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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이스키 강제이주 70년<5>

다시 희망 찾는 연해주


  ▲ ‘우정마을’의 기와지붕은 한국의 농촌 풍경을 연상시킨다. 길거리 이름도 ‘아리랑로’ ‘새마을로’ ‘우정로’ 등으로 되어 있다. 사진 제공 동북아평화연대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북쪽으로 30분가량 차를 달리면 지붕에 주황색 기와를 얹은 집들이 가지런히 줄을 맞춘 한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에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도 서 있다. 마치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단장한 한국의 어느 농촌 마을 같다. 이곳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 돌아오는 고려인들의 정착을 위해 마련된 ‘우정마을’이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던 고려인들이 연해주로 돌아와 정착하면서 연해주 고려인 사회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국내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한 정착 지원 사업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살아나는 연해주 고려인 사회


   ▲ ‘우정마을’의 경제교육센터에서 농업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제공 동북아평화연대  
 

‘고려인 집단 정착촌’인 ‘우정마을’은 대한주택건설협회가 1000채의 집을 지어 고려인들에게 제공하겠다며 외환위기 직전 조성했다. 외환위기 때 33채만 짓고는 중단되기도 했지만 동북아평화연대(동평)를 비롯한 국내 민간단체들이 2004년 이곳에 농업지원센터를 세우면서 고려인 정착 지원 사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동평은 우수리스크와 우정마을에 지부를 설치하고 후원금을 모아 허름한 농가를 사서 개량한 후 싼값에 제공하는 사업을 벌인다. 이 같은 정착촌 건설 사업은 우정마을 외에도 크레모바, 아시노브카, 순야센 등 7, 8곳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확산될 전망이다. 농업지원센터에서는 비닐하우스 재배나 자연농법을 가르친다.

삼성, 신세계 등 기업들의 지원도 늘고 지난해에만 우정마을에 한국의 각급 학교나 사회단체에서 1000명 이상이 찾아와 견학하고 집짓기 봉사를 벌이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아름다운 가게’ ‘사회연대은행’ ‘자연농업협회’ 등 7개 사회단체가 ‘70-70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강제 이주 70주년을 맞아 집 70채를 짓는 프로젝트다.

2002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우정마을로 이주한 아나톨리 고(51) 씨는 “비닐하우스 농업 기술까지 배워 소득이 늘면서 큰아들을 미국에 유학까지 보냈다”며 “하지만 타슈켄트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는 아직 동생이 7명이나 남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우정마을에 파견 근무하는 동평의 김현동(45) 국장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이 연해주로 돌아오고 싶어도 못 오는 것은 거주지가 없고, 먹고살 직업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해주에는 우수리스크의 2만여 명을 포함해 4만 명가량의 고려인이 있다. 1937년 강제 이주 당시의 20여만 명에 비하면 크게 줄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있는 50여만 명의 고려인 중 연해주로 돌아오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1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연해주 고려인협회는 추정했다.

구심점이 될 이주 기념관과 한민족학교

우수리스크 시내에 마련될 연해주 이주 기념관과 한민족학교는 고려인을 모으는 중심이 될 전망이다. 재외동포재단 지원과 일반인 후원금으로 내년 말 완공 예정인 ‘고려인 연해주 이주 140주년 기념관’에는 한민족 역사관, 고려인 전용 병원, 정보문화센터, 아리랑 가무단, 격주간인 고려신문사가 들어선다.


연해주 정부는 또 지난해 7월 우수리스크 시 ‘제3학교’의 이름을 ‘한민족 제3학교’로 바꾸었다. 초중고교를 합쳐 11년 과정인 이 학교 전교생 680여 명 중 고려인 학생은 200명이 채 안 된다. 하지만 2학년 이상 모든 학생은 매주 2시간 한국어, 매주 1시간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배운다. 연해주에는 20여 소수 민족이 있지만 소수 민족의 이름을 내걸고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학교는 이곳이 유일하다.


옐레나 예브게니예브나(47·여) 교장은 “초기에는 의무적으로 한국어와 한반도 문화,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불만스러워하는 학부모들이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한국을 알고 싶어 하고, 한국 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어 한국어 배우는 것을 반긴다”고 말했다.○연해주 정부도 적극 지원


연해주의 면적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인구는 약 200만 명인데 갈수록 줄고 있다. 따라서 고려인들이 돌아오거나 한국인들의 진출을 반긴다. 거주하던 국가의 신분증과 이주 후 경제활동 계획만 있으면 이주를 허용하고 있다.


러시아 중앙정부도 지난해 6월 22일 ‘해외 거주 동포들의 자원 이주 지원대책에 대하여’라는 대통령령을 발표해 과거 옛 소련 거주 국민이 러시아로 이주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


고르차코프 빅토르 바실리예비치(67) 연해주 부지사는 “고려인 관련 단체와 고려인 정착사업 지원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고려인 사회가 활성화하면 연해주와 한국의 교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니콜라이 강 “연해주 정착 고려인들 한-러 가교역할 할 것”

동북아평화연대(동평) 우수리스크 지부에서 근무하는 고려인 니콜라이 세르게예비치 강(67·사진) 씨는 연해주 주정부와 우수리스크 시 청사를 매일같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다. 고려인 이주를 돕기 위해서다.

연해주농업대 전임 교원까지 지낸 엘리트인 데다 러시아어와 한국어에 능통하고, 러시아와 고려인 사회의 사정을 모두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강원 통천군 송전읍이 고향으로 고등학교 재학 중 6·25전쟁이 터지자 러시아 군인을 따라 러시아로 건너와 바이칼 호 부근의 부랴트농업대를 졸업했다.

우수리스크의 한 봉제공장에서 부사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3년 전 동평에 들어와 근무하고 있는데 급여가 낮아 사실상 ‘자원봉사’를 하는 셈이다.

최근 재외동포 행사 참석차 한국에 온 그는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고국에서 찾아와 헌신적으로 고려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어렵사리 후원금을 보내 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연방정부나 연해주 주정부가 고려인 이주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해결할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각지를 떠돌던 고려인 가운데 출생증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아 신분 확인이 안 돼 ‘임시 거주 등록’을 못하는 것이 대표적인 애로사항 중 하나. 러시아에서는 거주 등록이 안 되면 내외국인 모두 이주를 할 수 없다.

또 그는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하려면 은행 잔액이 1000달러(약 92만 원)가 있어야 해 부담이 되고, 거주 국가에서 범법 사실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 절차가 복잡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한국 기업들의 연해주 진출이 많지 않지만 앞으로 교류가 늘어나면 연해주 고려인들은 중국 내 조선족들이 한중 사이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수리스크=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동아일보 2007.01.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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