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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를 아시나요(2)

불국사를 아시나요(2)  

지금도 불국사는 미술사, 건축사, 불교학 등 관련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가람의 전체적인 조형에 대한 불교 교리적 해석이나 건물과 축대의 축조방식, 그리고 가람 내부를 장엄하고 있는 각종 조형물의 미학적인 조형미는 ‘불국사학’이라는 학문의 한 축을 구축해도 무방할 정도다. 물론 불국사와 함께 조성된 석굴암이 여기에 당연히 첨부되어야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앞서 불국사의 이모저모에 대해 언급했지만 이번에는 불국사의 자랑이자 한국 석탑의 백미인 석가탑과 다보탑, 그리고 필자 나름대로 상상하고 있는 극락세계로서의 불국사를 구성해 보고자 한다.

불국사를 생각하면서 석가탑과 다보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불국사는 몰라도 석가탑과 다보탑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특히 다보탑의 경우 지난 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0원 주화의 도안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 탑의 중요도는 매우 크다.

한국 석탑의 완성이라고 표현되는 불국사 석가탑 그리고 이형(異形)탑의 백미인 다보탑과 관련한 불교 교리적 해석은 법화경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대웅전 좌우에 자리하고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은 법화경 ‘견보탑품(見寶塔品)’과 ‘관세음보살 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에서 다보여래의 법화경 설법 증명과 관세음보살의 다보여래와 석가모니 부처님께 보배영락을 공양하는데서 두 탑의 조형과 관련된 교리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한국 불교미술의 백미인 이들 두 탑도 그 이름만큼이나 수난의 역사를 거쳐야 했다.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을 보면 불국사를 찾은 왜군들은 불국사의 뛰어난 돌조각을 보고는 처음에 방화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경내 전각의 벽속에서 창과 칼 등의 무기가 나오자 전날 경주성에서 패배한 기억을 떠올리며 분노하여 경내의 모든 전각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이같은 전란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은 일제강점기와 복원 수리의 과정에서 쓰디쓴 아픔을 맛보아야만 했다.

앞서 불국사 사리탑이 도난되어 요릿집을 전전하고 있을 때인 1920년대 일본인들에 의해 다보탑이 해체 수리된 일이 있다.

이때 해체 보수 과정을 지켜보았던 한 촌로(村老)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다보탑 주변에 높게 장막을 치고는 석탑을 해체했다고 한다. 해체 수 일째를 맞은 어느날 다보탑 속에서 일본인들은 각종 금붙이로 된 유물을 조심스럽게 상자에 담아 어디론가 가져갔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이 부분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다보탑의 해체 복원이 이루어 졌다는 사실만 전하고 있다. 이때의 보수과정에서 일본인들은 석탑의 안정성을 강화시킨다는 이유로 시멘트를 탑 곳곳에 발라 놓았다.

이로 인해 오늘날 다보탑 곳곳에는 시멘트의 노화로 인한 백화(白花)현상이 나타나 화강암의 노후와 퇴락을 부추기고 있다.

과연 다보탑에서 출토되어 일본인들에게 약탈당한 보물은 무엇이었으며, 어디에 있을까.

언젠가 세월이 흘러 우리 곁에 그 모습을 다시 보여 주기를 간절히 기원해 볼뿐이다.

다보탑이 이처럼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수난을 당한 반면 석가탑은 우리의 손에 의해 세 차례나 수난을 당했다.

1966년 9월 경주시내 골동상인 윤 아무개씨 등 4인은 불국사 석가탑 내 사리장치를 도굴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 후 9월 3일 불국사에 침입했다. 이들은 석가탑내의 사리장치를 도굴하기 위해 세차례에 걸쳐 석가탑의 옥개석을 들어 올리는 대범함을 보였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피때문인지 모두 허탕을 치고 말았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처럼 세차례에 걸쳐 석가탑을 도굴하려던 이들의 음모는 석가탑의 시상을 발견한 불국사 스님들의 신고로 인해 무산되었고 모두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석탑을 들어올리기 위해 사용했던 장비로 인해 석탑의 일부가 깨지고 탑신 전체가 한쪽으로 기우는 등의 문제를 일으켜 놓았다. 결국 정부 당국은 석가탑의 피해상을 바로 잡고자 석조물 보수 전문가들을 데려다 보수 및 복원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석탑을 지탱하고 있던 지주목 가운데 하나가 탑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면서 탑의 일부를 파괴하고 말았다.

현재 우리가 보는 것처럼 석가탑의 서남쪽 탑신일부가 깨진 것은 이때의 사고 때문이었다.

석가탑의 또 하나 수난은 바로 부처님 사리를 봉안했던 유리제 사리병의 파손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당시 신문기사의 일부가 전하고 있을 뿐 자세한 내막은 알길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석가탑내에서 세계최고의 목판본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을 주고 있다. 영광과 수난으로 점철된 불국사는 아직도 우리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의 복원과정에서 구품연지(九品蓮池)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밀려드는 관광객들의 발길로 인해 불국사의 최초 모습 즉 불국정토를 지상에 실현한 그 장관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현재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앞에는 타원형의 돌축대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구품연지가 자리한 곳이다.

구품연지에 비친 청운교, 백운교 그리고 자하문과 범영루, 안양문의 모습은 극락세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가를 상상케 한다.

특히 이른 아침과 저녁 노을이 물드는 시간 구품연지에 비친 불국사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너무나 환상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청운교 백운교를 지나 자하문 좌우에 위치한 범영루(泛影樓)와 좌경루(左經樓)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면 더욱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즉 구품연지에 반사된 이들 전각의 모습과 더불어 아침 햇살과, 저녁 노을에 피어오르는 오색의 물안개와 어우러져 범영루와 좌경루에서 스님의 독경소리와 목탁, 종소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온다면 그 자체가 바로 극락세계일 것이다.

현재 좌경루와 범영루에는 법고와 운판, 목어 등 사물이 자리하고 있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다른 용도로 과거에는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좌경루라는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이곳은 경전을 봉안한 장소로 공간이 협소하고 보관시설을 설치하기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경전을 독송했던 장소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같은 가정을 현실화 시키면 좌경루에서는 목청 좋은 스님의 염불소리가, 범영루에서는 염불의 가락에 맞춘 은은한 종소리나 경쇠 소리가 흘러나와 구품연지와 어우러져 극락세계를 연출할 것이다.

2001.월간금강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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