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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8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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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에 흩어진 우리의 기록문화유산

세계속에 흩어진 우리의 기록문화유산 

질곡의 현대사를 거치면서 우리의 문화재는 약탈과 노획, 밀반출의 검은손에 방치되고 말았다. 이는 기록문화 유산도 예외가 아니다. 학술적·사료적 가치를 지닌 기록문화 유산은 우리 역사의 일부인 동시에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의 얼과 혼이 담겨 있는 문화재들은 반드시 반환되어야 하고, 그 이전이라도 자유로운 열람과 연구가 가능한 학술 교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살그먼-히 눈을 감으면/ 어느새 그내는 내 앞에 나타나
깊흔 잠속에서도/ 나는 그대를 잊지 않었고/ 그대도 나를 버리지 않었다
꿈, 꿈, 꿈일지라도/ 그대는 내 마음속에/ 꽃봉오리처럼 아름다히 피어올라
젊은 내 심장을 격분시키노니/ 오, 내 사랑이여/ 영원한 나의 애인이여!
그대의 반가운 소식을 들을 때/ 삼천리여, 나의 조국이여!/ 나는 하늘만큼 깃버하노라
그 긴 겨울밤이 물러가고/ 새벽의 고요한 짬에도/ 너는 내 눈앞에 어리어지드라

한 젊은이의 절절한 조국애를 토로한 이 격정적인 시는 해방 직후에 최원오(崔元吾)가 지은<가슴에 손을 얹고>라는 시다. 최원오는 저명한 사회주의자이자 해방 이후 북한 정부에서 재정상을 지낸 최창익(崔昌益)의 손자로서, 이 시를 지을 무렵인 1949년에는 중앙아시아 타시켄트에서 농대에 재학 중이었다. 이 시는 그가 평양의 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들어 있는데, 조부와 손자가 주고받았던 이 편지들은 현재 미국 메릴랜드주 컬리지 파크(College Park)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관(National Archives)의 노획 문서철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편지가 들어 있는 노획 북한 문서철(RG 242 Records Seized by US Militiary Forces in Korea)은 한국전쟁 중 미군이 북위 38도선 이북으로 전진하면서 노획한 문서들을 하나의 문서집단으로 분류해 놓은 것이다. 이 문서철에 소장된 자료들은 문서·포스터·지폐·사진·설계도·동판 등 그 종류 또한 다양한데, 문서만 하더라도 6,893종 192만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들 자료 가운데 대다수는 해방 이후 북한에서 나온 각종 공문서, 책, 신문, 잡지 등이다. 이 자료들은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것들이다. 이 시기에 관한 한 현재 북한에서도 이만한 문서들을 소장하고 있을 것 같지 않을 만큼 방대한 분량과 광범하고 다양한 종류를 자랑한다. 이 문서철은 한국현대사 연구자들에게는 북한 역사 연구를 위한 보고로 통하며, 전세계 학자들의 주목 또한 끌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관에 있는 노획 문서철이 미군에 의해 전투 중 노획된 경우라면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있는 외규장각(外奎章閣) 도서(圖書)는 프랑스 군대에 의해 약탈된 경우에 해당한다. 파리 국립도서관에는 350여 종의 한국 고도서가 소장되어 있다. 그 중 조선왕조 왕실 의궤(儀軌)들은 본래 강화도의 왕실 서고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1866년에 프랑스 극동함대 해군이 천주교 탄압에 항의하여 이 섬을 점령했을 때, 즉 병인양요 때 약탈한 것들이다. 파리 국립도서관의 외규장각 도서들은 반출 과정부터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병인양요 자체의 불법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프랑스군은 강화도에서 방화와 파괴 행위를 자행했으며, 왕실 서고인 외규장각의 6,000여 권에 달한 책들 가운데 외형상 값지게 보이는 것들을 반출 대상으로 뽑은 다음 나머지는 모두 건물과 함께 불태워 버렸다.

약탈과 밀반출로 점철된 오욕의 역사

프랑스군은 1866년 10월 16일 강화부에 입성했을 때, 지휘관 로즈 제독의 표현을 빌린다면 아주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수많은 서적들로 가득찬 도서실을 발견하고 그 소장품들을 프랑스로 실어 갔다. 이때 프랑스군이 약탈한 서적의 대부분은 의궤 도서들이었다. 의궤가 약탈의 일차적 대상이 된 것은, 그것들이 임금이 친히 열람하는 어람용 의궤로서 최양질 용지인 초주지(草注紙)와 고급 비단 등으로 제작된 호화로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 약탈된 물품에는 도서 340여 권 외에도 지도 2점, 족자 7개, 대리석판(玉冊) 3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도서들은 문화재로서의 가치 이외에 당시의 생활상을 살필 수 있는 사료들로서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한국본 목록에 의하면 이 도서관에는 외규장각 도서 외에도 『소학집성(小學集成)』, 『규장각지(奎章閣志)』,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풍고집(楓皐集)』, 『고려고비(高麗古碑)』 등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러한 책들은 그 소장 경위조차 불분명하다. 또 이 도서관에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로 확인된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1377년 청주 흥덕사 간본)』이 소장되어 있다.

곡절 많은 한국 근현대사를 반영이라도 하듯 우리의 소중한 기록문화 유산은 상당수가 고국을 떠나 해외 각지를 떠돌고 있다. 임진왜란과 같이 전근대에도 각종 문화재와 기록물이 해외로 대거 유출된 적이 있지만, 아무래도 유출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제국주의 침략 이후의 일이다.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 약탈이 초창기 사례에 해당한다면 일제 강점 이후에는 문화재와 기록물들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반출되었다. 확실한 숫자를 파악할 수 없지만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탈취해 간 문화재는 줄잡아 2만여 점으로 추산되고, 이 가운데에는 전적(典籍)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일본 내각문고(內閣文庫)의 조선시대 전적 250여 종을 비롯해서 동경박물관 소장의 각종 문화재와 고고자료, 경도대(京都大) 소장 전적류 200여 점, 천리대(天理大)에 소장되어 있는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등 일본의 박물관과 개인들이 소장한 한국의 기록물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 기록물의 대부분은 중요한 문화재들일 뿐만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한국 회화사의 기점이 되는 귀중한 문화재일 뿐만 아니라, 신숙주, 박팽년, 서거정, 성삼문 등 당대 제일급의 문인, 묵객, 학자, 명신들 21명이 자필발(自筆跋)을 남김으로써 이들의 문장과 서예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당대 제일의 기록문화 유산이다.

일본에 소재한 우리 기록문화 유산들이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반출되었는지는 체계적인 조사가 되어 있지 않다. 일제 침략이 본격화된 1905년경부터 일본의 골동품상과 호리꾼(호리는 도굴의 일본말)이 일확천금을 꿈꾸고 한국 각지의 고분을 파헤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문화재 약탈 행위는 강점기 내내 계속되었고, 심지어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한국 침략의 원흉으로 알려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대단한 고려자기 애호가로 알려져 있고, 닥치는 대로 골동품을 사들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또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는 식민사관에 의해 체계적으로 한국 역사를 왜곡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사 편찬 작업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와 사회, 문화에 관한 자료도 계통적으로 수집하였다. 현재 일본에 있는 우리 기록문화 유산들은 이와 같이 개인들과 일제 식민지 통치기관들에 의한 조직적인 반출의 결과일 것으로 추정된다.


약탈당한 문화재 반환의 어려움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주요한 1차 자료를 외국 자료들과 외국에 소장되어 있는 토산(土産) 자료들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은 국권 상실, 일제 식민지, 분단, 전쟁 등 우리 역사의 좌절과 왜곡을 반영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 사회와 조선인 민족해방운동 연구는 조선총독부가 남겨 놓은 책자와 문서들, 또는 일본 경찰과 사법 당국의 심문조서(審問調書)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고, 사회주의운동 연구는 모스크바에 있는 코민테른 문서고를 뒤지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위에서 예로 든 북한 노획 문서철 자료들은 그 쓰임새가 주로 북한 연구에 한정되어 있지만, 해방 직후 남한 연구에서도 국내 자료들보다 당시 미군정(美軍政)이 생산한 각종 자료들이 더 유용하게 쓰이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자료들 역시 대부분 미국 국립문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유산들은 우리 민족의 문화 창조의 소산으로서 그것에는 우리의 얼과 혼이 서려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것을 낳은 땅, 그 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사회를 떠나서는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 그 중에서 기록문화 유산은 그 자체가 우리 역사의 일부분으로서 예술적 가치와는 또 다른 차원의 높은 사료적 가치와 학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해외에 있는 우리 기록문화 유산들은 약탈, 노획, 부당 거래, 밀반출 등 불법적 경로를 통해 유출된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의 민족적 정서는 해외에 산재한 우리 기록문화 유산들을 무조건적이고 하루 빨리 돌려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고,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과거 몇 차례에 걸쳐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들을 원래의 소유국으로 되돌려 줄 것을 결의하는 등 국제적 규제가 강화되었지만 우리 기록문화 유산의 반환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991년이래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위해 한국 정부와 프랑스 정부가 벌인 협상은 한번 약탈당한 문화유산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정용욱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2001.1.문화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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