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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제국주의 '영원한' 저항

많은 이들이 임박한 전쟁을 막지 못하는 무능력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미국은 너무 강력하고 침공 의지 또한 확고하다. 우리의 상상력이 냉전시대 초강대국간 대결에 대한 기억으로 한정되어 있어, 현재 상황을 특수한 것으로 보기 쉽다. 하지만 과거에도 비슷했다. 1940년 여름, 프랑스가 함락된 뒤 나치 독일의 세계지배 욕망을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폴레옹이 지배한 1800년대 초 유럽도 비슷했다.

지난 몇년은 국제권력 관계에 관한 많은 교훈을 보여주며 이 교훈 모두가 불길한 것만은 아니다. 첫번째 교훈은, 도전받지 않는 유일 강대국 체제는 평화가 아니라 분쟁을 촉발한다는 것이다. 냉전 종식 직후 서방세계에선 미국이 자신의 헤게모니를 제도화하되 다자구조의 질서를 지지할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유럽·일본·중국은 안보영역에서는 미국의 장기적인 지배를 용인하되 경제영역에서는 통제된 경쟁을 벌이는 조건에 동의할 듯했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냉전 이후시대가 냉전시대보다 훨씬 불안정한 시대라는 것이 점차 분명해졌다. 이 불안은 전통적인 국가 단위와 ‘비대칭적 전쟁’을 벌이려는 ‘비이성적인’ 비국가 단위 세력의 등장이 아니라, 힘의 균형이 변화한 데서 비롯됐다.

존 미어샤이머는 <거대 권력 정치학의 비극>에서 국가간 힘의 균형을 다루면서, 강력한 권력은 방어적 균형보다는 군사, 정치적 압도적 우위를 추구한다는 점을 설득력있게 주장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양극구도가 그 이전의 다극구도에 비해 더 안정적이며 붕괴 위험도 적다는 그의 주장 또한 옳다. 하지만 그가 지적하지 못한 것은, 오늘날처럼 압도적인 초강대국 주변에 몇몇 약한 세력들이 존재하는 상황은 분쟁과 긴장, 불안을 더 많이 유발한다는 점이다. 그를 비롯한 많은 미국 지식인들은 미국이 히틀러나 소련 같은 잠재적 헤게모니 세력에 맞서는 균형추에서 세계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공격적인 세력으로 변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많은 미국 비판가들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를 미국 우파의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한 세계관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이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케 한다. 부시의 일방주의 이념은 특정한 구조적 결합 곧 냉전 승리의 주역인 민-군 합동 ‘방위체제’의 산물이다.

억지력에서 헤게모니세력으로의 변화를 은폐하기 위해서는 정당화가 필요했으며, 그래서 소련을 대신할 세력 곧 북한, 중국, 알카에다, ‘악의 축’이 줄지어 나타났다. 하지만 이 대체세력 만들기는 미국민들로부터도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2001년 9월11일 테러공격은 일방적 개입주의에 대한 국내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좋은 소식도 있다. 도전받지 않는 헤게모니는 압도적인 힘을 갖췄다고 할지라도 일시적이라는 점이 바로 그렇다. 약한 세력들은 단기적으로 순응하거나 복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것이 재앙을 부르는 전략이라는 점도 잘 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맞대결이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결은 사담 후세인을 둘러싼 것이라기보다 헤게모니 세력 억제를 둘러싼 것이다. 만약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강력히 막아내는 지점까지 갈 의지가 있다면, 그들은 자국의 안보에 직접 관련된 미국의 향후 움직임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이라크 위기가 어떻게 해결되든지 이미 냉전시대에 형성된 대서양 양쪽의 연합은 빠르게 해체되어가고 있다. 또 현재의 대결국면은 ‘권력 균형의 정치학’이 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과 러시아가 프랑스, 독일에 합세하면서 1차 세계대전 이전 ‘3각 동맹’의 현대판이 형성되고 있으며, 제3세계 세력인 브라질, 어쩌면 남한도 여기에 동참할지 모른다.

이런 움직임은, 다른 지구적 저항운동의 진전과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먼저 이슬람권에서 큰 지지를 얻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있다. 이라크 침공은 아마도 이슬람권의 이른바 중도적인 정권을 급속하게 약화시킬 것이고, 미국의 개입주의에 타협없이 저항하는 정부를 탄생시킬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는 파키스탄과 사우디 아라비아, 인도네시아에서 급진적인 이슬람 정권을 보게 될지 모른다. 기업 주도의 세계화에 맞서는 지구적 운동도 있다. 이 운동은 반전운동과 합치면서 강력한 반미세력을 형성했다. 이 운동의 다양한 요소들은 앞으로 몇몇 나라에서 정부 권력을 장악할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브라질, 베네수엘라, 에콰도르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와 세계화 반대운동의 주요 기능은, 미국이 벌이는 일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그들의 목적이 노골적인 헤게모니 장악 시도임을 폭로하는 것이다.

앞으로 몇십년 동안, 우리는 자신의 이익에 맞게 세계 구조를 바꾸려는 미국의 뻔뻔스런 시도를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미연대 또한 강화될 것이다. 역사의 확실한 교훈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제국은 일시적이고 저항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월든 벨로/필리핀대 교수·사회학 2003.3.3.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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