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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인권개선 ‘먹을 권리’부터

유엔 인권위원회가 지난 16일 대북 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북한 인권이 국제 문제로 공식화된 것이다. 이번엔 안 했지만 유엔이 북한에 대한 인권특별보고관을 임명할 수도 있다. 그는 국제법상 합법적인 내정간섭 역할을 하게 된다. 인권탄압하는 국가의 주권을 존중하는 것보다 인권보호가 우선이라는 자연법 사상에 근거한 것이다. 1999년 5월 유고가 인종청소를 감행할 때 미국 등의 다국적군이 내세운 공격의 명분도 이것이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한의 인권문제는 국제기구에서 논의된 적이 없었다. 인권단체의 접근이 막혀 있어서 근거자료 입수가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국제사면위원회와 아시아인권감시위원회가 북한의 정치범 실태에 대해 처음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기구들은 1988년 `북한의 인권’이라는 보고서에서 주민성분분류제에 대해 상세히 다루었다. 교육, 취업, 의료 등 국가로부터 받는 모든 수혜가 이 성분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학진학 심사에서 성적보다 사회성분이 우선시된다고 했다. 주로 당시 탈북자들의 증언에 바탕한 내용이다.

그후 북한 인권에 관한 정보와 자료들이 국제 인권단체에 상당한 수준으로 축적돼왔다. 고문과 공개처형 등의 얘기도 추가됐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프리덤하우스의 1998년판 세계인권상황 평가서를 보면 북한이 최악의 인권후진국 중 하나로 분류돼 있다. 이라크, 쿠바, 수단이 북한과 같은 등급이다. 한반도 문명사에 비추어 부끄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북한 인권에 대한 얘기들이 검증돼야 할 때라고 본다.

서구의 눈으로 보면 북한의 사법제도 또한 문제다. 사법부가 통치권에 직접 예속돼 있다. 또 북한 형법은 `사회주의 건설에 위해되는 행위’나 `사회적 위험성이 있는 행위’라는 식의 포괄적 조문을 두고 있다. 사회통념상 죄가 돼도 실정법에 구체적 규정이 없으면 처벌하지 못하는 서구 사회의 인권보호적 사법제도에 어긋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사회주의체제는 전체적으로 서구의 인권개념에 위배된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대화의 대전제는 서로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 정치이념과 체제의 중심가치를 구성하는 것이 인권개념이다. 대화의 최종단계에 가서야 그 접근이 가능하리라 보는 것은 그래서다.

예컨대 북한은 의식주와 교육, 의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권이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경제, 사회적 평등권을 중시하는 것이다. 유엔의 인권A규약이다. 더 나아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는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사회주의체제의 논리다.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인권문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유엔의 인권B규약인 사상, 신앙, 언론 등의 자유를 뜻하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가 무시된다.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자유주의 인권정책은 매우 강력한 체제 파괴력을 갖는다. 1975년 유럽에서 공산권 블록의 체제안전과 서방의 인권개선 요구가 맞바꿔진 헬싱키협정이 그것을 입증했다. 그 협정 이후 공산권은 튼튼한 울타리를 둘러쳤고 서방측은 그 너머로 인권이라는 촉매를 들여보냈다. 그러자 10여년만에 공산권 내부에서 자유화 물결이 일더니 그 울타리가 무너지고 말았다. 북한은 이것을 철저히 반면교사로 여긴다. 대북 인권정책이 어려운 이유다.

북한의 상황은 주민들이 우선 먹고 살아야 하는 생존권적 기본권 보장이 시급하다. 북한의 인권개선을 주장하면서 식량과 비료 지원, 그리고 경제협력에 반대하는 것은 인권에 대해 절반밖에 모르는 탓이다. 또 인권이 북한주민 일부의 문제라면 평화는 한반도인 전체의 생명과 재산을 좌우한다. 그런 인식이 곧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협상하라는 명령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번영정책이 성공할 때 인권개선은 그 자연스런 열매다.

김재홍/경기대 교수·남북한정치

2003.4.23.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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