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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한 농업협정

제5차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가 다가오는 가운데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오는 9월 멕시코 칸쿤회의를 위협하는 주요 문제는 농업협정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갈등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으나 핵심은 농업협정에 대한 개발도상국들의 반대다. 대다수 개도국한테 농업협정은 우루과이라운드를 구성한 19개 합의 가운데 가장 불공정한 것이다.

개도국에 시장개방 압력

세계무역기구 합의안은 모두에게 번영을 약속했으나 이는 자유화가 보편적으로 이뤄진다는 전제를 기초로 한 것이다. 농업의 경우 개도국은 시장을 열었지만 선진국은 피상적인 자유화 속에서 과도한 보호장치를 유지했다. 이것이 농업협정의 핵심 문제다. 협정은 사실상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두 독점적 농업강자인 유럽연합과 미국이 제3세계 시장을 놓고 벌이는 경쟁을 규율하는 체제다. 농업협정의 역사와 조항을 살펴보면 한국과 필리핀 같은 나라들에 불리하게 협정을 왜곡하는 냉엄한 경제적 현실정책을 알 수 있다.

우루과이라운드 이전에 농업은 세계무역기구의 전신인 가트(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틀 밖에 있었다. 미국이 1950년대에 수입품의 양적 제한을 금지하는 가트 11조의 면제를 원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설탕·유제품 등 농산품의 보호장치가 허용되지 않으면 가트를 탈퇴하겠다고 위협해 농산품에 대한 무기한 면제 자격을 얻어냈고 다른 나라에도 가트가 느슨하게 적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유럽연합의 공동농업정책(CAP)은 농가수입을 시장요인으로부터 보호하는 복잡한 가격망, 판매 보증, 보조금 등의 지원수단으로 변했다. 유럽 농가들이 과잉생산한 농산물은 수출을 통해 처분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이미 보조금을 받아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 미국 농가들과의 제3세계 시장을 둘러싼 경쟁을 촉발했다. 농업강자들간 경쟁의 피해자는 유럽연합의 저가 쇠고기 수출로 황폐화된 아프리카의 소규모 축산농가 등 남반구 농민들이었다.

보조금 경쟁이 극에 달하자 유럽연합과 미국은 기존정책 유지가 서로에게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양쪽은 우루과이라운드에 농업을 끼워넣게 된 것이다.

미·EU엔 보조금 제도화

농업협정은 어떻게 이를 달성했을까 첫째, 농업협정은 농업보조총액(AMS)이라는 포괄적인 국내보조를 향후 6년간 20% 감축하도록 하면서 북반구 나라들의 과도한 농업보조금을 제도화했다. 둘째, 수출보조금은 기한 만료시 추가감축은 정하지 않은채 6년간 총량기준 21%, 현금가치기준 36% 줄이며 제도화했다. 셋째, 농가소득 직접보조는 생산에 파급효과가 적다는 이유로 감축대상에서 제외하고 제도화했다. 넷째, 주목적이 해외시장 개척에 있는 미국 잉여농산물지원법과 수출신용보증프로그램 등을 감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많은 개도국 농가들은 재정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다양한 보조금 장치의 제도화는 농업협정이 95년 시행된 이후 7년 동안 북반구 농업이 세계시장에 끼친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줄이지 못한 이유다. 관세와 비관세장벽을 높은 초기관세율로 전환시키는 등의 ‘더러운 관세화’도 한몫했다. 미국의 경우 92~96년 농산물과 가축의 평균관세는 5.7%에서 8.5%로, 식품은 6.6%에서 10%로, 담배는 14.6%에서 104.4%로 올랐다.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의 조사에 따르면, 2000년 유럽연합의 최종 관세한도는 89~93년의 실제 관세수준보다 2/3 높았고 미국은 3/4 가량 높았다. 개도국 수입품의 시장접근을 제한하기 위한 또다른 장치는 국내에 파장이 큰 제품은 관세를 높이고 파장이 미미한 제품은 관세를 낮추는 선택적 관세였다.

이런 왜곡된 협정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회원국의 전체 농업보조금은 95년 1820억달러에서 97년 2800억달러, 2001년 3150억달러, 지난해 3180억달러로 증가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에 따르면 유럽연합과 미국은 10년 전보다 90~100억달러나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했다. 보조금은 유럽 전체 국내총생산의 40%, 미국은 25%를 차지했다. 개도국의 소규모 자작농들은 한해 400달러 미만으로 버텨야 했으나 미국과 유럽 농가들은 보조금으로 한해에 평균 2만1천달러, 1만6천달러를 각각 받았다.

농산물 종속 심화 불가피

과잉생산과 더불어 새로운 시장개척에 대한 압력도 증가했다. 97년 유럽연합 농업장관들에게 제출된 보고서는 밀의 과잉생산 규모가 270만t에서 2005년에 4500만t으로 늘어나고, 전체 곡물 초과생산량도 5800만t으로 치솟을 것으로 추산했다. 프란츠 피셔 유럽연합 농업장관은 보조금 지급에 따른 과잉생산 문제의 해법은 곡물수출 확대라고 말했다. 97년 당시 미국 무역대표였던 샬린 바셰프스키는 “미국 농토 3에이커 가운데 1에이커가 오로지 수출용”이라고 시인하며 “미국내 수요가 견인하는 성장엔 한계가 있으므로 미국 농업의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 14개국을 조사한 결과 95~98년의 식량수입량은 90~94년 수준을 능가했다. 이 기구 보고서는 세계 식량수출에서 개도국 점유율이 70년 30%에서 97년 37%로 늘었으나 식량수입은 28%에서 37%로 더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2년 5월13일 향후 10년간 1900억달러 규모의 농업보조금 지급 법안에 서명했다. 같은해 10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유럽연합 확대논의 중에 농업보조금 삭감은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월든 벨로 필리핀대 교수·사회학
 2003.7.7.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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