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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봉 유적 보존 못한게 恨”

새달 정년 맞는 선사고고학계 영원한 ‘현역’ 이융조 교수

“한반도에서 코끼리나 코뿔소가 살았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것을 50m 벼랑에서 로프에 의지한 채 목숨을 걸고 발굴했습니다.”


 ▲ 이융조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청원 두루봉 유적에서 발굴해 복원한 뒤 이 대학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40만∼50만년전 동굴곰 앞에서 미소짓고 있다. 
 
한국의 선사 고고학을 이끌어 온 이융조(65) 충북대 교수가 새달 정년을 맞는다.17일 충북대박물관에서 만난 그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도전한다는 각오로 발굴에 나섰던 것이 나름대로 성과를 이끌어냈던 것 같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세계 最古 볍씨 발굴

이 교수는 태백산맥과 차령산맥·소백산맥으로 둘러싸인 중원지역의 선사 고고학에서 독보적 업적을 쌓았다. 청원 두루봉 구석기 유적에선 인골을 발굴했고, 청원 소로리에선 최고 1만 4810년전 것으로 측정된 볍씨를 찾아내 벼의 기원과 전파 과정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단양 수양개에서 발굴한 슴베찌르개는 브리티시뮤지엄과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도 한국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으로 전시되고 있다.

천주교회사를 전공하려던 사학과 대학원생에서 급작스럽게 뒤바뀌어버린 그의 ‘발굴인생’ 또한 이웃한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에서 비롯됐다.“1964년 연세대에는 모어와 샘플러라는 미국인 부부 고고학자가 연구원으로 와 있었어요. 호기심에 강연을 들었는데 처음부터 발굴 얘기를 꺼냈습니다. 강화 고인돌과 부산 동삼동, 공주 금강변에서 석기가 나오는데 가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하더군요.”

스승인 손보기 교수도 강연을 함께 들었다.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음을 처음 알린 석장리 유적의 발굴 주역이다. 공주사범학교 출신으로, 대학원의 막내였던 ‘이융조 조교’는 곧장 선발대로 석장리에 투입됐고, 이후 1974년까지 발굴에 참여했다.

이 교수는 “석장리는 수십만개의 석기가 나온 것 말고도 층위에 따른 발굴법을 제시하고, 방사성 연대 측정방법을 처음 도입하는 등 이후 구석기 고고학에 ‘가이드 라인’ 역할을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석장리 발굴팀은 당시 주먹도끼와 찍개, 긁개, 밀개, 찌르개 등 요즘 널리 쓰이는 고고학 용어의 기초자료를 만들기도 했다.

 
 
그의 중원지역과 인연은 1976년 충북대 전임강사로 부임한 뒤 더욱 공고해진다. 이 해부터 두루봉 유적의 본격적인 발굴에 들어가는데, 동굴 중심의 발굴은 이후 중원지역 고고학 조사의 특징으로 자리잡는다. 두루봉에선 연세대 박물관이 9굴을, 충북대 박물관이 2굴과 15굴, 새굴, 처녀굴, 흥수굴을 차례로 찾아내 1983년까지 모두 10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2굴에선 진달래 꽃가루가 157개가 발견됐습니다.20만년전에 꽃을 사랑한 첫번째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옛 코끼리 상아가 나온 곳은 새굴입니다. 구석기 시대에 뼈연모를 만들기 위해 상아를 인위적으로 손질한 흔적은 아시아에서 처음 발견된 것입니다.”

40만∼50만년전으로 추정되는 처녀굴에서는 쌍코뿔이 뼈와 한 마리 분의 동굴곰 화석이 나왔다. 이 동굴곰은 3년동안의 복원작업을 거쳐 현재 충북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발굴에서 복원으로

흥수굴에서 나온 사람 뼈로 복원한 것이 ‘흥수 아이’다. 머리뼈의 해부학적 특징으로 볼 때 약 4만년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한다.1982년 현지 석회석광산 현장소장의 제보로 찾았다. 흥수굴이나 흥수 아이는 모두 김흥수 소장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한데유적인 수양개는 충주댐 수몰지역 조사에 따라 1980년부터 발굴됐다. 유물의 숫자와 종류, 제작수법에서 국내 최대인 수양개는 세계적인 구석기 유적지로 발돋움했다.1996년부터 ‘수양개와 그 이웃들’이라는 국제학술대회를 해마다 열고 있다. 올해는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열린다. 세계 구석기 학계의 중요한 교류의 장으로 자리잡았다.

이 교수는 “고고학의 마지막 목표는 복원”이라고 했다. 동굴곰과 흥수 아이는 물론 화순 대전 집터를 복원하고 석장리박물관, 중부고속도로 유물전시관, 충주 조동리선사유적박물관, 수양개박물관 등을 세우는데 역할을 하는 등 지나는 곳마다 ‘흔적’을 남기는 것도 이런 소신 때문이다.

●‘고인돌=청동기´ 아니다

하지만 이 교수는 발굴에서 찾아진 고고학적 증거가 곧바로 학계의 정설로 굳어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손으로 고인돌에서 수없이 많은 신석기 시대 유물을 찾아냈지만 학계의 일부는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라는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4330년전 것으로 추정된 고양 가와지 유적의 볍씨와 소로리 볍씨를 찾아낸 이후에도 영국 BBC가 보도하는 등 언론에서는 떠들썩했지만, 정작 학계의 일부는 조용했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나의 발굴 조사 결과를 뒷받침하는 발굴이 조만간 이뤄지지 않겠느냐.”며 자신만만하다. 그는 “1만 5000년전 벼가 나왔다면 그것이 결코 시작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큰소리치고 살면서도 실수한 것이 많았다.”고 했다. 두루봉과 수양개 종합보고서를 아직 펴내지 못했고, 수양개 국제학술대회에서는 300편 가까운 논문이 나왔는데도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저작집으로 정리해서 국제 학계에 보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두루봉 유적을 보존하지 못한 것은 한스럽다.”면서 “잘했다면 한국의 주구점이 됐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베이징원인이 발굴된 저우커우디엔(周口店)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구석기 유적지의 하나로 꼽힌다.

이 교수는 “기분좋게 떠나간다.”고 했지만 대학원 강의를 계속하는데다, 발굴 및 연구 법인인 한국선사문화원구원을 이끌고 있어 ‘현역 고고학자’의 위치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글 사진 청주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서울신문 0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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