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자폐주의 지난달 29~30일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에 열린 북-일 수교 교섭 회담을 현지에서 취재했다. 굳이 말레이시아까지 출장을 간 것은 북-일 관계의 내용을 비교적 상세하게 관찰하는 위치에 있는 데다 회담의 한 당사국인 일본 쪽에 대한 접근이 상대적으로 용이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현지에서 부닥친 현실은 떠나기 전의 예상과 전혀 딴판이었다. 언론을 담당하는 일본 외무성 직원의 연락을 받고 찾아갔으나 한국 기자들은 일본어로 하는 회담 설명회에 참석할 수 없다는 통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러 도쿄에서 콸라룸푸르까지 취재하러 온 사연과 북-일 관계에서 한국은 사실상 당사자임을 내세우며 설명회 참석을 요구했으나 담당자는 “검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본 식의 표현으로 ‘검토하겠다’는 말의 의미가 ‘안된다’는 뜻이 아니냐”고 격렬하게 따지자 그는 “사실 그렇다”고 털어놨다. “어디서 그런 결정이 이뤄졌느냐”고 묻자 그는 “가스미클럽(일본 외무성 출입기자단)에서 이미 결정된 일”이라면서 변경 불가 방침만을 되풀이했다. 한국에서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때 일본 기자들이 참석해 질문하고 남북 관계 취재 때 일본 기자가 한국 기자와 동등하게 설명회에 참석하는 사실을 거론하며 재고를 요청했지만 대답은 요지부동이었다. 물론 일본 쪽이 이런 식의 행동을 했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취재를 못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일본 기자를 통해 설명회에서 얘기된 내용을 바로 파악해 기사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취재를 통해 일본 언론계, 나아가 일본 사회의 페쇄적인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 가스미클럽에는 일본 기자들뿐 아니라 <시엔엔방송> <에이피통신> <로이터통신> 등 10개 외국 언론사가 가입돼 있다. 따라서 가스미클럽만의 배타적인 기자회견이 일본 사람이 우선적으로 알아야 관심사나 ‘비밀’과 연관돼 있다는 주장은 애초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단지 가스미클럽 가입사인가, 아닌가 하는 구별만 있을 뿐이다. 특히 이번 회담은 일본만의, 또는 가스미클럽 가입 언론사만이 아니라 세계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모든 사람의 주요 관심사였다. 일본 관리와 언론들은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기자들을 만날 때 자주 “왜 당신들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느냐”는 질문한다. 이에 대해 여러가지 할 말이 많지만 “당신들의 폐쇄적이고 내향적인 태도도 그런 결과를 가져온 매우 주요한 원인”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오태규 도쿄 특파원 ohtak@hani.co.kr 2002.11.12.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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