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도본부는    · 시작페이지로    · 즐겨찾기    · 오시는길    · 메일보내기    · 사이트맵

2022년 12월 08일 목요일

내용검색  

약탈당한 문화재

세계마당

우리마당

재외동포

문화재

동북공정

순국선열

상고사

역사

  현재위치 > 독도본부 > 민족광장 > 약탈당한 문화재 > 칼럼

 


불국사를 아시나요(1)

불국사를 아시나요(1)  

설명이 필요없는 대한 민국 최고의 사찰을 손꼽으라면 당연히 불국사를 들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50%는 모르긴 몰라도 불국사를 다녀왔을 것이다. 또한 외국인들의 한국 관광 코스로도 불국사는 빠지지 않고 있다.

전생과 현세의 부모를 위하여 창건했다는 불국사는 현재 석굴암과 같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그러하듯 그저 불국사라는 사찰은 수학여행 답사 코스 정도로 생각하거나 풍광 좋은 절, 즉 절을 배경으로 사진 찍으면 폼나는 곳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불국사를 찬찬히 뜯어보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1천수백년 전 우리 선조들의 멋과 생활상을 돌아 볼 수 있다.

751년 당시의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전생과 현생의 부모를 위해 창건한 불국사와 석굴암, 그가운데 불국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찰 건축의 백미로 손꼽힌다. 청운교와 백운교, 그리고 극락세계를 자연스럽게 장엄한 석축 등은 그 자체가 이미 국보다. 여기에 대웅전 앞을 장엄하고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은 정교하게 조각된 금반지 위에 한쌍의 다이아몬드가 올려져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성주괴공의 윤회를 해야만하는 존재의 무상함은 그처럼 아름답고 웅장한 불국사일지라도 비켜갈리 없다. 여기에 인위적인 재난은 오늘의 불국사를 바라보고 있는 후세의 감내부분이다.

불국사는 창건이후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러서도 웅장함을 그대로 유지해 왔다. 그러나 조선 선조 임금 연간에 발발한 임진왜란의 참화는 불국사를 한 줌 잿더미로 만들어 놓았다.

경주 일대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과 승군이 연합하여 왜군과 맞섰던 격전지였다. 임진왜란 당시 경주에서는 비격진천뢰라는 대포가 사용되어 왜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불국사는 당시 승군의 주둔지로 많은 병장기가 사찰내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로인해 왜군들은 적군의 은신처를 파괴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천년의 세월을 지켜온 불국사를 잿더미로 만들어 놓았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오래된 전각은 임진왜란 이후 중창된 것이다. 이후 불국사는 조선왕조의 불교탄압이라는 폭압 속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다가 19세기말 혼란한 정세로 인해 쇠락을 거듭했다.

1920년대 전후에 찍은 불국사 전경 사진에는 다 무너진 축대와 우거진 잡초에 파묻힌 전각들이 참혹하다싶을 정도였다. 이후 불국사는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보수의 손길을 거쳤고 이후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복원사업에 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제 침략기에 전국적으로 무차별적으로 자행된 일본인들의 도굴 만행은 불국사라고 해서 비켜가진 않았다. 보물 61호로 지정된 불국사 사리탑(현재 불국사 비로전 서편에 위치)은 1906년 한 일본인에 의해 약탈되어 도쿄의 요릿집 정원장식용으로 팔려 갔다. 이때 분명 사리 장엄구 등 많은 성보가 출토되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 행방은 알길이 없다.

요릿집 정원장식용 석물로 추락한 사리탑은 20여 년을 이 집 저 집으로 팔려다니다가 세키노라는 일본인 학자에 의해 1933년 불국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와 함께 불국사 다보탑에는 석탑을 수호하던 4마리의 석사자상이 있었다. 현재 주둥이 부분이 깨진 채 외롭게 다보탑을 수호하고 있는 석사자는 원래 4마리였지만 일제 침략기와 한국전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모두 사라지고 한 마리만이 남아 있다.

다보탑 석사자와 관련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한가지 있다.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형 10원짜리 주화가 유통되었다. 기존의 10원 주화에 양각된 다보탑은 입체감이 없이 평면적인 단순한 모습이었지만 신형 주화에는 입체감을 충분히 살리면서 다보탑에 대한 사실적 묘사를 시도했다. 이런 과정에서 다보탑 서쪽을 수호하던 석사자도 함께 조각되었다.

결국 당시 사회 정세와 맞물려 이 석사자상은 졸지에 불상으로 오인되어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다보탑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본 사람이라면 10원 주화에 새겨진 그 조형물이 불상인지 무엇인지 분간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불국사를 관람하면서 다보탑앞에서 무수한 사진들을 찍었건만 석사자가 불상으로 둔갑되는 일이 발생한 것은 무관심의 눈이 가져온 결과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불국사를 들르면서 다보탑 석가탑 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유물이 몇 개 더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98호로 지정된 석조수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없이 이 석조 수조에서 물을 받아 마시면서 물맛 좋은 줄만 알지 수조의 아름다움은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날씨가 맑은 날 수목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은 수조는 마치 한 송이 연꽃을 보는 듯 하다. 대부분의 석조 수조가 직사각형의 수직으로 조성되어 있지만 불국사 석조 수조는 연꽃처럼 위는 넓고 밑은 좁다. 마치 활짝핀 연꽃을 보는 듯하다. 수조 바깥면에는 도드라진 띠와 안상을 새겨 장식하였고 물이 담겨지는 내부에는 내면 전체에 연꽃 무늬를 음각으로 새겨놓았다.

결국 이 석조 수조는 돌로 만든 한 송이 연꽃이었다. 만개한 연꽃에 담긴 물은 이미 지상의 생수가 아닌 천상의 감로수 그것이다. 천년전 이 수조를 만든 장인의 아름다운 창의력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지금은 이 수조의 아름다움과 멋을 모르는 세인들의 무관심의 눈으로 세월의 무상함만을 더해 가고 있다. 연꽃 석조 수조와 함께 필자가 관심있게 보는 불국사 유물로는 석조 사자상과 코끼리상이 있다. 불국사에 석조 코끼리와 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불국사 미술관 앞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대신 관광객들을 앉히고 있는 이 석사자와 코끼리는 아마도 임진왜란의 병화로 심하게 파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네 무릎을 꿇고 고개를 돌린 채 문수와 보현보살을 호위했던 석조 사자와 코끼리는 이제 얼굴도 알아보기 어렵게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다.

불국사를 찾는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불국사라는 거대한 숲에 사는 작은 꽃과 동물 등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소중한 선조의 멋을 느껴보시라는 것이다.

2001. 月刊金剛9월 200호
관련
내용
관련내용이 없습니다

 

 

| 개 요 | 이 책은 2008년도에 일본 중의원에서 독도문제와 관련해 내각에 제출한 ...

 

 
  Copyright ⓒ 2001.독도본부. All rights reserved
전화 02-747-3588 전송 02-738-2050 ⓔ-Mail : dokdo2058@korea.com
후원 :국민은행 024-047973-01-019(독도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