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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타운이 없다는 주장

차이나 타운이 없다는 주장  

위글은 99년 8월 16일자 조선일보 사설이다. 이글을 쓴 목적에 대해서는 별로 지적하고 싶지 않다. 이땅에 와서 살고있는 외국인에게 무조건 규제 일변도의 억압정책을 시행한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설은 여러면에서 틀린 주장을 펴고 있다. 무엇이 틀렸는지를 살펴보고 고치는 것은 이땅에 살고있는 사람의 의무이다.

1,이 사설은 중국에 있는 조선족 자치주와 한국에 있는 차이나 타운 형성의 역사적 차이를 모르고 똑같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 양자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전에 한국인들은 일제의 억압을 피하여 또는 일제의 식민정책에 밀려서 강제로 만주땅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일제와 중국군벌, 마적, 중국인 지주들의 말못할 수탈과 억압에 시달리면서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을 걸고 일제와 싸워 중국을 해방시킨 제1의 공로자라는 점이다. 만주벌판에 일제와 싸운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 않은 곳이 없으며 한국인 부대의 용감성은 항상 중국인 부대의 선두에서 일제를 쳐부수는 역할을 맡게 했다.

숫자도 많아서 만주지역에서 싸운 항일군의 절반이 한국인이었다. 중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주변지역 점령을 계속하였기 때문에 땅도 넓고 소수민족이 많지만 한국인처럼 중국의 발전과 해방에 큰 공로를 세운 민족은 없다. 바로 이런 엄청난 공적 때문에 조선족자치주가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인의 너그러움 때문이 아니라 조선인의 피의 항전의 소산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반면 한국에 사는 중국인은 그냥 개인적으로 돈벌러 들어온 것이다. 한국을 위하여 온것도 아니고 한국을 위하여 특별히 생명을 바친 것도 아니다. 그냥 외국인으로서 온 것이다. 그렇다고 괄세하자는 말은 아니다. 따뜻하게 대해주면 될 것이다.

2,이 사설은 우리민족의 배타성 때문에 차이나타운이 없어졌다는 터무니없는 낭설을 그대로 유포시키고 있다. 우리겨레가 일본인에게도 배타적으로 대한일이 없는데 해방이후에 왜 중국인에게 갑자기 배타적이 되었는지 원인도 과정도 설명하지 못하면서 배타성을 그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유도 없이 왜 갑자기 중국사람만 미워하느냐 말이다.

이런 말이 나온 원인은 한국정부의 지나친 반공정책이 화교를 차별하고 감시해 온데 있을 것이다. 한국땅에 들어온 중국인은 대만인이 아니라 중국 본토 사람들이다. 그런데 중국본토는 49년 이후로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다. 한국 땅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철저한 반공정권이 들어섰다. 중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정전협정의 한 당사자가 되어 한국정부의 공적이 되었다. 모든 것을 반공으로 재단하던 한국정부는 중국화교들의 고향이 본토인지라 돈을 벌면 혹시 중국 본토에 보내서 공산정권을 돕지 않을까 염려하여 또 화교를 통하여 공산주의의 냄새가 퍼질까 염려스러워 화교들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통제하였다. 본토와 완전히 단절되도록 만들었다.

감시는 심하고 자기 고향하고 연락이라도 했다가는 빨갱이로 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할 형편이고 매일 반공궐기대회에 나다녀야 하니 무슨 재미로 한국에 살겠는가. 화교가 한국을 떠난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또있다. 완전한 통제상태에서 중국인의 유입은 단절되고 자기 자식들은 좋은 직업을 가지도록 하다보니 한국인 싸구려 인력을 고용하여 주방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연히 중국집의 기술이 한국인에게 이전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전국에서 중국집을 경영하는 사람은 한국인이다. 그때 기술을 배운 한국인이 지금은 주인이 되어 다시 한국인에게 기술전수를 시키면서 한국식 중국음식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중국에 대하여 친화감이 강하다. 한번도 미워한 일이 없다.

3,이사설은 한국의 화교정책과 미국, 일본의 인종차별 정책을 같은 것으로 잘못알고 있다. 한국의 화교정책은 민족차별 정책이 아니라 반공을 위한 통제가 그 본질이다. 지나친 통제가 외국인에게 불편을 초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 이상으로 한국인 자신들도 통제당해 왔다.

그 통제가 정당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다른 문제이다. 외국인을 배척하거나 차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정서적 물리적 장벽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의 흑인문제는 원천적으로 다르다. 잘있는 흑인을 사냥질해서 끌고와 노예로 부려먹은 결과가 오늘의 흑백문제이다.

인디언 문제도 다르다. 그들은 원래 그 땅의 주인이었다. 그런데 백인들이 남의 땅에 침입해 들어온 것이다. 풍토병에 걸리고 식량도 없을때 인이언들이 도와서 살려 주었는데 우수한 살인무기로 인디언 수천만을 학살하고 멸종시킨 것이다.

오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끌고 와서 죽이면서 부려먹고 아직도 각종 차별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재일교포도 마찬가지이다. 징용이니, 정신대니 강제로 끌고가 노예상태로 부리다가 전쟁이 끝난후에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후 억지로 돌아오던 사람들은 거의 바다에 수장되고 말았다. 그것이 재일 한국인 문제의 원인이다.

북해도에 있던 원주민 아이누족은 근대에 이르러 일본이 군사적으로 점령하면서 잔인하게 멸종시켜 버리고 극소수가 남아 역사의 잔인성을 증언하고 있다.

우리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것과 차이나타운과 미국의 인종차별과 재일교포 문제를 비롯한 일본의 인종차별 문제는 그 역사적 연원이 다르다. 다른 것을 다르게 보지 못하는 것은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 역사적 원인과 전개과정을 잘 알아야 문제를 바르게 풀수 있다.

4,우리겨레의 배타성에 대한 지적이 언론에서 많다. 주로 외국인 여론조사를 통한 것이거나 외국인들이 외국에서 무슨 기준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여론조사를 통해서 언론에 보도자료로 배포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자신을 멸종시키려고 들었던 일본사람들에게 아직도 욕한마디 제대로 한일이 없다. 만약 그랬다가는 예속성을 본성으로 하는 한국의 모든 언론이 총동원되어 한국사람의 배타성과 국수주의를 철만난 망둥이처럼 규탄하고 나설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 있는 교포들은 아무 이유없이 치마저고리 입고 다닌다는 이유로 수백명이 면도칼질을 당해도 한국인 누구하나 분노를 표시했다는 소식이 없다.

한국 교포들이 미국 법이 허용하지 않는 수모를 아무리 당해도 나서서 항의하는 사람 하나 없다. 한국 정부도 물론 나서지 않는다.

미국이나 일본정부라면 어떻게 할까. 전쟁을 치르더라도 자국민들 보호할 것이다. 미국과 일본 언론이 외국인 불편을 자국민의 생활보다 앞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례를 우리는 듣지 못했다.

한국 언론의 유난스런 외국 애호증이라고 보면 병일까. 한국이 미일에 버금가는 강대국이라면 한국 언론의 외국인 존중은 친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오랜 세월동안 엄청난 외국의 침략을 받았으며 근대이후에는 멸종지경에 이른 경우도 많았다. 외국인은 특히 강대국 국민은 한국을 죽이고 살릴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런 역사적 조건은 한국인에게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과 무서운 상전이라는 복합적인 인식을 심어주었다.

한국에서 외국인 특히 미일을 비롯한 서구 강대국 국민이 누리는 혜택은 엄청나다. 한국인의 권리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주권국가에서 있을수 없는 혜택이 미일을 비롯한 서구 강대국 국민들에게 베풀어지고 있다. 그들이 한국을 좌우하는 지배세력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에 대한 인식은 역사의 소산이다.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어떤 특정한 정서를 가진다면 그런 정서를 만들어 낸 역사적 요인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 역사적 요인을 찾아내고 올바르게 해결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외국인에게 배타적이라느니 아니니 하는, 역사적 흐름과 현실적 관계를 벗어난 비논리적 언쟁은 문제를 바라보는 데에도 해결하는 데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근대이후 한국사회는 외국에 대한 예속과 식민지배, 종속의 상태가 이어져 왔다.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도 이러한 역사적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요즘와서 외국인들이 지적하는 배타적 민족주의라는 것은 주로 반공정책에서 비롯된 통제의 불편함을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그나마 남아있는 문화적 인식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무방비의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가하는 공격인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인은 반공, 안보통제정책과 민족차별과 배타성을 이제는 정확하게 가려서 보고 외국인에게도 바르게 설명할수 있도록 하자.

5,중국은 오랜 세월에 걸쳐 주변민족을 점령하여 거대한 국가를 형성하였기 때문에 구성자체가 다민족국가이며 그 속에는 각이한 민족이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각 민족의 언어와 문화의 독자성을 부정한다면 당장 중국은 작은 문화단위의 소국들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대한 다민족국가와 우리처럼 작은 단일민족 국가는 그 구성과 운영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다음 연변자치주의 운영이 과연 아무런 차별이 없는 조선문화 존중 일변도인가 하는 문제는 좀더 세밀한 관찰을 한 이후에 언급해야 할 문제이다. 연변땅은 중국의 주권하에 있는 땅이기 때문에 그 내부정책의 모든 결정권은 중국 중앙정부가 쥐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정책의 정당성 여부를 논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그 상태만을 이야기 한다면 이 논설을 쓴 사람의 주장과는 아주 다르다고 말할수 있다. 많은 제약과 동화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6,근본적으로 한나라, 한민족의 문화적 독자성, 자주성은 존중받아야 할 중요한 가치이다. 한나라, 한민족이 남의 비위에 맞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자신의 생존잣대와 문화적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대단히 비참한 이야기이며 자존의식이 원천적으로 결핍된 상황하에 놓여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것은 그 사회의 의식이 아직도 제국주의적 지배를 정당한 것으로 평가하는 식민상태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문화의 독자적 가치를 잘 의식하고 자신의 잣대로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석하고 해결할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 집단은 다른 집단에 대해 독자적인 존재의미를 가질수 있으며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할수 있다.

7,각이한 민족단위의 문화는 각각 고유한 가치가 있으며 우리 것과 마찬가지로 남의 것도 소중한 것이다. 서로간의 다른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고 그런 기반위에서 평화롭게 공존한다면 참된 평화가 정착될 것이다.

어느 한 문화를 기준으로 세계문화를 통폐합시키려고 든다면 그자체가 인류의 재앙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세계는 그런 방향으로 치달리고 있으며 한국언론은 그 궁극적 지향점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앞장서서 날뛰고 있다.

8,한국에 와있는 외국인에게 저지르는 잔인한 악행이나 차별을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해서는 안된다. 개인의 돈벌이 수단으로 민족의 이름을 함부로 팔아서는 안된다.

일본이나 중국 미국의 차별정책과 한국의 경우는 역사적 연원이 다르지만 경우가 달라도 인간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나 악행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외국인 노동력을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수입하고 이용하려고 드는 정부나 경제계의 발상은 우선 그들에게 몇푼의 이익을 줄지는 모르나 장기적으로 우리민족이나 들어온 사람 모두에게 재앙을 안겨줄 것이다. 차별이 바로 이런 재앙을 부르는 원인을 만든다.

미국 흑인노예 문제의 귀결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다시 짚어 보아야 한다. 외국인을 고용하는 것이 이익이 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고용한다면 그가 어떤 경로로 들어왔건 외국인에게 우리와 같은 임금과 권리 사회보장을 베풀어야 한다. 강대국 국민에게는 무한대의 권리를 주고 약소국 국민은 종부리듯 하는 우리의 제국주의적 인간관은 바꿔야 한다.

김봉우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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