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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 30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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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의사소통미숙..오류증폭

도올 김용옥기자 현장속으로>韓,美 의사소통미숙..오류증폭
―요즈음 뉴욕경기가 어떻습니까?

“말도 마세요. 요즈음은 택시도 텅텅 비어서 돌아다녀요. 뉴욕에서 옐로우 캡(영업택시) 면허 얻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아세요? 그런데 요즈음은 식은죽 먹기라구요. 택시영업이 안되니까 매물이 남아돈단 말이죠. 외국관광객은 물론 국내관광객도 안와요. 관광객 없는 뉴욕은 썰렁하죠. 그래도 쥴리아니시절이 좋았어요. 캅(경찰)들이 설치긴 했어도 돈이 들어왔다구요. 로 앤 오더(법과 질서) 그리고 돈, 그래도 그런 시절이 좋았어요.”

맨해튼 업타운, 118가로 올라가는 옐로우 캡 속에서 내가 흑인 운전사와 나눈 대화의 한 대목이다.

―그런데 왜 전쟁은 하려고 하죠? 부시를 지원하십니까?

“전쟁을 좋아할 미친 놈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왜 우리 같은 이방인들이 밖에서 관망하기엔 미국인들은 전쟁에 식욕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왜 그렇죠?

“아∼ 물론 전쟁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몇 놈들은 식욕을 느끼겠지요. 그러나 우리 같은 대부분의 서민들은 전쟁의 공포와 후유증만 감내해야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랍니다.”

흑인의 비틀어진 특유한 액센트로 활달한 제스츄어를 써가며 유창하게 씹어뱉는다.

―그럼 왜 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시면서 반대를 외치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겁먹고 있어요.(We are just scared.) 부시는 아무때나 아무에게나 쏠 수 있는 특종이니까요.”

나는 우리의 대화를 다음과 같은 재치있는 말로 마무리지었다.

“잇스 콜드 투데이.(It’s cold, today.)” 이 말은 오늘 날씨가 춥다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의 경제, 아니 미국인의 삶 자체가 꽁꽁 얼어붙었다는 것을 은유한 말이었다. 미국인의 마음이 동결된 것이다. 내가 도착한 2월 25일부터 맨해튼의 날씨는 을씨년스럽게 추웠다. 이스트 리버의 찬바람이 쌩쌩 휘몰아쳤고 코트를 투과하는 찬기운은 등짝을 서늘케 했다.

나는 노무현 당선자가 드디어, 고대하던 대로 대통령자리에 취임하던 날, 취임축하를 할 겨를도 없이, 새벽부터 서둘러 삼성취재 원고를 데스크에 남겨놓은 채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이미 기자가 되기 전부터 해놓은 약속이라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콜럼비아대학에서 한국문제에 관하여 한번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국에 살면서, 한 스무 해 동안 나의 삶의 가치를 오로지 이 땅의 흙냄새와 교감하는 것에만 두었기 때문에 외국에 나가 영어로 지껄이는 것에 관해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해보니 가끔 국제적 기류를 파악하기 위해 바람을 쐬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코리언 컬러퀴엄(Korean Colloquium)이라고 해봐야 고작 20~30명의 학생과 교수가 앉아있는 자리이거니 생각했다. 미국대학이란 본시 그렇게 소동을 피우지 않는다. 대단한 게스트 스피커가 초청되었어도 흥분된 심정으로 가보면 소규모그룹의 사람들이 오손도손 이야기하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러한 지적 탐구의 흥분으로 청운의 인생을 미국에서 보낸 나이기에, 거꾸로 내가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자리에 선다는 감격이 없지도 않았다. 그런데 예상외로 사람들이 많이 왔다. 콜럼비아대학 코리언 컬러퀴엄 역사상 보기 드문 인파가 몰렸다고 했다. 강의실을 꽉 메웠고 복도까지 수강자들이 넘쳤다. 그래봐야 한 150명 정도의 인원이었지만 무엇보다 뜨거운 열기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것은 일종의 전운(戰雲)이었다: ‘당면한 한국의 위기상황 ―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The Current Korean Crisis in Historical and Cultural Perspective).

나에게 쏟아진 질문들은 모두 한국의 현상황에 대한 우려에서, 도대체 한국정부가 어떠한 시각에서 문제를 풀어가려하고 있는가 하는 긴급한 과제상황에 집중되었지만 나는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결국 한·미관계는 비극적 종말을 초래할 수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보다 거시적인 역사와 문화적 패러다임의 문제로 시각을 전환해줄 것을 요청했다.

27일 저녁 강의가 끝나고 나는 콜럼비아대학 패컬티 클럽(Faculty Club)에서 디너를 했다. 동아시아 연구소(East Asian Institute)에서 북한문제를 전공하고 있는 암스트롱(Charles K. Armstrong) 교수와 만나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콜럼비아대학에서 한국학의 중심으로서 활약하고 있는 암스트롱교수는 한국문화의 미국거점으로서, 정말 중요한 위치에 있는 학자라 할 수 있다. 맨해튼은 세계문명의 센터다. 그 맨해튼의 센터에 콜럼비아대학이 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암스트롱교수가 한국학의 센터로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나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그와 아무런 격의없이 터울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암스트롱 교수님 최근 한·미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현재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입니다. 미국의 핵심부에서 세계를 관망하시는 입장에서 고견을 한번 듣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미국에서는 한국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그림을 잘못 그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소한 레토릭의 문제나 의사소통의 미숙함으로 인하여, 매우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그릇된 판단에 대하여 과민한 반응을 하고, 또 그러한 반응이 또 다시 그릇된 판단이나 감정을 유발하고…. 이렇게 해서 양자 사이에서 오류가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바보스러운 현실이 오히려 진실된 상황보다 우발적인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문제를 깊게 생각하는 지성인들 사이에서 감돌고 있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일례를 들면, 효순이·미선이 죽음을 둘러싼 한국인들의 시위를 어떠한 경우에도 반미감정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냥 인도적 차원에서의 항거로 보고 그것에 대한 정당한 개선책을 강구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것을 반미시위로 포장한 것은 한국의 언론들이었습니다. 이러한 한국언론의 언어들은 곧바로 미국의 보수언론들을 자극시키게 되고, 이러한 미국 보수언론의 확대해석은 일부 몰지각한 미국 정객들의 무책임한 발언을 유발시킵니다. 그러면 또 다시 한국은 패닉(공포)의 도가니로 빠져들어가곤 합니다. 이런 악순환은 좀 곤란한 얘기가 아닙니까?

생각해보세요. 한국과 미국은 반세기 동안 확고한 우호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에서 심기불편한 얘기를 한다고 해서, 형제가 기분 나쁜 얘기를 한다고 자기 장난감만 들고 집을 나가버리는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그래 그럼 미군 다 철수해버리겠다, 도대체 이런 얘기들이 어떻게 미국과 같은 복잡한 대국의 외교정책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항상 표피적으로 떠도는 이야기에 속지말고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냉정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독립국가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대사를 교환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차분히 앉아서 대화로 풀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감정적인 시위는 사태를 악화만 시킵니다.”

―한국의 시위문화도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한국은 70~80년대를 통하여 반독재투쟁과정에서 너무도 과격한 시위문화를 몸에 익혔습니다. 한국민들은 모두가 시위의 전문가이며, 시위의 대가들입니다. 이러한 시위문화는 때로 사태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상실케 하고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당초로부터 봉쇄한다는 데 그 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SOFA개정요구? 좋습니다. 그러나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태를 놓고 상대방의 입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유리한 답안만을 강요한다? 이렇게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요구로서 과연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그 오브젝티브(목표)가 선명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작은 조항을 하나 고치고 그것으로 많은 것을 잃는다면 과연 그 시위의 목표가 무엇인가? 그 종합적 득실을 포괄적으로 계산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합적인 위기상황의 시간함수까지 고려하면서 말이죠. 나의 행동이 이 역사적 시점에서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한 복합적 계산이 없이, 조국을 위한 애국적 시위만 한다? 밖에서 보면 어린애들 장난으로밖에 안보일 때가 많습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한국의 언론은 분명 문제가 있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실 한국언론의 문제는 미국언론의 문제와 깊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매우 자유로운 언론의 나라인 것 같지만, 실상 영향력 있는 모든 언론이 사실의 객관적 보도보다는 국익을 앞세우는 놀라운 자기통제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주요언론이 유대인들에 의하여 장악되어 있다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여튼 미국은 매우 애국적인 언론의 나라이며, 매우 후진적인 언론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우익보수언론이라는 성격이 매우 해괴합니다. 우익의 특징이 국익을 우선한다는 대전제를 가지고 있는데, 한국의 우익은 국익을 파괴시키는 데 항상 앞장 섭니다. 그리고 좌익은 보편주의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좌익은 편협한 민족주의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희생당하는 것은 한국민중의 민생일 뿐입니다.”

―주제를 보다 긴박한 문제로 옮아가봅시다. 정말 미국은 영변핵시설에 대해 군사적인 선제공격을 퍼부을까요?

“글쎄, 그러한 문제에 대해 제가 감히 어떤 경솔한 예측을 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발언에 대해서도 한국은, 특히 한국의 언론들은 너무 경솔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반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지나치게 매파적인(hawkish) 경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 또한 물론 사실입니다.”

일례를 들면, 한국의 신문들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크리스토프(Nicholas D. Kristof)가 28일에 게재한 기사에 의거하여, 미국이 북한 영변핵시설을 폭격하는 비밀작전을 수립하고 있다는 ‘비밀스럽고 가공할 계획’(Secret, Scary Plans)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크리스토프의 기사를 잘 뜯어보면, 그것은 그러한 무시무시한 계획을 사실로서 보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알고 있는 소식통의 전언으로 인용한 것뿐이며, 그러한 가능성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므로 미국은 북한과 대화와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의 글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가능성은 현실성이 없다고 하는 맥락에서 암시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기사내용중에는 국무부 부장관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가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대화를 강력히 권고했다는 조항을 싣고 있다. 그런데 한국언론들은 그러한 맥락을 완전히 빼버리고 미국이 곧 북한 핵시설을 공격할 것인양 보도해버리는 것이다. 도대체 그런 인상을 주어서 무엇하겠다는 것인가? 국민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킨다?

“부시정권은 근원적으로 북한문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북한이 악의 축으로서 이라크 다음 순위로 등장한 것은 9·11 사태이후의 사실이었다는 것도 우리가 새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라크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북한을 끼워넣은 것이죠. 북한은 항상 악(惡)에 대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데는 매우 효용성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문제가 예상외로 심하게 덜거덕거리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태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인위적으로 조장해놓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양심이 있다면 말인즉 똑바로 해야 합니다.”

―북한의 대처방식에도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체어맨 킴(김정일 위원장)은 아마도 미국의 글로벌 전략의 필연적 코스를 알고 어차피 피장파장인 바에는 선수를 치자,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미국이 협상카드를 제시하기보다는 의외로 강한 매파의 길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면 어떡하죠?

“우리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진정하게 어떤 교감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매우 오묘한 말이군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지금 부시행정부의 정치행태는 어떠한 편협한 당면의 반동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매우 심원한 글로벌 전략과 관계있는 것입니다. 부시행정부의 사람들, 부시, 체니, 라이스, 럼즈펠드, 이들은 모두 석유회사에 근무했거나 모종의 관계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비젼은 모두 석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석유라는 자원의 확보만이 인류의 희망이라는 것이죠. 물론 이들이 말하는 인류의 희망이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질서인데, 이것은 곧 그들이 말하는 평화의 정의입니다. 다시 말해서 석유라는 에너지자원은 40~50년 후면 고갈이 되고 말텐데, 그 과정에서 초장에 석유에너지를 미국의 수중에 확보하지 못하면 미국의 우위(American supremacy)는 유지할 길이 없다는 정확한 계산이 있는 것입니다. 그 계산에서 타깃이 된 것은 이라크였습니다. 사우디와 OPEC국가들이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요인을 노출시키고 미국의 저유가정책에 마음대로 놀아나지 않게 되자, 사우디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으로 이라크의 유전확보라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이라크의 유전을 손에 넣으면 중동이 컨트롤될 뿐아니라, 우랄산맥에 많은 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의 힘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강대국화되어가면서 에너지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중국을 무기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이라크의 석유매장량은 실제로 사우디의 그것을 능가한다는 설도 있으며, 더구나 이라크의 석유는 품질이 높으며 얕게 묻혀있어 개발단가가 낮습니다. 부가가치로 보면 세계최고·최대인 이라크의 유전을 확보하게 되면 향후 30~40년간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이러한 팍스아메리카나의 총체적 전략은 이들이 이미 선거전략으로 세워놓은 것이며, 빈 라덴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때맞춰 터진 9·11테러사건은 부시행정부에게는 신으로부터의 축복(Gift from God)이었습니다. 오늘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침공 논의는 사실 트윈빌딩폭파사건과는 아무런 논리적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이라크침공이라는 오리지날 플랜에 분위기만을 돋구어 준 사건이 9·11이었습니다. 빈 라덴이 부시의 팍스아메리카나의 꿈의 실현을 도와주었을 뿐이지요. 지금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같은 악의 축이라 하더라도 이라크의 경우에는 매우 명료한 실리의 계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을 때린다고 하는 것에는 미국에게 과연 무슨 실리가 있는 것인지, 그 초점이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한국정부는 바로 그 초점을 명료하게 파악하여 상황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원리적인 대처가 의미가 없습니다. 오로지 기민한 상황의 파악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까부는 놈 늑신 조져준다는 군사적 위세의 과시용으로 북한을 이용해먹는 것일까요?

“그렇게 단순한 군사적 힘의 과시를 위하여, 즉 미국의 군사적 슈프리마시(supremacy)의 과시를 위하여, 남한이라는 방대한 우방경제체제를 희생시켜가면서 북한을 치리라는 생각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매우 결정적 실리가 뒤따르는 약점이 포착되지 않는 한 그런 리스크(risk)를 감행할 이유가 없겠지요. 최소한 한번 공격이 개시되면, 북한은 한시간안에 40만개의 장거리 포탄을 날릴 수 있으며 최소한 100만명의 남한국민을 살상하게 되리라는 것이 펜타곤의 예상입니다. 굶어서 힘이 없다고 스위치를 누르지 않지는 않겠지요.”

―부시는 후세인에 뒤이어 김정일체제의 전복을 꾀하고 있을까요?

“물론 매파의 단순한 논리는 그러한 로직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후세인만 전복시키고 이라크유전을 장악하면 중동이 다 장악될 수 있고, 세계가 다 엎드리게 되리라는 단순논리, 이 단순논리에 걸림돌이 되는 사마귀같은 놈 하나 제거해버리자 지금 부시정권의 착각에는 분명 이런 계산이 깔려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명백하게 동독과 폴란드와 같은 동유럽 체제붕괴를 모델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대한 착각입니다. 북한은 어떠한 경우에도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습니다. 북한의 김정일을 축으로 하는 유일사상체계는 단순한 정치체제가 아니라, 종교적 결속력보다 더 강한 이념체계이며, 현실적으로 매우 효율적으로 통제되고 있으며, 엄청난 충성심의 집단이기 때문에 그것을 전복한다고 하는 것은 무지막지한 인명의 피해를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전복’이라는 단어가 북한의 경우에는 가능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 부수되는 결과가 너무도 부정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는 대화이며 협상입니다. 즉 북한체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남한의 교회집단 하나를 인정하면 아무 탈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강압적으로 해체시켜보려고 해보십시오. 얼마나 엄청난 부작용이 뒤따르겠는가? 하물며 한 국가를?”

―부시행정부는 먼저 북한이 변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점이 부시 행정부의 맹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맹점을 부시행정부는 결국 깨달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철학자 헤겔의 말대로 모든 존재의 가장 원초적 본능은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단순하게 인정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정이야말로 모든 변증법의 출발입니다. 북한의 핵무기개발에 대한 모든 대화는 북한과의 외교채널을 수립해가면서 해야 됩니다. 즉 북·미간의 관계정상화는 선행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먼저 인정하고 대화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정하지 않는 상대와 무슨 대화를 하겠다는 것입니까?”

―북한도 경직된 사고를 버려야하지 않을까요?

“체어맨 킴은 6·15남북정상회담이래 2002년에 이르기까지 북한사회를 본질적으로 개변시키고 개방하고자 하는 의지와 행동을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그러한 변화를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체어맨 킴은 결코 완고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며 그 나름대로의 논리와 표현방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체어맨 킴을 인정하고 도와주어 북한이 국제사회로 걸어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모든 주변상황이 그를 밀어붙이고, 걸어나오려는 그를 다시 되돌아가게만 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미국은 역사가 짧고, 변화가 심해서 장기적 안목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전쟁은 결코 얼터너티브가 될 수 없습니다. 전쟁이 선택카드가 될 수 없다면 협상밖에는 없습니다. 협상이란 서로가 양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냉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미국, 남한, 북한이 모두 냉정을 회복하고 실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한국의 문제가 결코 비극적 종말로 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전쟁이냐 아니냐는 선택의 벼랑끝까지 가기 전에 현명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전쟁을 안하더라도 벼랑까지 가면 남한의 체제가 흔들립니다. 나는 노 대통령에게 이러한 복잡한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는 원칙적인 슬기로움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단지 그러한 슬기로움을 구현하는 현실적 외교역량에 빈틈이 없기를 갈망합니다.”

그의 언어는 단호했고 한국역사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 서려있었다. 나는 어둑어둑해진 교정에 태산처럼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는 버틀러 라이브러리 앞길을 걸어나가 리버사이드로 내려갔다. 그리고 허드슨 강변을 산책하면서 조국의 운명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는 나의 낙관론을 확인하면서 죠지 워싱턴 브릿지의 불빛이 반짝이는 강물 위로 두 손 모은 나의 간절한 소망을 드리웠다.

2003.3.3.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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