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昭和 천황 일본 만화영화 ‘세일러문’에서 주인공은 칼·거울·곡옥 등 3개의 마법적 장신구를 사용한다. 이 마법의 도구를 일본의 건국신화에서는 ‘삼종신기’(三種神器)라고 한다. ‘고사기’ ‘일본서기’에 따르면 태양의 신 ‘아마테라스’가 천손강림(天孫降臨)할 때 손자 니니기에게 “나의 혼이 담긴 것”이라며 이 3개의 보물을 전달했고 태양신의 후손인 천황은 이를 보물로 삼았다. 그래서 천황가의 신사인 이세신궁에 이 보물이 안치되어 있고 황위를 계승할 때도 이 보물을 전달하는 의식을 치른다. 또 다른 일본 만화영화 ‘다섯 별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름이 아예 아마테라스인데다 곡옥목걸이를 하고 칼을 차고 머리에는 노란 국화(黃菊)를 꽂고 있다. 노란 국화는 14세기 이래 천황가문의 문장이다. 우리 청소년이 즐기는 만화영화가 황실의 상징으로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화영화뿐 아니라 국민적 애송시인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도 천황숭배와 관련이 있다는 충격적 주장이 나온 적이 있다. 한 문학평론가가 지난해 발간한 ‘국화꽃의 비밀’에서 노란 국화·거울·누님 등의 상징어를 분석, 천황을 노래하고 있다고 결론을 낸 것이다. 지난해 말에는 아키히토(明仁) 천황이 자신의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고백, 고대 이래 두 나라 사이의 깊은 교류사를 실감케 했다. 천황 이야기는 이같이 한·일 양국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 신화, 역사, 상상력 속에 뒤엉켜 있다. 그러나 일본 근대화가 천황제 확립과 동시에 진행되고 그 과정에 한국식민화라는 제물이 요구되었다는 점에서 천황은 우리에게 재앙과 동의어이다. 히로히토(裕仁) 천황(연호 쇼와·昭和)이 그들에게 경외의 인물일지 몰라도 이웃에게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일 뿐이다. 그만큼 천황에 관해 양국은 서로 다른 ‘집단 기억’을 갖고 있다. 일본 연립여당이 그를 기려 ‘쇼와의 날’을 제정키 위해 법개정작업에 나선다고 한다. 우리의 시선이 차가울 수밖에 없다. 〈이대근 논설위원 grt@kyunghyagn.com〉 2002.5.6.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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