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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대사현묘탑의 수난기

돌 조각 한 톨도 우리 것이다

-국보 101호 원주 법천사터 지광대사현묘탑(부도탑)의 수난기

원주에 있던 법천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후 이제 터만 남아 있는 절로 통일신라시대(성덕왕 24년, 725년)에 세워져 고려시대에 크게 이름을 날렸던 곳이다. 법천사가 크게 되는데는 이곳에서 출가하고 나중에 이곳에서 열반에 든 지광국사(984년∼1067년)의 몫이 컸다. 지광국사의 속명은 수몽이었는데 법천사(당시 이름은 법고사, 후에 법천사로 바뀜)에서 해린이란 법호를 받고 이후 여러 절을 거치게 된다. 84세의 생을 사는 동안 법천사에 머문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새롭게 태어난 고향처럼 지광국사에게 법천사는 항상 마음에 담고 있는 곳이었다. 20세를 지나면서 이미 큰 덕을 이룬 지광국사는 고려 목종·현종·덕종·정종·문종 등 다섯 명의 왕을 거치면서 내내 지극한 존경을 받아서 모두 열 두 번에 이르는 법호와 법계를 내려 받았다. 특히 문종의 아들이었던 대각국사 의천이 출가하여 가르침을 받았던 이가 지광국사였다.

고려 문종 때 지광국사가 열반에 들자 문종은 시호를 지광(智光)이라 하였다. 시호란 그 사람의 인생을 단 두 글자로 압축하여 나타내는 것인 만큼 지광이란 그의 시호에서 해박함과 뛰어난 학문을 알게 된다. 시호와 함께 부도탑과 부도비도 세운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것이 탑이라면 나라의 스승으로 모시던 큰 승이 열반에 들면 이들의 사리를 모아 탑을 쌓고 모셨는데 이를 부도탑이라 한다. 부도탑과 함께 그의 일생을 글로 새겨 부도비를 올리는데 지광국사의 부도탑은 문종이 현묘탑이라 이름 붙여 법천사에 세웠다. 부도비는 4.55m로 비신 위에 올려진 머릿돌(이수)과 비신을 받치고 있는 귀부의 조각이 훌륭하다. 조선시대 무학대사의 부도탑과 부도비의 화려함과 비할 만 하다.

그러나 한 쌍을 이루며 세상을 불법으로 밝히던 큰 승을 기념하던 부도탑과 부도비는 현재 서로 떨어져 있다. 부도비는 원주 법천사터에 그대로 있지만 가장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부도탑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곳으로 옮겨다녔다. '미인박명'이라 했던가. 그 화려함만큼 세속의 탐함도 많았던 탑이다. 일본땅으로 갔다가 다시 조선 총독부 박물관 앞 분수대 중앙을 치장하던 부속품이 되었고 한국전쟁 때 훼손되었다가 지금은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의 야외 전시장에 놓여 있다.

전체 7층으로 올려있는 탑은 빈 공간이 없다. 조금의 여백이라도 있음직한 곳곳에는 장인의 손길이 아름답게 닿아있다. 밑에 두 층은 네 귀퉁이가 용의 발톱 모양을 한 조각으로 이어져 있다. 원래 각 귀퉁이 앞에 사자상이 있었는데 여러 곳을 떠다다니던 중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 각 층에는 여러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큰 두 개의 탑신 중 아래는 사천왕과 흡사한 8명의 신들이 한 면에 둘 씩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 위 탑신에는 문과 창문 등이 이국적인 느낌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바로 이곳에 지광국사의 사리가 모셔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함 탓이었을까 일제는 합방을 하곤 얼마 되지 않아 이 탑을 일본으로 옮겨갔다. 어떻게 옮겨졌는지 알 수 없는데 일본 오사카로 갔던 부도탑은 3년이 지난 후 또 어떻게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왔지만 제자리는 아니었다. 경복궁의 서쪽문인 건춘문 앞 조선 총독부 박물관의 분수대를 장식하기 위해 분수대 중앙에 놓여졌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훼손하고 도둑질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한 시절을 대표하는 걸작을 국보나 보물로 골라 보호하는 까닭은 분명하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내 손 어딘가에 장인의 솜씨가 숨어 있음을 보여주기에 자랑스럽고 많은 터울로 나뉘어 있는 시간을 건너 함께 이 시대에 있음이 감격스럽다. 그리고 선조의 고통을 똑같이 그렇게 인내해내야 했기에 가엽다.
망향(望鄕)의 한과 타향살이의 애절함은 물론 생명체의 것이다. 만들어진 물건에 고향을 따지고 이국을 떠다닌 서러움을 얘기하는 건 감정이입이라 비웃음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지광국사현묘탑이라 불리는 이 서늘한 돌덩이를 보면 하얀 마음에 우리네 가슴이 저미는 까닭은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선희(한국사) 2003.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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