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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과 고조선

고려 문신 이규보(李奎報)는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서 “(전북 익산의 금마면에서) 지석(支石)을 구경했다. 지석은 세속에서 전하기를 옛날 성인(聖人)이 괴어 놓은 것이라 하는데, 과연 기적(奇迹)으로서 이상한 것이었다”라고 전한다. 지석은 곧 고인돌이다. 우리나라는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데서 알 수 있듯 전 세계의 절반에 가까운 3만여기가 군집한 고인돌 왕국이다.

그간 고인돌에 대해 가장 일반적인 설명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이라는 것이었다. 고창 고인돌에 대해서는 기원전 400∼500년쯤 이 지역을 지배했던 족장들의 가족 무덤으로 설명한다. 각지에 산재했던 부족사회의 유물이지 고조선 유물이라는 설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고인돌은 만주의 요하(遼河) 동쪽에서 한반도와 일본 규슈 지역까지 분포한다. 이 광대한 지역에 고인돌이라는 같은 무덤을 사용했지만 정치권력은 이상하게도 독립적이었던 수많은 부족사회가 존재했다는 이상한 설명이다.

이는 고조선의 강역을 대동강 일대로 국한했던 일제 식민사학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1만4000여기나 되는 대동강 유역의 고인돌에 대해서도 고조선 무덤이라고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대동강 유역은 고조선 유물이지만 다른 지역은 고조선과 무관한 독립적 족장 무덤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는 까닭일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한(漢)나라 무제가 고조선을 정복하려고 5만7000명의 대군을 보냈고, 고조선 태자(太子:세자가 아님)는 사신 위산(衛山)을 만나러 패수(浿水)를 건널 때 1만명의 군사를 거느렸다고 전한다. 당대인(當代人) 사마천이 황제국가로 보는 고조선에 대해 우리는 족장사회라고 보는 것이다. 고인돌은 고조선의 강역이 만주와 한반도 전체를 아울렀던 대제국임을 나타내는 유물의 하나로 시급히 자리잡아야 한다. 그리고 고조선인들에 대해 ‘기적(奇迹)을 만든 성인(聖人)’으로 본 고려인들의 인식도 되찾아야 한다. 그것이 선조에 대한 예의이다.

이덕일•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조선일보 2007.01.12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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