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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유출의 현황과 유래 - 고향을 잃고 떠도는 민족의 혼, 문화재


 

우리 문화재가 유출된 시기는 대략 세 시기로 구분된다. 첫째는 구한말이다. 이때는 서구 열강들이 한국에 앞다퉈 진출했던 시기로, 우리 문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한국 유물을 수집하였다.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듯이 이 시기에 유출된 유물 대부분은 민속품이며 미국, 러시아, 독일, 네덜란드 등 서방에 주로 유출되었다. 두 번째는 일제 강점기로, 일본 관민의 합작에 의한 약탈 등 우리 문화재의 유출이 절정에 이른 어두운 시기이다. 세 번째는 한국전쟁 등을 계기로 한국에 진출한 외국인들에 의해 유출된 것으로, 이 시기의 유출에는 주로 전문적인 외국인 수집가들이 관여하였다.

구한말 이래 외국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강압에 의한 약탈, 기증, 선물, 매매, 밀반출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유출되었으며, 그 양은 실로 막대하였다. 그 종류도 민속자료에서부터 고고자료, 고미술품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우리 문화재 유출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 몇 가지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첫째, 전쟁 과정에서 힘의 논리에 따른 강압에 의한 약탈을 들 수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서들이 명백한 예이다. 그 고서들은 원래 강화도 외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인들이 약탈한 것이다. 고속철도 건설을 계기로 고서 반환 협상이 시작되었으나 프랑스측의 비협조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가 등가 교환 방식이라는 원칙아래 혐상이 진행 중에 있다.

둘째, 도굴 등을 통하여 이 땅의 귀중한 문화재를 밀반출한 사례를 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인 윤리에 따라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최고의 진품으로 여겨 오던 고려자기 등 고분 부장품에 대한 욕심이 가득했던 일본인들은 1905년을 전후하여 개성, 해주, 강화도 등지의 고려시대 고분을 도굴하여 유물들을 일본으로 무더기로 밀반출하였다.

이들 도굴꾼 뒤에서는 곤도, 야유가이, 아가와 등의 일본인 골동품상과 수천 점의 고려자기를 한꺼번에 사들인 이토 히로부미 등 약탈을 부추기는 세력이 존재하였다. 보물 제452호 <청자 거북형 수주>는 이토 히로부미가 천황에게 헌상하였던 고려자기로, 1965년에 반환 받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일본인 도굴꾼 중에서는 교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고분 부장품을 도굴한 가루베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는 백제고분을 연구한다는 미명 아래 백제 유물을 온갖 불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수집하거나 도굴하였는데, 송산리 6호분은 그의 대표적인 도굴 사례였다. 그의 아버지는 교토에서 골동품상을 운영하였고, 당시 부산 소재 일본인 골동품상과 수시로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8·15 해방 직후 그는 온갖 불법행위로 모은 트럭 한 대 분에 해당하는 유물을 싣고 대구로 도망쳐 같은 짓을 일삼았던 오쿠라와 합류하여 귀중한 유물을 일본으로 밀반출하였다.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 일원의 신라고분은 낙동강 일대의 가야고분과 함께 부장품을 노린 일본인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었다. 금관총과 같은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 등과 같은 찬란한 유물들은 이들 도굴꾼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였다. 당시 경주 일원에는 20여명의 상습 도굴꾼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고 하는데, 오쿠라와 같은 일본인 수집가들이 그들의 배후에서 불법행위를 조종하고 지원하였다.

오쿠라는 대구 남선전기 사장으로, 대구에 거주하면서 풍부한 재력으로 불법 도굴품들을 수집하였다. 그는 패망 후 불법 수집한 유물들을 일본으로 교묘히 밀반출했는데, 그 유물들은 현재 오쿠라 미술관, 동경박물관 오쿠라 컬렉션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가 수집했던 유물들 중에는 현재 동경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신라시대 금동관, 일본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된 순금관 등 귀중한 유물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셋째,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등 관이 개입하여 유산을 일본으로 밀반출한 사례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로는 조선시대에 국가적으로 귀중한 서적을 보관하였던 사고의 장서 중 오대산 사고본을 빼돌린 일을 들 수 있다. 즉, 1914년 총독부 소속 관원들과 평창군 서무주임 오케구치 등이 주동이 되어, 오대산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서책 150점을 강릉, 주문진을 통하여 일본 동경제국대학으로 밀반출시켰다. 그러나 이들 서적들은 1923년 동경을 불바다로 만든 관동대지진의 와중에서 불타 버리고 말았다.




 

넷째, 구한말 서양 외교관들에 의한 유물 반출 사례이다. 1880년대 서울에 외국 공관들이 생기면서 외교관들이 조선에 출입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것은둔의 나라겄로 알려진 조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으며, 이와 함께 한국 골동품에 대한 수집도 시작되었다. 예를 들면 주한 러시아 공사였던 베베르(Veber, K)는 우리 민속품의 러시아 유출에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당시 프랑스 공사 플랑시는 재임 기간 중 인류학자 바라 및 모리, 쿠랑 등의 도움을 받아 한국 유물과 고서적을 상당수 수집하였다. 이들 유물은 현재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 기메 박물관에 소장된 한국 유물은 914점으로, 그 중에는 <철조 천수관음보살 좌상>과 같이 국내에는 희귀한 유형의 불상도 포함되어 있다. 플랑시의 수집품에는 수백 권의 고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쇄한 <직지심체요절> 과 같은 귀중한 서적도 그 중 일부이다.

다섯째, 개인 수집가들에 의한 유물 수집의 사례이다. 대표적인 경우로 미국의 개인 수장가이자 주한 미국대사관 문정관이었던 그레고리 핸더슨, 로버트 무어, 윌리엄 모지 등을 꼽을 수 있다. 핸더슨의 소장품은 현재 하버드 대학의 포그 박물관에 소장되었으며, 무어의 소장품은 국보급 문화재까지 포함된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퇴역 중령이었던 모지는 1972년부터 한국의 공수특전단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약 5000점에 달하는 유물을 수집하였으며, 이중 2000여 점을 미네소타 대학에 기증하고 400여 점은 대여하였다.

여섯째, 구미의 주요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불화 등과 같이 반출 경위가 명확하지 않은 사례이다. 이들 박물관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미국 프리어 갤러리., 클리브랜드 박물관, 필라델피아 박물관 호놀룰루 미술관, 영국 대영박물관,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 독일 베를린 박물관, 벨기에 브뤼셀 박물관 등이다. 그 중에는 하버드 대학의 포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의 <관음보살 좌상>과 같이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명품들도 있다.

불화는 불상이나 석탑과 같은 중량물이 아니라 한 손에 들 수 있는 가벼운 것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던 밀반출자들에게는 선호되던 유물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불법 반출을 일삼던 일본인 무법자들에게 약탈당하였거나 혹은 헐값으로 팔아 넘긴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들 중 일부가 구미로 다시 전매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그 경로는 명확하지 않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유물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반출되었다. 그러나 국외로 반출되었던 유물 중에는 다행히 국내로 다시 반환되는 사례도 있었다.

1906년 일제 강점기에 한국을 방문한 일본 궁내성 대신인 다나카는 고종 황제가 하사하였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개성 근처 절터에 있는 <경천사지석탑>을 동경에 있는 자신의 저택으로 밀반출하였다. 그러나 다나카의 불법 반출 행위가 알려지면서 양식 있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다. 그 중심은 아이러니 하게도 초대 조선총독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다케였다. 일본 내에서의 반환 압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를 버티던 다나카는 마침내 경천사지탑 석재를 반환하였으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탑은 이미 심하게 손상된 후였다.

1914년을 전후하여 일본 동경에서 활동했던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는 고려자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일본과 조선에서 도자기를 포함한 한국 유물을 다수 수집하였다. 이 중에는 고려시대의 걸작인 <청자상감 유죽연로 원앙문 정병>과 <백자 박산 향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술품에 대한 수준 높은 안목을 지녔던 그의 유물은 매우 우수한 컬렉션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나 1937년 일본이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것을 간파한 개스비는 자신의 소장품들을 판매할 결심을 하는데, 이 판매 정보를 입수한 간송 전형필에 의해 다시 국내로 반환되어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음은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문화재는 조상의 얼이 깃든 문화유산으로 돈으로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정치적 혼란기 등을 틈타 수많은 귀중한 문화재가 현재 외국으로 반출되어 민족의 혼이 서려있는 유산들이 고향을 잃고 떠돌고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에 대한 정확한 현황 파악 노력이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반환 노력과 현지 선양 방안 등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찬란한 역사를 지닌 문화민족으로 우리의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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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나 2002.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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