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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게임방식

할리우드의 게임방식


아프리카의 근대사는 식민지적 비애로 얼룩져 있다. 이디오피아 테오도르 왕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을 풍자적 어법으로 들려준다.
“나는 그들의 게임방식을 안다. 먼저 선교사와 상인이 나타난다. 이어 점잖은 외교관이 온다. 다음에는 총이다. 처음부터 총을 들고 오면 매사가 훨씬 간단했을 텐데.”

이런 풍자도 있다. “처음 그들은 성경책을 갖고 있었고, 우리는 땅이 있었네. 그 후 사정이 돌고 돌았네. 지금 그들은 땅을 갖고 있고, 우리는 성경책을 들고 있네.”

‘문화 제국주의’라는 학문적 유행어가 있었다. 강대국이 국가정복, 경제수탈, 식민지화와 연결시켜 자신의 문화를 약소국에 강요하는 것을 말한다.

1960년대의 많은 급진적 용어들과 함께 나타난 이 말은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다. 강제성이 줄면서 ‘제국주의’도 ‘세계화(Globalization)’, 혹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부드러운 질감의 옷으로 갈아 입었다.

스크린쿼터제 논쟁이 새 정부를 시험하고 있다. 일부 관료들은 스크린쿼터 때문에 한ㆍ미투자협정(BIT) 체결이 지연되어 경제가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축소나 폐지를 주장한다.

영화인들은 그런 주장이 일방적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며 극력 반대하고 있다. 스크린쿼터 문화연대가 펴내는 소식지를 보면, 자기 땅을 잃은 대신 성경책을 들고 있는 처량한 아프리카인들이 연상된다.

여러 나라가 소개되어 있다. 1990년 80편의 영화를 제작하던 멕시코는 98년 스크린쿼터가 완전 폐지되자 10편으로 감소했다. 자국영화 시장 점유율도 5%에 불과하다.

멕시코는 다시 미국으로부터 정부의 영화산업발전기금을 폐지하라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를 팔기 위한 미국의 전술은 매우 집요하다.

대만도 90년 35%를 유지하던 자국영화 점유율이 스크린쿼터제 폐지 후 98년에는 5%로 떨어졌다. 제작된 영화도 50편에서 20편으로 줄었다. 인도네시아는 88년 개방 이후 자국영화 점유율이 60%에서 6%로 급락했다.

스크린쿼터 문제는 산업과 문화, 두 면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그것은 문화파와 산업파 간의 국내적 다툼이 아니라, 한ㆍ미 간 문화산업 전쟁으로 이해돼야 한다.

영화는 항공ㆍ군수산업과 함께 미국의 21세기 2대 주력산업이다. 미국영화는 이미 세계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다. 자원 빈국인 우리에게도 영화는 미래가 걸린 주요 산업이다.

근래 할리우드 영화의 엄청난 공격을 막으며 국산영화를 성장시켜 온 것은 스크린쿼터라는 방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는 수출에서도 최근 4년 동안 40% 이상씩 성장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적 측면이다. 우리는 IMF 체제 때도 이 제도는 양보하지 않았다.

영화에는 역사와 애환, 희망,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눈 여겨 볼 것은 유럽 쪽 대응이다. 유럽연합(EU) 헌법초안 작성자들은 지난 9일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무역협상에서 문화상품의 예외를 인정하기로 명문화한다는 내용을 결의했다.

로이터통신은 ‘할리우드로부터 문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거부권을 주장해 온 프랑스의 노력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할리우드 영화는 성장기의 내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었고, 가슴 설레는 미지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 영화들이 없었다면 내 추억은 훨씬 빈곤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점에 감사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 영화도 그 역할을 나눌 때가 되었다. 우리 고유의 정서와 육성적 체취가 담긴 영화를 제작하고 싶은 욕망은 문화성장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스크린쿼터제 없이는 ‘서편제’ ‘쉬리’ ‘오아시스’ 같이 질박하고 공감 있는 감동을 다시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 제도는 지금 우리 영화를 지켜 주는 귀중한 등불이다. 그것이 훼손되면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는 ‘정직한 정치가의 앞날처럼’ 캄캄해질 것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2003.7.15.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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