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FTA와 경제冷戰 김우현(경북대 교수·정치학) 세계 역사에서 각 시대는 그 시대의 패러다임이 있다. 시대에 따라 패러다임은 달라지지만 경쟁과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변함이 없다. 21세기 초를 지배할 패러다임 중 하나는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국·칠레 FTA가 합의되면서 FTA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져 한국은 멕시코와도 FTA를 추진하려고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유무역 논의들은 정치논리가 우선하고 있다. 동아시아 자유무역 논의의 중심세력은 중국과 일본이다. 동남아 지역에서는 지난 1월에 일본·싱가포르, 9월에 아세안(ASEAN)·호주-뉴질랜드, ASEAN·중국 FTA가 이뤄졌다. 1998년 12월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ASEAN+3(한·중·일)’회의에서 ‘아시아비전 그룹’을 제의한 이후 ‘ASEAN+3’ 경제공동체 논의가 시작됐다. 동북아 지역에서는 1998년 11월 주한 일본대사가 한·일 FTA를 제안한 데 이어 1999년에는 한·중·일 FTA를 제안했으며, 올 연초에는 한·중 FTA를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동남아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에서의 FTA 논의에서도 중국과 일본의 갈등관계가 배경에 자리잡고 있다. 이 갈등관계는 자유무역을 앞세운 정치적 주도권 다툼에서 오지만 근본적으로는 양국의 경제·사회적인 차이와 한반도에 대한 역사인식의 차이에서 온다. FTA는 비슷한 경제수준과 상품시장경제가 전제돼야 한다. 중국이 ASEAN과 FTA를 체결한 것은 동남아의 화교자본과 연결하려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수준이 중국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이 싱가포르를 선택한 이유는 경제수준이 비슷하고 상품시장경제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영토가 좁고 강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무역중계 역할을 하는 도시국가이다. 일본은 한국이 일본과 FTA를 맺어서 싱가포르와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싱가포르는 한국과 일본을 맺어주는 단순한 매개수단에 불과하다. 중국은 공산주의 경제에서 자유시장경제로 완전히 옮겨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지역에 따라 경제수준도 차이가 많이 난다. 또한 중국은 13억 인구를 가진 세계에서 제일 큰 경제공동체이며, 자기의 경제력을 주변으로 확대시키려 한다. 이러한 중국의 오름세를 막기 위해 일본이 한·일 FTA로 방어벽을 쌓으려 한다면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에서 ‘경제냉전’이 생겨난다. 그러면 북한은 중국에 편가름할 것이며 한반도는 또 다른 분단을 만나게 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갈등관계가 다시 생기며, 일본은 역사적으로 늘 그랬듯이 한반도 남부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킬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경제냉전을 피하려면 동아시아의 여러 가지 통합구상 중에서 한·일 FTA라는 작은 것에서 시작할 것이 아니라, ‘ASEAN+3’, 한·중·일 FTA라는 큰 것에서 시작해 작은 것으로 옮겨가야 한다. 동시에 남북한은 한반도 경제공동체(권)를 추진해야 한다. 한반도는 일본의 엔 경제권과 중국의 위안(元) 경제권 사이에서 양자택일할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원 경제권’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한반도가 분단을 극복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길이다. 잘못하면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경쟁에 주변 강대국들도 불러들이게 된다. 우리 스스로 19세기 말의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2002.11.7.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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