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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금석학

1817년 4월, 31세의 추사(秋史) 김정희는 경주 외곽 암곡동의 무장사 터를 찾았다. 신라 38대 원성왕의 아버지가 지은 이 절은 세월이 흐르면서 흔적만 남았다.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집자(集字)했다는 무장사비(碑) 역시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추사는 ‘혹시나’ 해서 주변을 뒤지다 풀숲에서 비석 조각 두 개를 발견하고는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추사가 비문을 연구하는 금석학(金石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3세 때 사신으로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을 찾으면서였다. 추사는 60일간 연경에 머물면서 당대 최고의 학자 옹방강(翁方綱)과 완원(阮元)으로부터 고증학과 금석학에 대한 소양을 얻는다. 그는 귀국 후 우리나라의 옛 비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도선(道詵) 국사가 세운 것으로 전해지던 북한산 비봉(碑峰)의 비석이 진흥왕순수비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도 그였다.

▶“옛것이 좋아 때론 깨진 빗돌을 찾아 다녔던(好古有時搜斷碣)” 추사지만, 그의 금석학 관련 글은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만년에 제주도와 북청으로 유배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는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책을 불태웠다. 그의 사후 제자들이 편지 모음인 ‘완당척독(阮堂尺牘)’과 문집인 ‘완당집(阮堂集)’을 간행했지만, 금석문과 관련된 것은 실려 있지 않다. 북한산비와 황초령비 등 진흥왕순수비 두 개를 비교 분석한 ‘예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錄)’이 따로 전해지고 있을 뿐이었다.

▶추사가 우리나라 고대의 비석 7개를 연구 분석한 ‘해동비고(海東碑攷)’의 발견은 전설로만 전해지던 추사 금석학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쾌거다. 이 논문집엔 경주 무장사비를 비롯해서 신라 문무왕비, 당(唐)이 백제를 멸망시킨 후 세운 평백제비(平百濟碑), 진감•지증•진경대사 등 고승의 비문들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물론 일본 문헌까지 널리 인용하며 비석의 내용을 치밀하게 고증하고 있다.

▶‘해동비고’의 발굴은 눈 밝은 젊은 아마추어 고문서연구가에 의해 이루어졌다. 가학(家學)으로 한학(漢學)을 공부한 은행원 박철상 씨는 10년 전 한 고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봤지만 너무 비싸 사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2년 전 다시 ‘해동비고’를 발견하고는 이를 구입해 내용을 분석해 왔다. 27일 발표 예정인 그의 논문은 상당한 내공을 쌓았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활발해질 추사 금석학 연구에 기대가 크다.

이선민 논설위원 smlee@chosun.com 조선일보  2007.01.09 22:37 / 수정 : 2007.01.09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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