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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의 환생

경희궁의 환생  

경희궁처럼 오욕으로 점철된 땅이 또 있을까. 일제시대 많은 문화유적이 훼철(毁撤) 되었지만, 이 궁궐만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도 없으리라.

대한제국 시대까지 7만평 궐내에 있던 98개의 전각은 일제 강점기에 헐리기 시작했다.

1910년 일본인 학교(경성중학교)를 짓는다고 궁궐 서쪽 전각들을 헐었고, 1925년 동쪽에 전매국 관사를 지을 때 나머지가 헐렸다.

경복궁 안의 총독부 건축, 창경궁 동물원화 등과 함께 자행된 한국문화 격하 전략이었다.

■대궐 정문인 흥화문은 이토 히로부미 진혼사찰(박문사) 정문을 만든다고 헐어갔다.

정전 숭정전은 동국대 구내로 이전되었고, 흥정당은 광운사로, 황학정은 사직단 뒤편으로 옮겨가야 했다.

조선 후기 240여년 나라의 심장부였던 서궐은 20여년 동안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광복 후에는 경성중학 자리에 서울중고교가 들어서 경희궁은 이름만 남았고, 일제 전매국 관사 터에는 주택과 빌딩이 들어서 그곳이 궁터인지 아무도 모르는 세월이 반세기였다.

■그 오욕의 땅이 한 세기 만에 가까스로 옛 모습을 되찾았다. 10년 넘게 계속된 경희궁 1단계 복원과 공원화 사업이 끝나 21일 서울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옛 궁터의 반도 못 되는 면적이지만 숭정전 자정전 태령전 등 중요 전각과, 문루 회랑이 복원된 모습은 서울 중심부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1988년에 이전 복원된 흥화문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궁궐 담벽이 복원되지 않아 옛 맛을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궁궐의 부활은 반가운 일이다.

■경희궁 복원의 으뜸 공로자는 염보현(廉普鉉) 전 서울시장이다. 서울고가 강남으로 이전하자 서울시는 1978년 그 땅을 현대그룹에 팔았다.

현대는 그 곳에 20층 짜리 사옥을 지을 계획이었는데, 80년대 부임한 염시장이 공원녹지 확충을 위해 그 땅을 다시 사들였다. 그 일로 그는 문화시장이란 호칭을 듣게 된다.

그런 결정이 없었다면 경희궁은 영원히 우리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한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모범 사례로서도 경희궁 복원은 큰 의미가 있다. 공직자의 결정은 너무 중요하다.


cjmoon@hk.co.kr

문창재 논설위원기자 /200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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