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저러다 일 낼라 '군대를 가진 보통국가'라는 일본의 꿈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9-11 테러, 북한 공작선 침투, 북한 핵개발로 인한 안보 위협을 이유로 자위대의 권한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12월 16일 인도양에 파견된 일본 이지스함은 이를 잘 나타낸다. 하지만 '일본의 꿈'은 동북아 국가들의 군비확장으로 연결돼 동북 아시아의 공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낳고 있다. 현재 세계 2위의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는 일본은 세계 최강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미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4대, 이지스함 4대 등 최첨단 군사장비가 실전 배치돼 있다. 또한 대형 수송기와 공중급유기, 항공모함의 역할도 맡을 수 있는 함선도 보유하고 있다. '작은 미국'의 준비가 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자위대는 이를 수행할 수 없다. 1953년 발족된 일본의 자위대는 법적으로 군대가 아니라 '자위를 위한 한정된 군사력'이기 때문이다. 일본 헌법 제9조에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를 갖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50여 년간 자위대가 '자위대'로 남아 있었던 이유는 냉전질서 속에서 미국이 일본의 안보를 책임졌고, 전쟁을 금지한 헌법 제9조를 국내 세력이 지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로 냉전질서가 와해되자 일본은 더 이상 미국에 기댈 수 없게 됐다. 또한 보통국가를 주장하는 우파 정치 세력이 전면에 나섰다. 법도 흔들리고 있다. 일본판 〈뉴스위크〉는 최근호에서 "일본 자위대와 신도 대학이 공동으로 '안보보장공동연구'를 실시했다"며 "군대에 대해 반세기 이상 논의를 피했던 일본이 헌법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법이 흔들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였다. 각종 법 개정으로 자위대 힘 실어줘 9-11 테러가 발생하자 일본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9월 17일 자위대의 대테러전 후방지원을 위해 신법 필요 여부를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중동은 일본의 '주변'에 포함되지 않아 일본이 미군 전투를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인 '주변사태법'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 10월 5일 중의원에 제출된 신법, '테러지원대책법안'은 25일 만인 10월 29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유례없는 속도로 성립된 '테러지원대책법'은 '일본 주변의 공해 및 상공'으로 제한된 주변사태법의 파견지역을 상대국의 동의를 전제로 '외국의 영역'까지 확대했다. 이는 자위대의 파견 범위가 전세계로 확장됐음을 의미한다. 한 달 뒤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호위함 2척과 보급함 1척은 미군함의 연료 보급 등의 임무를 띠고 인도양으로 출항했다. 자위대법도 개정됐다. 테러 발생 이틀 뒤 일본 정부는 미군기지 경비를 자위대가 담당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자위대법 개정을 추진했다. 테러지원대책법과 함께 최단 시간에 중-참의원본회의를 통과한 이 법은 자위대가 평상시에도 출동할 수 있게 했다. 이번 법 개정은 자위대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UN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도 이번에 개정됐다. 지난해 12월 7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가결된 이번 개정안은 UN평화유지군(PKF) 본체활동에 대한 동결을 해제하고 자위대원의 무기 사용 기준을 완화했다. 1992년 PKO협력법이 통과된 이래 일본 정부는 분쟁 당사자의 무장해제 감시 등 6개 항목으로 구성된 본체활동이 헌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참가를 동결해왔다. 이번 법안 통과로 일본 자위대는 법률상 PKF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무기 사용 기준이 완화돼 보다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해졌다. 고이즈미 총리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유사법제(有事法制)'의 성립도 눈앞에 두고 있다. 방위청의 주도 아래 1977년부터 연구돼온 유사법제는 일본이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 대처방안을 담고 있다. 그동안 '유사법제'는 전시동원법이라는 야당 등의 반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해 4월 '유사법제'를 추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12월에 북한 공작선 격침 사건이 발생하자 고이즈미 총리는 올 1월 초 '유사법제' 입법 의사를 밝혔다. 4월 26일 중의회본회의에 제출된 유사법제 관련 3법은 야당 등 여론의 반대 때문에 아직까지 중의원 계류 중이지만 북한 핵개발 위협을 이유로 곧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제출된 법안은 무력공격사태법안-자위대법개정안-안전보장회의설치법이다. 무력사태공격법안은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이 있거나 공격이 예측되는 경우의 국가 대처를 담고 있다. 또한 총리의 방위출동명령 이전에도 자위대가 기지 외에서 진지나 방어시설을 구축할 수 있도록 했다. 자위대법 개정안은 방위 출동 시나 진지 구축에 필요한 토지 등의 수용 절차와 이를 거부하는 국민에 대한 벌칙 규정을 담고 있다. 안전보장회의설치법은 안전보장회의의 기능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일본 정부는 무력 공격 예측 단계에서도 국민의 사유재산권을 제한하고 전시동원체제를 갖출 수 있다. 美-이라크전쟁 참전 법안도 마련 일본 정부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비한 신법도 준비 중이다. 미국 정부로부터 대이라크전 지지와 협력을 요구받은 일본 정부는 12월 6일 신법 제정 검토에 들어갔고 사흘 뒤 3단계로 구성된 대미 지원책의 골격을 정했다. 전쟁 전 단계에서 일본은 이라크전 발발 시 예상되는 아프가니스탄 부근 미군 공백 지역에서 호위와 경계를 실시, 미군의 부담을 덜어주게 된다. 전쟁 중 단계는 난민 구원 작업이다. 전쟁 후 단계는 신법 제정에 의한 다국적 부대의 측면 지원을 포함한다. 이렇듯 일본은 1년 사이에 '작은 미국'이 되기 위해 법적 장애물을 제거해왔다. 이에 대해 권혁태 성공회대교수(일본학)는 "냉전 해체 이후 자위대 법적 인정 등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국내적으로 우경화 경향과 대외적으로 미국의 군비 분담 요구가 맞아 떨어진 것"이라며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 활발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또한 "일본과 중국의 군비 확장 경쟁 속에서 한국은 주한미군의 군사적 조정자 역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한반도가 미국의 뜻에 좌지우지되는 상태가 지속되고 만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일본의 군비 확장을 막아야 한다"며 "일본에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한반도 긴장 완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주변국은 과거사에 대해 적절한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을 우려하고 있다"며 "일본은 미-일 쌍무동맹에 의존하지 말고 아시아 국가와 진심으로 협력해 안보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재용 기자 politika95@kyunghyang.com 2002. 12. 뉴스위크 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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