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도본부는    · 시작페이지로    · 즐겨찾기    · 오시는길    · 메일보내기    · 사이트맵

2022년 09월 27일 화요일

내용검색  

약탈당한 문화재

세계마당

우리마당

재외동포

문화재

동북공정

순국선열

상고사

역사

  현재위치 > 독도본부 > 민족광장 > 재외동포 > 기사

 


강제이주 70년 고려인을 찾아서<2>

정상에 선 고려인들

한국인 근면함 앞세워 각 분야서 '성공신화' 
 
 
   ▲ 우즈베키스탄 소시지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테겐 소시지의 정 게나지 사장이 공장 내 보관실에서 가공된 소시지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07년 1월 현재 우즈베키스탄 내 고려인의 숫자는 전체 국민(2500만명)의 0.8%인 20만여명에 달한다.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 특유의 명석함과 근면함으로 각계각층에서 ‘한민족의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

고려인들은 특히 교육열이 높고 욕심이 많아 다른 민족에 비해 잘사는 편이다. 예전에는 농업개척자로서 목화와 벼농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면 지금은 정치, 경제, 학계, 예술 등 각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4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시 한국대사관 근처에 위치한 고려인문화협회 건물 3층 회의실. 신 블라디미르 고려인문화협회 회장, 박 베라 우즈베크 상원의원, 신 이스크라 화백, 김 부르트 고려신문 편집장, 한 마가리타 고려무용단 단장 등 이른바 ‘잘 나가는’ 고려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항상 바쁜 이들이 한꺼번에 얼굴을 맞대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두달에 한번씩은 시간을 쪼개 고려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현안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올해는 오는 9월 고려인 강제이주 70년을 기념하기 위한 대대적인 행사를 추진하고 있어 이들의 어깨가 더욱 무겁다.

신 블라디미르(51) 고려인문화협회장은 우즈베키스탄의 권투영웅이다. 전 국가대표 권투선수 출신으로 79년에는 세계 챔피언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후 국가대표 권투 감독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그가 고려인문화협회장직을 맡은 건 2000년부터. 제대로 된 사무실도 없이 셋방을 전전하던 고려인문화협회를 제대로 운영해보고자 협회 측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그를 회장직에 앉히기로 하고 끈질긴 설득작업을 벌여 수락 의사를 받아냈다. 그는 회장 취임 이후 ‘마당발’ 인맥을 동원, 많은 기부금을 끌어모았고 고려인문화협회 회원들이 꿈에 그리던 3층짜리 보금자리도 마련했다.

신 회장은 “부와 명예가 보장된 국가대표 코치직을 박차고 나올 때 사실 고민이 많았다”면서 “그렇지만 막상 회장직을 수행하다 보니 고려인 사회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도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고려인문화협회는 우즈베크 전역에서 고려인 풍습 및 전통 유지와 전수, 고려인 신문 발행, 한국어 교육·보육 등의 일을 맡고 있다.

한달에 2번 발행되는 고려신문은 고려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소식을 전달하는 메신저다. 12면짜리 이 신문의 한 면에는 한국 소식도 실린다. 이 신문은 발행인 김 부르트(55)씨의 집념과 노력의 결정판이다. 김씨는 옛 소련 시절 존재했던 고려인 신문인 고려일보의 우즈베키스탄 특파원을 지냈다. 당시 고려일보는 소련 전역에 배달됐다. 하지만 소련 해체와 동시에 고려일보는 취재지역을 본사가 있는 카자흐스탄으로 한정했다.

이에 김씨는 한국에 있는 재외동포재단에 정식으로 지원을 요청, 고려인 강제이주 60주년 기념일인 1997년 9월20일 우즈베크에서 고려신문을 창간했다.

2005년에는 오랜기간 고아원을 운영해온 박 베라(67·여) 원장이 고려인 최초로 상원의원으로 선출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는 소수민족 출신답게 소수민족에 대한 복지와 교육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신 이스크라(54·여) 화백은 현지 고려인 사회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미 유명인사가 된 지 오래다. 그는 우즈베크 명문인 빈코바 미술학교 출신으로 이탈리아, 한국, 미국,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서 수천회에 걸쳐 전시회를 열었다. 특히 2002년에는 서울시의 초청을 받아 한국을 방문, 명예시민증을 받기도 했다.

◀ 고려인문화협회 신 블라디미르 회장(가운데)과 신 이스크라 화백(왼쪽 세 번째), 박바실리 원로회 회원(오른쪽 첫 번째) 등 고려인 인사들이 타슈켄트시에 위치한 고려인문화협회 사무실에 모여 올해 9월 열릴 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 행사를 논의하고 있다.

고려인들은 경제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우즈베크 내에 소시지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테겐’의 정 게나지(46) 사장.

그는 부모님이 러시아에서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 2세이다. 그가 소시지 사업에 뛰어든 것은 97년부터. 초기에는 건물 한층을 빌려 하루 온종일 100㎏ 정도의 소시지를 만드는 데 그쳤다. 하지만 테겐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현재 하루 평균 20t의 소시지를 생산, 1일 매출액이 5만달러에 이르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생산공장 또한 3개로 늘었고, 전국에 소시지 판매가게만도 1960곳에 이른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신경쓰지 않는 부분까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경쟁업체들이 포장이나 디자인을 소홀히 하고 있는 점에 착안, 담당 디자이너를 따로 두고 포장과 디자인을 연구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한국적 심미안을 활용한 것. 그 결과는 매출신장으로 이어지는 대박이었다.

국회와 관공서 등에 납품하는 최고급 가구공장 ‘Pzozess Association’의 김 게오르기(49) 사장도 성공한 사업가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소련 시절 가구공장 AS책임자로 일한 그는 우즈베크 독립과 함께 직장을 잃게 되자 직접 가구공장을 차렸다.

이 회사는 처음엔 낡은 단층짜리 건물에서 출발했지만 10년 만에 5개 지역에 대형 공장을 둔 연매출 200만달러의 우즈베크 최고 가구회사로 성장했다.

김 사장은 “아직 경쟁자가 많지 않은 우즈베키스탄은 똑똑한 고려인 젊은이들에겐 기회의 땅”이라면서 “신선한 아이디어와 열정, 성실함으로 무장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으니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고려인 최초 우즈베크 상원의원 박베라씨


 ‘버려진 아이들의 어머니’, ‘고려인 최초 상원의원’, ‘영원한 선생님.’

2005년 고려인 최초로 우즈베키스탄 상원의원에 선출된 박 베라(67·사진)씨를 얘기할 때 붙어 다니는 수식어다.

고려인 2세로 고아원 원장이자 45년간 중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쳤던 그녀는 국회에 입성한 뒤 교편은 잠시 중단한 상태지만 20년째 고아원 원장직을 수행해 오고 있다.

그녀가 사는 곳은 16세기 티무르 제국의 중심이었던 히바시. 이곳에서 그녀는 천사로 통한다. 늘 자상하게 아이들을 챙기며 지역사회에 봉사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에는 우즈베키스탄 독립 이후 고려인 최초로 정부의 영웅 훈장을 받았다.

박 의원은 “한결같은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을 대한 것을 주민들이 높이 평가해 상원의원으로 뽑아준 것 같다”면서 “요즘 의정활동을 하느라 아이들에게 다소 소홀해진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을 감출 길 없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한국 국회의원들과의 교류활동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미 김원기 전 국회의장을 비롯한 다수의 한국 국회의원들이 이곳을 찾아 우즈베크 국회의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소수민족의 설움을 잘 아는 그녀는 고려인을 포함한 소수민족의 복지와 교육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고려인 문화협회나 소수민족들이 각종 행사 개최를 위한 ‘지원사격’을 요청해 오면 항상 자신의 일 인 것처럼 발벗고 나선다.

현재 박 의원은 둘째 딸이 한국인과 결혼해 전주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대해서도 많은 애착을 갖고 있다. 한국인만 만나면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묻곤 한다.

박 의원은 “한국이 발전해야만 우즈베크에 있는 고려인들도 힘을 낼 수 있다”면서 “새해에는 한국이 각종 불안요소를 잠재우고 국제사회에서 더욱 우뚝 서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타슈켄트=이경희 기자 sorimoa@segye.com 세계일보 2007.01.01 (월) 17:05 

 


관련
내용
관련내용이 없습니다

 

 

| 개 요 | 이 책은 2008년도에 일본 중의원에서 독도문제와 ...

 

 
  Copyright ⓒ 2001.독도본부. All rights reserved
전화 02-747-3588 전송 02-738-2050 ⓔ-Mail : dokdo2058@korea.com
후원 : 기업은행 024-047973-01-019(독도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