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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유엔 ?

이라크 전쟁을 사흘 앞둔 지난 3월 17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책임을 수행하려고 한다. " 이는 미국이 유엔과 선을 긋고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일종의 결별 선언이다.

안보리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냉전 기간 중 미국과 소련이 앞다퉈 거부권을 남발하는 바람에 안보리는 공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면서 안보리는 기능과 권위를 회복했다.

미국은 국제문제 해결에 안보리를 적극 활용했다. 1991년 걸프전에선 안보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이라크 문제를 놓고 안보리는 분열했다. 무력 행사를 주장한 미국.영국과 무기사찰 계속을 주장한 프랑스.러시아.중국이 맞섰다. 미국은 프랑스가 거부권 행사를 밝히자 유엔을 '우회'해버렸다. 안보리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으며, 기능 정지 상태에 빠졌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불안전보장이사회'라고 비꼰다.

미국과 유엔이 대립하는 근본적 이유는 무력 사용에 대한 견해차다. 부시 독트린은 적으로부터 공격이 있기 전이라도 미국을 공격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선제공격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유엔 헌장은 외부의 공격에 대한 자위권 행사(제51조)와 안보리 결의에 따른 집단행동(제42조)을 제외하곤 무력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신보수주의(네오콘서버티브) 세력은 유엔을 '지난 세기의 유물'로 취급한다. 그 중심 인물인 리처드 펄 국방정책위원은 오늘날 주요 안보 위협은 국경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국경 안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유엔으론 이같은 위협에 대처할 수 없으며, 유엔을 개편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재의 유엔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해서 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단견이다. 유엔의 역할과 기능은 여전히 유효하다.

유엔은 세계 30여개 지역에서 평화유지활동(PKO)을 벌이고 있다. 지속 가능한 개발, 빈곤.기아.질병 퇴치, 환경 보존, 난민 구호, 인권 확대 등은 유엔이 아니고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에도 유엔의 역할은 필요하다.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군사력의 하드 파워와 함께 문화.가치관 등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조셉 나이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장은 최근 한 신문 인터뷰 기사에서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정책이 저지른 잘못 세 가지를 지적했다. 과도한 군사력 중시, 소프트 파워 경시, 그리고 유엔 등 국제기구의 중요성 무시가 그것들이다.

현재 유엔은 45년 창설 이래 최대 위기에 빠졌다. 안보리의 기능 정지 상태는 유엔 중심의 세계질서가 붕괴할 위험에 처했다는 얘기다. 비록 유엔이 구조적 결함을 갖고 있고,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따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유엔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국제기구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엔이 출범할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코델 헐은 유엔을 가리켜 '인류의 가장 높은 소망을 달성시켜줄 열쇠'라고 찬양했다. 그로부터 6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유엔은 바로 미국으로 인해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

정우량 국제전문기자   2003. 5. 1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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