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어디로 가나
(2) 가면벗는 군사대국
해상자위대 팽창 두드러져
1990년대, 특히 미일안보조약의 적용범위가 1996년 4월 일본영토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 확대된 뒤 일본의 군사력은 ‘파워 프로젝션 능력’(군사력 투사능력)을 확충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된다. 이는 자국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군사력을 투입·전개하는 능력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침략능력’이다.
◇ 해상자위대 = 육해공군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팽창하고 있다. 주력함대는 4개의 ‘자위함대’다. 각 자위함대는 2척의 미사일 구축함(DDG), 잠수함 잡는 헬기 3대를 실은 헬기탑재 구축함(DDH), 5척의 범용 구축함(DD·헬기 1대씩 탑재)으로 구성된다. 1개 자위함대에 구축함 8척, 대잠 헬기 8대를 갖추고 있다고 하여, ‘88함대’로 불린다. 88함대를 갖추게 된 것은 1990년께였는데, 이는 ‘소련의 위협’에 대응한 ‘해상교통로 확보’라는 구실로 80년대에 해군력을 증강해온 결과다. 그런데 냉전해체로 소련군 위협이 거의 사라졌음에도 일본은 해군증강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거의 모든 군함들을 2배 이상의 대형함으로 교체하고 있다.
군함의 크기가 반드시 전력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지만, 현대전에서는 레이더 기술과 데이터 링크에 따른 자동발사 화기의 능력이 승패를 좌우하므로, 각종 첨단무기나 계기를 많이 적재하려면 덩치가 커질 수밖에 없다. 같은 용도의 군함이라면 그 전력은 중량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일본은 자국군함의 크기를 되도록 작게 보이게 하려고 무기와 인원을 전부 탑재했을 때의 ‘만재 배수량’이라는 국제적 표준수치를 사용하지 않고, 배 껍데기만의 무게인 ‘기준 배수량(건조배수량)’이라는 기만적 수치를 사용하고 있다.
우선 4500t급 미사일 구축함 4척을 1993-98년 사이에 9500t급(건조배수량 7250t)의 이지스형 미사일체계를 갖춘 순양함 4척으로 교체했다. 이지스함은 3차원 레이더와 각종 미사일을 자동 연결함으로써 대공능력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다.(자위대 관계자의 비공식 설명에 따르면, 이지스함 1척으로 F16, 미그29급의 항공기 20대를 거뜬히 격퇴할 수 있고, 30-40대가 오면 누가 이길지 모르는 상황이 되며, 50대 넘게 와야 이지스함이 진다) 걸프전, 이라크 침공 때 이런 이지스함에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발사됐다는 사실을 볼 때 육지 공격력도 짐작할 수 있다. 이지스함은 300~500㎞ 떨어진 비행물체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한술 더떠 교체시기(약 20년. 일본처럼 군함을 빨리 교체하는 나라도 없다)가 된 5600t급 미사일 구축함 4척을 1만t급 이지스함 4척으로 교체하고 있는 중이다(건조 중). 방위청은 국토가 좁은 일본으로선 미사일방어체계를 해상배치형으로 할 수밖에 없으며, 그 일환으로 대형 이지스함이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다. 이 이지스함의 3단형 미사일은 적의 미사일을 대기권 밖에까지 아가 격추하는데, 이런 미사일을 약간 손보게 되면 상대국을 공격하는 탄도미사일이 될 수 있다.
또 2001~2005년 5개년 군사계획에서 1만8000t급의 ‘대잠 헬기 구축함’(방위청의 표현)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이는 누가 봐도 ‘소형 항공모함’이다. 일본 군사력이 타국에 대한 공격력을 확충하는 데 일로매진하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중요한 증거다.
주목되는 또하나의 군함으로 8900t급의 대형수송함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대형수송함은 1998·2002·2003년에 1척씩 실전배치됐는데, 1·2년 안에 한척이 더 도입돼 총 4척이 된다.(일본은 신형무기 도입 때 최소 4개단위로 한다. 정찰위성도 4개, 공중조기경보기 AWACS도 4대, 이지스함도 4척 단위이며, 공중급유기와 대형수송기도 4대씩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세대 전의 수송함이 2000t급이었다는 점으로 볼 때, 일본 해군이 원거리 군사력 투입능력에 얼마나 역점을 두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수송함은 탱크라면 약 10~12대, 완전무장 상태 병력 1000명을 실어나를 수 있다. 내부에 고속 LCAC(거대한 선풍기 2대를 돌리면서 시속90㎞ 속도로 달림) 2척을 갖고 있다. 상륙작전용 대형양륙함인 셈이다. 또 이배는 갑판 길이가 150m 정도로 수직이착륙기용 소형 항공모함으로도 용도를 변경할 수 있다.
이밖에 모두 16척 보유하고 있는 잠수함(교체주기 16년)도 2250t급에서 2750t급으로 대형화를 거의 완료한 상태다. 현재 대기에 의존하지 않는 신형 잠수함(AIP형)을 개발 중이어서, 10년쯤 뒤에는 새로운 잠수함 체계를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 항공자위대 = 90년께 완성된 F15 200대 체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주력 전투기에서는 큰 변화가 없으나, 2000년 약 75대 보유했던 지원전투기(폭격기)를 최신형인 F2로 교체하고 있다. 그런데 F2의 최종 도입 예정대수는 75대가 아니라 130대다. 연습용으로 30대, 예비용으로 39대를 도입하므로 실전배치대수는 별 차이없다고 자위대는 주장하지만, 연습기든 예비기든 유사시 실전투입이 가능해 대지·대함 공격능력은 2배 이상 증대된다고 봐야 한다.
2002년도 예산에서 공중급유기 도입이 최종결정돼, 보잉 E767기종으로 4대 도입할 예정이다. 주력전투기 F15의 항속거리는 1500㎞, F2 지원전투기는 4000㎞다. 실전에서는 무기를 많이 장착해야 하고(날개의 연료통을 떼어내 미사일을 달게 된다), 기지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실제 공격가능범위는 F15가 500㎞, F2가 1500㎞ 정도다. 즉 F15는 (규슈에서 출격하더라도) 평양공격에 가담할 수 없다. F2는 서울이나 평양공격은 가능하나, 베이징이나 상하이공격은 불가능하다. 공중급유기는 이런 행동반경의 제약을 일거에 제거한다. 한두번 중간급유를 받으면 이라크로 직행할 수도 있다. 공중급유기를 배치하면 400대 전투기들이 수비용에서 공격용 전투기로 단번에 탈바꿈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육상자위대 = 90년대 이래 큰 전력증강이 없었다. 종래의 12개 주력사단(정원 8000명)이 8개사단+4개여단(정원 4천명)으로 병력규모가 약간 줄면서 그 4개여단이 기동타격대로 변해가고 있는 정도다. 과거엔 전차를 주로 도입했으나 요즘은 타이어 바퀴가 달린 장갑차를 많이 도입하고 있으며, 공격용 아파치헬기 AH-64D 60대를 도입하는 정도가 눈에 띈다.
기동타격(해외파병)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현재 주력탱크인 90년식 전차가 50t이라 해외파병때 수송에 문제가 많다고 해 40t 정도로 무게를 줄인 차기 주력탱크를 개발하고 있어, 육상자위대도 점차 전력태세를 국토방위보다는 해외파병 쪽으로 초점을 옮기기 시작했다.
권호연 일본 호세이대 교수(국제관계-일본 군사정책)
2003.8.12.한겨레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