족혼을 말살시키려는 최후의 발악으로 이른바 반시국적인 고적은 소관 도경찰부장들이 임의로 철거(실제 내용은 파괴)시켜도 좋다고 결정했을 때의 가공할 비밀문서의 내용이다. 1943년 11월 24일에 기초된 이 문서는 총독부 학무국장이 경무국장에게 넘겨준 후 각 도경찰부장에게 비밀지령으로 하달되었다.

"수제(首題) : 철거할 물건 중 '황산대첩비'는 학술상 사료로서 보존의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그 존재가 관할 도경찰부장의 의견대로 현시국의 국민사상 통일에 지장이 있는 만큼 그것을 철거함은 부득이한 일로 사료됨. 따라서 다른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적당한 처치 방법을 강구할 것.

참조 : '황산대첩비'는 보존령(총독부 고적 및 유물 보존령)에 따라 지정할 만한 것은 아니나 이성계가 왜구를 격파한 사적(事蹟)을 기록한 것으로서 그 존재는 당시 일본인 해외 발전의 사적(史蹟)의 증징(證徵)이기도 하고, 그 비석의 형식은 미술상·학술상 시대의 한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으로서 현지에서 보존시킴이 이상적이겠으나 그 존재가 치안상 철거해야겠다는 관할 경찰당국의 의견은 현시국에 부득이한 것으로 간주됨. 그것을 서울로 가져오기엔 수송의 곤란이 적지 않고, 그 처분을 경찰당국에 일임하는 바임."

이 비밀문서 뒤에, 앞에서 소개한 파괴 대상의 비석 목록이 첨가되었는데, 제목은 '황산대첩비'를 예로 든 「현존 유사품 일람표」였다. 이후 각 도에서는 일제 경찰부장의 명령으로 이 땅의 역사적 민족적 항일기념유적들이 모조리 파괴당하는 통분스런 일을 겪게 되었다.

1380년 9월에 당시 고려의 장군이었던 이성계가 이지란장군과 함께 지리산 근방에 침입한 왜적 아지 부대를 크게 무찌른 승리의 史實이 새겨져 있던 전북 남원군 운봉면 화수리의 '황산대첩비'가 맨 먼저 산산조각으로 폭파되었다. 총독부의 승인을 받은 전북 경찰부장은 1577년에 건립되어 400년 가까이 민족의 한 수호비로 살아 있던 '황산대첩비'를 완전히 말살시키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했다. 그것은 일제 말기의 무자비한 발악의 상징이었따. 대첩비가 섰던 자리엔 지금 한두 조각의 비편(碑片)만이 남아 일제 치하의 잊을 수 없는 굴욕을 생생하게 상기시켜주고 있고, 사적 제104호로 지적돼 있다. 1970년 무렵에 새로 만든 '황산대첩비'가 세워졌다.

합천 해인사에 세워져 있던 임진왜란 때의 전설적인 승병장이자 고승이었던 사명대사의 '석장비'는 경남도 경찰부장의 지시·명령에 따라 1943년 12월에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그때 박살이 난 비편의 일부가 현재 해인사 명월당 앞에 수습돼 있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면의 건봉사(乾鳳寺)에 세워져 있던 또 다른 사명대사의 기적비도 같은 때에 같은 운명으로 참혹하게 파괴되었다.

임진왜란 때의 최대의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왜군 섬멸 기념비들은 진작부터 차례로 파괴당하거나 원위치에서 철거되어 어디론가 운반되고 있어TEk. 전남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 있던 이충무공의 '명량대첩비'와 여수의 '좌수영대첩비' 및 '타루비'는 총독부가 과거의 왜구 혹은 왜군격파기념비들을 남김없이 파괴하거나 없애도록 비밀지령을 내리기 이전인 1942년에 이미 원위치에서 철거되어 사라졌었다. 주민들은 그것들이 총독부 명령으로 서울로 운반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일제는 드디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했고 이 땅엔 마침내 해방의 날이 왔다. 해남과 여수의 지방유지들은 즉각 서울로 사람을 보내어 그들이 일제에게 빼앗겼던 이충무공 대첩비들의 안전 여부를 알아보았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그것들은 경복궁의 근정전 앞뜰 땅속에 깊이 생매장돼 있었으나, 파괴돼 있지는 않았다. 물론 그것들은 그후 지방유지들에 의해 원위치로 모셔져 갔다. '명량대첩비'는 현재 보물 제503호로 지정돼 있다.

(한국문화재 수난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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