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도본부는    · 시작페이지로    · 즐겨찾기    · 오시는길    · 메일보내기    · 사이트맵

2022년 11월 29일 화요일

내용검색  

약탈당한 문화재

세계마당

우리마당

재외동포

문화재

동북공정

순국선열

상고사

역사

  현재위치 > 독도본부 > 민족광장 > 약탈당한 문화재 > 칼럼

 


일제의 우리 문화재 약탈과 밀반출

일제의 우리 문화재 약탈과 밀반출
일제의 우리 문화재 약탈과 밀반출
 
도쿄 아오야마의 네즈 미술관에서
 
 
글·사진 / 김정동 목원대 교수, 문화재 전문위원
  E-mail :
cdkim@mokwon.ac.kr

잃어버린 우리 것
오래전 도쿄 미나미 아오야마(南靑山)에 있는 네즈(根津) 미술관을 찾은 적이 있다. 놀라운 것은 그 넓은 미술관 정원이 온통 우리나라의 석물들 차지였다. 웬 석물이 여기 이렇게 많은가 의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석물 앞에 설명문 하나 써 있지 않았던 것이다.
1962년 6차 한일회담 때 문화재 분야 대표였던 이홍식(李弘植)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미술관 안에는 우리 문화재급 유물들이 수두룩했는데 이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다. 그곳 담당자들은 골동상에게 산 것이라고 했다 한다.
우리 정부가 낸 『한일회담백서』를 보면(대한민국정부, 1965.3.20) 당시 조사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석조물로서는 고려시대에 속하는 것으로서 강릉 환성사 석불(도쿄박물관), 평양 영명사 석탑(大倉박물관), 고려시대 사리탑(도쿄 네즈 미술관), 조선 초기 사리탑(오사카 미술관) 등이 있고 그밖에도 도쿄박물관에 묘지(墓誌), 금속제 장신구 등 많은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또한 신라시대 금관, 귀거리 등의 금제품이 오쿠라(小倉) 소장품에 포함되어 있고, 도자기로서는 도쿄박물관에 고려시대 청자매병(梅甁) 수주(水注)향분(香盆)대첩 등이 있다.

고 되어 있다. 이 자료를 보고 나는 네즈 미술관을 찾았던 것이다.
이곳에는 사리탑 뿐 아니라 5중탑, 부도 그리고 국보급 불화 「아미타여래도(阿彌陀如來圖)」, 고려 다완(茶碗), 조선 청자 등도 소장되어 있었다. 고려·조선조의 것을 집중적으로 모았던 ‘아키야마(秋山) 콜렉션’도 이 미술관에 넘겨져 있었다. 소장품은 모두 7천 점에 육박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동양 여러나라와 조선에서 약출(掠出)하거나 사들인 것이라 한다.
미술관의 설립자 네즈 가이치로우(根津嘉一郞, 1860-1940)는 정치가 겸 실업가였다. 석유·제분·맥주 등의 사장이었고 중의원 의원이기도 했다. 1905년에는 도부(東武)철도를 만들었고 국민신문도 창간했다. 정경언(政經言)을 한 손에 거머쥔 실력자였다. 고미술 애호가라는 고상한 칭호도 얻고 있었다.
그가 1940년 죽자 후손들이 그 자택을 네즈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네즈는 1906년부터 이곳에서 살았는데, 그 자신의 저택과 정원이 지금의 미술관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약출의 의미
여기서 문화재 약출의 의미를 다시한번 살펴보고 그 반환 대책을 논의해 보기로 한다.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역사상 외세의 침략에 의해 수많은 문화재를 약출 당했다. 그 숫자는 아직 다 모를 정도이다.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는 그것들을 기록조차 남기지도 못한 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재 파괴·약출은 일본·중국·몽골·프랑스·미국 등에 의해 자행되었다.
1904년에 러일전쟁을 도발하고 조선을 침략한 일제는, 문화재 약탈요강을 군부대들에 하달하고 조선 문화재를 무제한 약탈할 것을 명령했다. 건축물까지 약출했다. 그들은 궁궐과 산하까지 파괴했다. 그들은 이런 범죄행위를 가리켜 오히려 ‘참으로 나라를 빛내는 행동’이라고 극찬까지 했다.
약출 품목으로는 고려 고분 도굴품이 대다수를 차지했는데, 특히 고려자기는 모두 무덤의 도굴품이다. 우리에게 고려자기는 전세품(傳世品)이 거의 없었다. 일본인은 개성지방과 강화도일대의 고려왕릉을 비롯한 민묘(民墓)에 도굴을 자행하였는데, 그 수는 만 여기(基)를 넘으며 도굴을 면한 것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약간’ 일어났을 때 소네 아라수케(曾홷荒助, 1849-1910) 통감은 “결국 남몰래 가져가기 때문이며, 공공연히 선물하는 것으로 한다면 아무런 지장도 없다”고 까지했다. 이것은 식민 당국자의 사고를 알 수 있는 한 예이다. 이후 하급 관리·소상인들까지 조선 문화재를 약출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1910년대 해주(海州)에서의 일이 이미륵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에 기록되어 있다.

왜놈들은 그처럼 많은 성벽을 부쉈고, 명예로운 건물을 이축하였고, 오래된 묘를 파냈다. 그의 마지막 일은 더욱 악질적이었다. 왜놈들은 묘에서 사자(死者)에게 공양된 고귀한 도자기를 훔쳤다. 그들은 그것을 동경에 가져가서 아주 비싸게 판다고 했다. 발굴된 수많은 묘가 하늘을 쳐다보고 있지 않은 산이 없었다. 아주 오래된 인간의 뼈가 산 햇볕을 쐬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도로 공사를 한답시고 야만인들은 많은 낡고 낡은 묘지를 발굴해서 모독했다. 사람들이 산 밑을 걷고 있노라면, 종종 사람의 뼈다귀가 머리 위로 떨어지곤 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놀라 달아났다. 나도 하늘이 인간의 그런 비행을 복수하리라고 믿었다. <132쪽>

초대 통감 이토(伊藤博文), 2대 통감 소네,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 등 권력자와 오쿠라, 시브자와 등 정상배들은 고분 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석탑·석상 그리고 고서·서화 그리고 궁중건축물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해 갔다. 그들은 이를 천황과 고위자에게 뇌물로 바쳤다. 이토 문서·데라우치 일기 등은 그 한 증거물이다.
그 밖에도 학자·민간인들에 의해 약출되었는데, 세키노(關野貞) 등 관변 학자 그리고 야나기(柳宗悅)같은 콜렉터들은 당시 그 일에 첨단이었다. 또한 오쿠라(小倉武之助, 일제시 남선전기주식회사 사장), 가와이(河合弘民, 한말 통감부시대부터 데라우치 총독시까지 경성법률전문학교 강사) 등이 갖고 간 것들은 대개는 도굴에 의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불법적으로 입수한 것들이다. 그들이 수집한 총점수(總點數)는 약 1,000점으로 추산되며, 그 중 40여점은 우리나라 문화재의 국보급에 속하는 것이다. 석조미술품 중 현저한 것, 경주 석굴암 등에서 반출한 것, 기타 현재 뚜렷이 알려진 석탑·석불 등이 있다.
약탈 중 최악의 경우는 태평양 전쟁 때 벌어졌다. 일제는 금속류 공출을 강요, 사찰의 동종·불상 그리고 집 물건까지 약탈했다. 공출된 것들은 모두 부평에 있는 조병창(造兵廠)으로 모아졌고 용광로 속으로 들어갔다. 문화 말살의 전형적 죄악이 되는 행위였다.

약탈 문화재의 조사
우리 문화재는 현재 일본에서 버려지거나 숨겨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창고에 수장된 상태이다. 어떤 것은 일본의 ‘국보’·‘중요문화재’·‘중요미술품’ 등으로 지정되어 있다. 1965년 조사에 의하면 이미 80여 점에 이르고 있다. 국적불명의 것이 되어 있는 것이다.
궁내청에 있는 강원도 오대산 사고(史庫) 소장본의 경우는 조선총독부가 합법기증형식을 빌어 1922년에 반출한 것으로 71종의 의궤가 조사되었고, 유일본은 3종이나 존재한다. 그러나 철종 이전에 만들어진 90여종의 의궤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어졌다. 『조선왕조실록』은 일본정부에 의해 동경대학으로 약출되었으나, 관동대지진 때 불타 없어졌다.
우리 해외문화재조사사업은 1984년부터 문화재청(문화재관리국 국립 문화재연구소)이 시작했다. 그간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로 우리 해외 문화재 숫자는 일본·미국·프랑스·러시아 등 20여 개 국에 약 7만 5천 점이라고 한다. 이 점은 적극적 조사·연구보다는 신문자료와 해외공관의 자료 수집을 종합한 결과이다.
얼마 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2002.2.4, 아시아판)에 따르면, 일제는 19세기 말부터 1945년 8월까지 조선에서 적어도 10만 점 이상의 문화재를 약탈해 갔다고 하고 있다. 이 두 자료를 보면 대략 10만점이 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6차에 걸쳐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회화·조각·공예류 등 해외 반출 문화재 현황조사를 했다. 일본이 중심이 되었고, 프랑스·미국·러시아 등 4개국이 조사 대상이었다. 조사유물은 3,266건에 불과했다.
또하나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2002년 8월 31일 현재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3만 4천 157건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중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확인된 것은 1만 9천 106건이고, 기타 추정되는 것은 1만5천 157건이다. 이 조사도 아직은 추정치에 불과하다. 하루속히 전량이 조사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 우리 정부의 조치
우리는 해방직후 민간의 학술문화단체가 연합하여, 피탈된 문화재의 반환을 미극동군사령부를 통해 일본 정부에 요구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에 의해 그것은 무시되었다.
『타임』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일본의 점령군사령관이었던 맥아더가 1948년에 있었던 라디오 연설 녹취록을 발견하였는데, 그 녹취록에는

“군사행동과 점령에 의해서 상실되거나 파괴된 문화재의 원상복귀에 대해서 나는 그것이 소수 의견일지라도 아주 강력히 반대한다.
조선의 문화재를 반환하는 문제는 미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을 악화시키고, 일본을 이념적 압력에 취약하게 만들며, 전복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한 토양을 제공할 우려가 있다.”

고 하고 있다.
미군정 당국이 약탈자를 비호하며 우리가 약탈 문화재를 반환받는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불법수단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된 한국 문화재 중 명목이 뚜렷하고 소재가 확실한 것을 선정하여 우리에게 반환해 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대한민국정부, 『한일회담백서』, 1965.3.20)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협상 때 일본이 소유하고 있는 조선 문화재는 모두 정당한 수단에 의한 ‘입수물(入手物)’이므로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하면서, 다만 이러저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일부 문화재를 ‘증여(贈與)’한다는 극히 일본적인 입장을 취했다. 일본은 1990년대 초 데라우치 문서 반환 때도 이런 괴변을 늘어 놓은 적이 있다. 
그 후 한일 양국은 1400여 점의 약탈문화재 반환에 합의했지만 경제지원 대가로 서둘러 협상을 마무리해버렸고, 추가로 확인되는 약탈문화재에 대해서도 일본국민 즉, 민간인이 소유한 약탈문화재는 일본 정부가 기증을 권고할 수 있다는 합의의사록만 별도로 작성해버린 것이다.

우리의 대응방안
우리는 유네스코의 협약안을 토대로 해서, 1965년 이후 일본과의 협정에서 누락된 약탈 문화재 반환을 위한 문화적·도덕적 차원에서의 꾸준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해당국에 이 분야 전문가를 주재시킬 필요가 있다. 개인이 일본 궁내청 등 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조선 문화재를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03년 4월 초 우리 문화재청과 일본 문화청간의 ‘한일문화재 교류협력에 관한 토의 기록’ 약정서가 체결되었다. 인적 교류와 유무형 문화재 협력이 뼈대라고 한다. 두나라 당국자의 교류에 의한 약탈문화재 반환 교섭을 기대해 본다. 또한 관련부처인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과 국립중앙박물관, 국가 기록문서보존소, 외교통상부 등이 협력, 각국별 전담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문화재 반환은 연구·조사사업이 우선이다. 아직 일본 땅에 있는 것의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해당 전문가를 풀제도로 운영하고 장기적으로 조사·요구·환수의 단계를 거쳐야 할 것이다. 장기적 예산 편성도 해야만 한다. 국가가 할 수 없는 일에는 민간 차원의 협업이 필요하다. 민간연구에 배타적 자세를 보이는 정부는 없는 정부만 못한 것이다. ‘참여정부’는 하루속히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일제가 우리 문화재에 끼친 범죄행위는 아직 청산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우리 문화재를 파괴 말살하고 약출해간 범죄 행위가 ‘참으로 나라를 부끄럽게 한 행동’이었음을 인식하고 지금이라도 그것들을 모두 반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입수물’이 아닌 인국(隣國)의 문화재인 것이다. 약출된 문화재를 남김없이 찾아 와야 하는 일은 우리 세대의 의무인 것이다.

월간 아리랑 2003-04-28 (135 호)
arirang21@arirang21.com
관련
내용
관련내용이 없습니다

 

 

| 개 요 | 이 책은 2008년도에 일본 중의원에서 독도문제와 관련해 내각에 제출한 ...

 

 
  Copyright ⓒ 2001.독도본부. All rights reserved
전화 02-747-3588 전송 02-738-2050 ⓔ-Mail : dokdo2058@korea.com
후원 :국민은행 024-047973-01-019(독도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