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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2월 09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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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한국 국보 1


경천사 십층석탑(국보 제86호)

    일본을 넘나든 시련의 탑

       일본인은 고분의 유물 뿐만 아니라 옛 절과 석탑, 불상, 범종, 기타 불교미술품과 책에 이르기까지 닥치는대로 탐을 내어서 한국의 모든 종류의 문화재가 참혹한 수난을 받았다. 1906년 한국을 방문했던 일본정부의 고관 다나카는 개성에서 50리 떨어진 부소산 기슭의 경천사터에 서 있던 십층석탑을 일본으로 운반했다. 이미 폐허가 된 경천사지에는 고려시대의 특이한 대리석탑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높이가 13m도 넘는 거대한 탑신마다 온통 섬세한 부조를 새겨놓은 걸작이었다. "고종황제가 기념으로 하사했다. 대리석탑을 서해로 해서 도쿄의 다나카 대신의 정원에 옮겨라."라는 명령을 앞세워 석탑을 마구 해체, 포장해서 수십 대의 달구지로 양밤에 개성역으로 빼돌렸다가 인천으로 운반했고, 다시 배에 옮겨 싣고 일본으로 반출시킨 것이다.
       그러나 경천사 십층석탑의 불법반출 사건은 금새 소문이 나면서 양심있는 일본인 사이에서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다. 누구보다도 엄중하게 그것을 지적한 사람은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였다. 그는 "다나카가 실어간 석탑을 원위치로 돌려보내라. 그것은 불법적인 반출이었다." 라고 주장하며 다나카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다나카는 몇 년동안 석탑 반환을 거부하다가 여론의 압역과 조선총독부의 계속적인 반환요구에 굴복하여 다시 반환하였다. 탑재들이 서울에 도착했을 때에는 운반과정에서 이미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어 있었다. 그래서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다시 방치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오늘의 위치인 근정전 동쪽회랑밖에 모습으로 보수되어 다시 복원된 것은 40년이 흐른 1960년의 일이었다.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보 제103호)

    다시 볼 수 없을 위기에 처한 걸작

       1930년에 전남 광양군 중흥산성의 폐사지에서 불법반출되어 대구에 살던 일본인 수집가 이치다의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고대 유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750원을 주고 쌍사자석등과 삼층석탑을 사들였다. 그러나 그들의 파격적인 매수액에 놀란 주민들이 뒤늦게 불법행위임을 깨닫고, 이어서 당국이 개입하여 그의 음모는 결국 실패했다. 석등은 한동안 전남 도지사 관사로 옮겨졌다가 1937년 서울 박물관으로 올라와 그해 11월 경복궁 안에 복원되었다. 우리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운명에 빠지게 될 것을 여러 곡절 끝에 다시 보게된 것이다.

정혜사지 십삼층석탑(국보 제40호)

    상륜부를 영원히 잃어버린 비운의 석탑

       경주 근처인 월성군에 위치한 국보 제40호의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은 1911년 약탈될 뻔했다. 수 명의 반출음모자들이 밤중에 나타나 상륜부와 위로부터 세 층을 해체하여 땅에 내려 놓았을 때, 지나가던 마을 사람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 호통을 쳐 범인들은 도망가고 석탑은 위기일발에서 화를 면했던 것이다. 그후 이 십삼층석탑은 땅에 내려진 탑재를 올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십층의 꼴로 서있었다. 그 와중에 상륜부는 아주 잃어 버리고 말았다.

     

고달사지 부도(국보 제4호)

    부도의 내부 유물을 절취당한 대표적인 사례

        1934년 경기 도지사가 총독 앞으로 보낸 보고서에는 여주군 북내면에 있는, 당시 보물 제15호로 지정되어 있던 고달사지 부도의 내부 유물에 손을 댄 자가 있다는 내용이 있다. "부도 전방에 있던 장군석을 들어다 부도의 기단 옆에 세워놓고, 기계를 사용하여 연대(앙련이 조각된 상대석)를 한쪽으로 들어올린 후, 그 사이에 작은 돌들을 끼워 간격을 고정시킨 후, 내부를 뒤진 흔적이 있음. 뿐만 아니라 기단 속에 유물을 넣었을 사리장치가 없어진 것으로 미루어 절취당한 것으로 인정됨."
       석물을 운반하여 석물을 약탈했던 일본인들은 이렇게 탑 속에 있는 유물만 꺼내는 수법으로 발전해 나갔다. 탑이나 부도를 밀어 버리거나 무너뜨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유물을 훔쳐갔다. 석탑 속의 사리장치 유물을 노리는 범행은 1920년대에 급격히 성행하여, 불법반출의 화를 면했던 석물들도 성한 것이 없게 되었다. 그들은 탑 속에 있는 금동제 불상이나 보탑, 합, 기타 사리병을 약탈하고 그 과정에서 탑이나 부도는 파괴되었다. 심지어는 고려시대의 현화사 칠층석탑 속의 사리장치를 훔치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하여 석탑을 폭파하기까지 했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국보 제78호)


     
    일본인 불법자들이 약탈하여 데라우치 총독에게 진상했던 걸작품

        1912년 이왕가박물관이 입수했던 금동미륵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과 크기와 형태가 거의 같은 또 하나의 반가상이 어디에서인가 불법반출되어 서울에서 거액의 판로를 찾다가 관헌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데라우치 총독에게 기증형식으로 진상하게 되었다. 총독 관저로 들어간 이 반가상에 대해서 정확한 출처를 알 수 없었고, 다만 경상도에서 발견된 듯하다는 추측에 그쳤다. 유물의 불법적인 반출과 출토지를 말하려 하지 않았고, 약탈경위와 증거를 완전히 인멸시켰기 때문이었다. 데라우치 총독이 일본인 불법자들로부터 기증받아 개인 소유로 총독 관저에 갖고 있던 반가상은 데라우치가 총리대신으로 승격하여 일본으로 돌아가던 해인 1916년 총독부박물관에 기증되었다.

     

                                            

<경천사지 십층석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고달사지 부도>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자료: http://home.cein.or.kr/~sunje98/top1/fram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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