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크리스토프·NYT칼럼니스트〉
터키 남부의 이라크 접경지역 바트만에서 만난 중년의 쿠르드인은 나를 황량한 언덕으로 데리고 가더니 자신이 구타와 전기고문, 성적모욕을 당했던 경찰서를 가리켰다. 경찰서에서 800m쯤 떨어진 곳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도중 우리를 발견한 경찰이 탱크를 몰고 돌진해 왔다. 나는 도망쳤지만 그는 도망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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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쿠르드족은 임박한 이라크 전쟁이 1980~90년대 ‘터키 쿠르디스탄(쿠르드의 땅)’에서 자행된 만행보다 더 끔찍한 일을 불러올 것이라며 두려워한다. 세계는 자주 쿠르드족에게 등을 돌렸다. 미국은 다시 그들을 배신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터키를 동맹에 끌어들이는 데 혈안이 된 미국은 터키군 수만명이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지역으로 진군하는 것을 허락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터키는 쿠르드족의 유전 장악을 막기 위해 이라크 쿠르드족을 ‘무장해제’시킨다는 계획이다. 터키의 ‘이라크 쿠르디스탄’ 침공은 부도덕할 뿐 아니라 이로 인한 양측의 충돌은 터키 내부로 번질 위험도 있다.
“쿠르드족에게 터키 정부는 사담 후세인보다 훨씬 나빴다”. 학식 있는 쿠르드인 한 명은 비통하게 말했다. 그 말은 나를 아연케 했다. 터키는 사담처럼 독가스를 사용하거나 대량학살을 자행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만난 쿠르드인들은 모두 똑같이 말했다. 그들은 과거 터키군이 남편들이 보는 앞에서 부인들을 욕보이거나,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남자들을 탱크에 묶어 죽을 때까지 끌고 다녔다고 증언했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을 결심한 데는 후세인의 억압에 대한 응징의 의미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라크인을 위해 전쟁을 한다는 미국의 주장이 신뢰와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려면 쿠르드족이 미국의 적인 이라크뿐 아니라 미국의 친구인 터키에 의해 살육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새로운 충돌과 억압을 불러올 터키의 이라크 북부 침공도 용인해서는 안된다.
유럽연합(EU) 가입이 거론될 만큼 인권 신장을 이룩한 터키가 왜 이토록 쿠르드족에게 무자비한 것일까. 터키는 1차대전 패전 직후 서구 열강들이 터키를 분할한 세브르 조약 탓에 쿠르디스탄의 번영을 두려워한다. 그 이후 터키는 (쿠르드와의) 화해는 국가 분열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 왔다. 최근 몇 년간 화해가 진전됐지만 임박한 이라크 전쟁은 증오를 되살렸다.
부시는 쿠르드족에 대한 이라크의 극악무도함을 열렬히 지적하지만 서구는 단 한번도 터키의 비슷한 만행에 분노한 적이 없다. 터키 정부와 쿠르드 노동당(PKK)이 싸우는 동안 양측은 3만명 이상의 민간인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고문과 테러를 자행했다. 터키는 또 최소 50만명의 쿠르드족을 쫓아냈다.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는 최근에도 귀향중이던 많은 쿠르드 난민들이 터키 정부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 보고했다.
터키 동남부는 여전히 ‘경찰국가’의 느낌을 준다. 나는 이웃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의 곤봉과 휘발유 세례를 받은 뒤 불에 탔지만 용케 살아남은 쿠르드인을 만나려고 외진 시골을 찾아갔다. 낯선 외국 기자가 또다른 악몽을 가져올지 모른다고 두려워한 그의 가족은 나를 쫓아내기에 급급했다.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유일하게 두려워하지 않았던 압두라힘 굴러(37). 그는 과거 터키군 장교가 그를 성적으로 욕보이려고 “막대기를 가져오라”고 부하에게 명령하는 것을 듣고 “당신이 뾰족탑(minaret·모스크의 탑)을 가져와도 나는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제 더 잔혹한 무언가가 용감한 쿠르드족을 짓누르고 있다. 나는 미국이 다시 쿠르드족을 배신하려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괴롭다.
〈정리/김재중기자 hermes@kyunghyang.com〉 2003.3.18.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