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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민족 손에

미래는 민족 손에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세계를 적과 우방 둘로 나누고 끝없는 전쟁의 진흙탕에 빠져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이 일단락되자 다음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라크, 이란 등 3개국을 ‘악의 축’이라고 지적하고 ‘테러와의 전쟁’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선언했다. 북한은 핵무기와 생물·화학무기 개발, 그리고 장거리 미사일 개발 수출 의혹을 받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체제 가운데 하나라며 미 본토를 지키기 위해 간과할 수 없다고 한다.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파괴 무기, 게다가 장거리 미사일이라고 하면 미국이 세계에서도 가장 많이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왜 타국이 그것을 갖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이 설령 군사우선의 ‘독재국가’라 해도 주권존중의 원칙에서 말하면 그것이 미국의 선제공격을 인정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북한은 클린턴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대미관계의 개선을 열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의 미디어를 통해서도 각국의 정치지도자나 지식인 민중이 부시 정권의 오만한 태도에 항의의 목소리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뒤 지구상 거의 모든 지역의 분쟁이나 전쟁에 가담하고 수백만명의 사람을 계속 살해해온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다.


미국의 쥐락펴락, 일본도 미심쩍다


이런 미국의 대북 강경 자세는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해온 김대중 정권에도 큰 위협이다. 실제 한국에서는 전쟁발발 분위기조차 감돌기 시작하고 ‘민족전체의 위기’라고까지 말해지고 있다. 미국에 있어서는 자국의 방위야말로 중요과제이고 한국의 안전은 언제라도 딱 잘라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한국의 안전이 주변 대국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헛갈릴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근현대사를 펼쳐볼 것도 없이 개항기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세력다툼, 특히 청일전쟁 및 러일전쟁, 해방 뒤 한국전쟁 등은 모두 대국의 의도에 크게 규정됐던 것이다.

이런 것을 볼 때 미국과 함께 일본의 최근 동향이 특히 마음에 걸린다. 10년여의 경제불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에서는 90년대 후반부터 국제공헌, 즉 군사력의 해외파견을 강조하는 네오내셔널리즘(neo-nationalism)의 움직임이 계속 강해지고 있다. 기사회생을 노리는 고이즈미 정권의 구조개혁도 어설픈 상태로 끝날 것 같고, 일본인의 위기감이나 불안감은 갈수록 높아지기만 한다. 각종 앙케트 조사에서도 일본인의 역사인식이 개선된다는 전망은 적고, 월드컵 공동개최 예정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는 몹시 차가워진 상태라고 한다(<아사히신문> 2002년 2월2일, 2월3일치).

생각해보면 근대 일본은 한반도를 희생으로 해 그때마다 경제적 곤경이나 정치적 곤란을 극복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 일본은 청일전쟁이건 한국전쟁이건 한반도에서 피가 흐르는 가운데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거두고 대국화의 길을 걸었다. 이런 일을 생각해볼 때 일본이 경제적 곤란에 직면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은 특히 외세에 허점을 이용당하지 않도록 자신의 모습을 더 진지하게 주시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일본은 때로 아시아 각국과의 협조를 환기시키는 말을 하긴 해도 실제 행동에서는 일-미 군사동맹 강화쪽으로 내달릴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일-미 군사동맹 강화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정책 및 시민 차원의 운동에서 동아시아와의 연대, 공동체의 구축을 모색해갈 필요가 있다. 비참한 역사는 결코 반복해서는 안 된다.


국제관계 의존 말고 주체성 세우라


그렇다 해도 한국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밀어붙여 안정된 남북관계 구축에 힘쓰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에 알랑거리고 외세에 의존하려는 체질은 하루라도 빨리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국제관계의 조건이 조금씩 다르다 해도 결국 관건은 주체성이 강하고 약함에 달려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이 놓여 있는 정치적 환경 및 국제상황을 냉철하게 주시하고, 한국 내 민주화를 굳건히 밀고나가는 한편 분단극복의 길을 한발한발 착실히 걸어갈 필요가 있다. 한국사람들이 그것을 자각하고 행동할 때 북의 동포는 물론 600만명에 이른다는 세계의 재외동포도 호응할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 미래를 사는 희망이 될 것이다.


윤건차/ 일본 가나가와대학 교수·서울대 초빙교수(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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