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도본부는    · 시작페이지로    · 즐겨찾기    · 오시는길    · 메일보내기    · 사이트맵

2022년 06월 29일 수요일

내용검색  

약탈당한 문화재

세계마당

우리마당

재외동포

문화재

동북공정

순국선열

상고사

역사

  현재위치 > 독도본부 > 민족광장 > 문화재 > 기사

 


수촌리 금동신발 백제 디자인 ‘꽃봉오리’ 찾았다

 

마치 연화대좌 처럼 금동못을 장식한 만개한 연꽃(오른쪽)과 이번에 처음 확인된 연꽃 봉오리(왼쪽). /충남역사문화원 제공 

한마리의 용이다.

용이, 만개한 연꽃 9송이 그리고 막 봉오리를 터뜨리는 연꽃 2송이 사이를 휘돌아친다. 용틀임인가, 아니면 노니는 모습인가.

구름인지, 물결인지, 한껏 상서로운 기운이 용과 연꽃 사이를 감돌고 있다.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연화화생(蓮華化生)을 표현하고 있다. 2003년 말, 무령왕릉 이후 최대 발굴이라는 화제를 뿌렸던 공주 수촌리 3호분 금동신발이 이렇듯 빼어난 자태의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만개한 연꽃’만으로는 2% 부족

충남역사문화원이 10일 공개한 금동신발 문양을 한창 검토중인 이한상 동양대 교수의 말.

“활짝 피어난 연꽃 9송이가 신발바닥의 금동못(스파이크) 장식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간 백제고분에서 13켤레의 금동신발이 확인됐고, 일부 연꽃 무늬가 확인됐지만(나주 복암리 3호분, 익산 입점리 1호분) 이렇듯 완벽한 형태의 무늬가 보이기는 처음입니다.”

 
금동신발 문양을 다시 그려본 것. 이번에 처음 확인된 연꽃봉오리(왼쪽)는 한꺼풀 두꺼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으며(녹색으로 표현), 한성백제시기의 독자적이고 빼어난 문양을 보여준다. /이한상 교수 제공 


하지만 ‘만개한 연꽃’은 우리네 관점으로는 2% 부족한 것이다. (이 금동신발에서처럼) 만개한 꽃을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으로 도안화한 것은 매우 정형화한 문양으로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여겨졌다.

웅진시대와 사비시대의 유적에서 나온 ‘만개한’ 연화문은 중국 남조(양나라·502~557년) 등에서 디자인이 수입됐을 것이라고 추정돼왔다.

그런데 화룡점정이랄까. 보존처리 과정에서 획기적인 발견이 뒤따랐다.

▲속살 드러낸 연꽃 두송이

만개한 연꽃문양 옆에서 막 피어나는 연꽃 봉오리가 확인된 것이다. 이한상 교수는 “한성백제시기 유물 가운데 처음 발견된 도안”이라고 놀라워했다.

“꽃망울이 한겹 두겹 터지기 시작하는 모습입니다. 베일을 벗고, 순결한 속살을 드러내면서 오똑하게 솟은 꽃봉오리…. 백제문화의 당당함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백제문화의 고갱이를 볼 수 있습니다.”

이로써 백제의 연꽃 도안이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고구려에 기원을 둔 백제의 독자적인 디자인과 무늬라는 점이 확인됐다.

고구려 진파리 4호분에는 아이가 막 태어나는 모습처럼 연꽃 봉오리가 한꺼풀 두꺼풀 벗겨지는 모습이 생생한 벽화가 있다.

무용총에서도 3~4번씩이나 아이가 태어나는 연화화생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있다.

이한상 교수는 “중국 양대 이후가 아니라 한성백제 시기에 이미 고구려와 견줄 수 있는 빼어난 디자인과 무늬가 유행했고, 미술작품에서 구사됐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성백제 문화의 고갱이

용과 연꽃이 결합한 모습도 수촌리 3호분이 유일한 것이다. 수촌리 1호분 금동신발은 마름모꼴 투조이며, 4호분은 꽃과 봉황을 새겼다. 또한 수촌리 3호분 신발의 경우 바닥 전면이 연꽃 사이로 비상하는 용을 하나의 화면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신라의 기법과도 큰 차이가 있다. 신라 황남대총 남분(5세기 중반)의 금동관은 바닥에 용문양이 없다. 조립기법에서도 신라금동관이 옆에서 고정했다면, 3장의 금속판을 쓴 수촌리 3호분 신발은 똑같은 판 2장을 앞 뒤에서 붙였다.

또한 신라금동관이 별도의 부장공간에 들어있었다면, 수촌리 3호 신발은 죽은 사람이 직접 신고 있었다. 이미 신발에서는 퇴행성 관절염을 앓은 40대 이상의 남자 발뼈가 확인된 바 있다. 그렇다면 그림의 뜻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극락왕생하세요”

금동신발의 크기는 31.5㎝다. 평소 신던 신발이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 신긴 신발이라는 뜻이다. 이상세계의 꽃인 연꽃과 상상의 동물인 용을 함께 표현했다. 연꽃은 새생명의 탄생을, 용은 만물을 생성하는 기(氣)를 발산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이는 죽은 이의 영혼을 사후세계, 즉 극락으로 인도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뜻이다. 즉 연화화생의 그림인 것이다. 이훈 충남역사문화원 문화재센터장은 “특히 막 봉오리를 터뜨리는 연꽃문양의 확인은 이 시기 백제문화에 대한 재평가 작업과 연구에 신호탄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주|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경향신문  2007년 01월 10일 17:33:28 
 

관련
내용
관련내용이 없습니다

 

 

| 개 요 | 이 책은 2008년도에 일본 중의원에서 독도문제와 ...

 

 
  Copyright ⓒ 2001.독도본부. All rights reserved
전화 02-747-3588 전송 02-738-2050 ⓔ-Mail : dokdo2058@korea.com
후원 : 기업은행 024-047973-01-019(독도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