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함없는 '야스쿠니 8·15' 지난 15일 일본 도쿄의 왕궁 부근에 있는 야스쿠니신사에 갔다. 오전 10시인데도 긴 행렬이 이어졌다. 전쟁 경험자인 노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간간히 젊은이도 섞여 있었다.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민족혁신회의’ 등의 이름을 내건 우익단체의 청년회원들이 신사 대체시설에 반대하는 내용의 전단을 나눠줬다. 우익단체의 가두선전차들은 국가인 기미가요를 틀고 “한국과 중국의 내정간섭 배제” 등의 구호를 토해냈다. 맞은 편에 있는 지도리가후지 무명용사의 묘역 쪽에서 100여명의 시민들이 총리 및 각료들의 신사 참배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쳤지만, 몰려온 우익청년들의 맞고함에 금새 묻혀버렸다. 신사 경내에서는 옛 일본군 복장을 한 퇴역군인들이 일장기와 일본군기를 들고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행진하고 주변 사람들은 이들을 존경스런 눈초리로 바라봤다. 이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참배하지 않았지만 하시모토 류타로·모리 요시로 전 총리와 5명의 각료가 참배했다. 야스쿠니신사는 2차대전 패전 이후 국가종교 시설에서 민간시설인 종교법인으로 바뀌었지만, 정치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아직도 “창설 당시인 메이지시대부터 계속되는 국립위령시설”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아시아 여러 나라에 커다란 슬픔과 고통을 안겨준 에이(A)급 전범들의 위패가 버젓히 모셔져 있다. 한국과 중국이 일본 총리들의 신사 참배에 반발하는 이유는, 그것을 일본의 과거 침략과 식민지 통치를 미화하고 합리화하는 상징적인 의식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올해는 반발을 의식해 8월 참배를 단념했다. 단념했다기보다 4월에 미리 당겨서 참배하는 꼼수를 폈다. 꼼수를 폈다는 것은 최근 신사와 관련한 그의 발언에서 확실히 읽을 수 있다. 그는 8일 총리실 기자들에게 “신사를 대체하는 새 위령시설이 건설돼도 신사 참배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왜곡 교과서와 신사 참배 문제로 한-일 관계가 한창 악화했던 지난해 10월 한국을 방문해 김대중 대통령과 한 정상회담에서 “세계 어떤 나라 사람도 거리낌 없이 참배할 수 있는 새 위령시설을 만들겠다”고 한 약속을 정면으로 뒤집는 발언이다. 애초부터 신사 참배를 강행할 뜻이 있으면서 새 시설 건설 운운의 발언을 했다면 더욱 불행한 일이다. 순간의 갈등과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상대국 지도자에게 거짓말을 한 꼴이기 때문이다. 15일 오후 에히메현에서 공립중학교로서는 처음 우익단체 ‘새역사를 만드는 모임’의 왜곡 역사교과서가 채택됐다. 정부는 일본에 대해 “월드컵 축구대회가 100번 성공한다 해도 정확한 역사인식과 반성 없이는 진정한 한-일 우호는 불가능하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오태규/ 도쿄 특파원 ohtak@hani.co.kr 2002.8.20.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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