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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강제이주 70년_ 下

역경을 딛고선 고려인들

  
   ▲강제이주 70년이 된 오늘날, 고려인들은 낯선 땅 중앙아시아에서 경제, 문화, 예술 등의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수민족으로 우뚝 섰다. 사진은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들. 

스탈린의 지령에 의해 극동을 떠나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내졌다. 화물열차에 실린 지 한 달 만에 고려인들은 새로운 땅에 도달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정치적 이유로 체포·처형되었고 또 다시 적지 않은 수가 이주 도중 사망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슬퍼할 틈도 없이 정착을 준비해야 했다. 고려인들은 버려진 주택을 수리하거나 땅굴을 파서 움막을 짓고 급히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의료시설이 없고 영양도 불충분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여기에 또 다른 정치적 탄압이 가해졌다. 고려인들의 신분증명서를 회수하고 단기거주 증명서만 주어서 여행의 자유를 박탈한 것이다. 고려인들은 철망 없는 수용소에 거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거주지 제한은 스탈린이 사망하는 1953년까지 계속되었다.

 
◀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있는 고려인 학교. 


모든 것을 빼앗기고 새로 출발하게 되었으며 게다가 정치적 탄압까지 당하면서도 고려인의 생존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고려인들로 새로 조직된 콜호즈(집단농장)는 고려인 특유의 근면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여 뛰어난 경영실적을 내게 되었다. 이주 후 첫 수확을 하게 된 1938년에 이미 고려인으로 구성된 ‘북극성’ 콜호즈는 생산계획을 700% 달성하는 성과를 보였다. 다른 고려인 콜호즈들도 생산계획을 수배씩 초과달성하였다. 이러한 경영성과에 힘입어 고려인들은 주택을 건설하고 단기간에 성공적인 정착을 하게 되었다.

고려인들은 고강도 노동과 효율적인 경영을 통하여 얻어낸 자금을 자녀교육에 투자하였다. 고려인들이 교육에 투자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교육만이 주거제한을 벗어나 다른 민족들처럼 정상적인 삶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육은 고려인들에게는 생존이자 동시에 명예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50~60년대에 고려인들은 콜호즈에서는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하여 자금을 마련하고, 그 자금을 자녀교육에 투자하고 도시 이주 밑천으로 활용하여 집단농장제가 가지는 제약과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였다. 이같은 노력으로 고려인들은 소련 내의 여러 민족들 중 도시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민족 중의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이 뒤따른다. 고려인들이 어떻게 하여 콜호즈에서 높은 생산성을 올리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은 바로 고려인들이 ‘고본지’라고 부르는 임대차경영방식의 사용에 있었다. 사회주의적 경영방식을 고집한 소련의 콜호즈는 농민들의 근로의욕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악명 높은 제도였다. 공동 생산, 공동 분배의 이름 하에 농업노동자화한 농민들은 사실상의 태업으로 이 제도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불법이었지만 임대차경영방식을 도입하여 계획을 수배씩 초과달성하였다. 그러므로 50~60년대에 고려인 콜호즈에서는 수많은 노력영웅이 나오게 되었다.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고려인 아버지와 딸.  ▶


그리하여 이주 후 한 세대가 가기도 전에 고려인들은 낯선 땅 중앙아시아에서 그 땅의 선주민인 우즈벡인이나 카자흐인들보다도 훨씬 나은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자녀교육에 적극 투자한 덕분에 70~80년대가 되면 학문, 예술, 스포츠, 국가기관 등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이거나 지도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고려인들은 소련 소수민족정책의 성공사례로 종종 거론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려인들의 성공은 소련 소수민족정책의 성공이 아니라 소수민족 탄압정책을 딛고 성공한 사례로 소개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85년은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된 해이다. 이 해를 계기로 하여 소련은 이후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고려인들의 삶에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사회주의 체제를 내부혁신을 통하여 개선하려는 의도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회주의 체제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분명해졌고 결국은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는 붕괴되기에 이른다. 페레스트로이카가 고려인에게 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이유는 소련 정부가 고려인들을 비롯한 소수민족을 탄압했던 역사적 죄과를 인정하고 이들의 권리를 회복시킨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고려인들은 수 십년 간 그들을 어둡게 짓눌렀던 불명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 1040년대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한 ‘고려극장’ 의 연주단원들. 


한편 소련의 민족억압적 정책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소련 내의 여러 민족들은 독립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91년에 중앙아시아의 5개 국가들도 모두 독립하게 되었다. 이는 또 다시 고려인들의 삶에 큰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소련시절에는 러시아어가 소련 사람들의 소통언어로서의 역할을 하였지만, 각 민족들이 독립하고 민족정체성을 강화하려는 가운데 주된 민족의 언어를 국어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그러다보니 고려인들에게는 어려운 난관이 닥친 것이다. 러시아어 이외에도 학문적이거나 상업적인 효용성이 떨어지는 소속국가의 언어를 학습해야 하고 그러한 것이 이중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고려인들이 국가기관에서 밀려나는 상황이 되었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혼란과 어려움으로 인하여 생활수준은 급속히 떨어진 가운데 실직의 아픔이 더해진 것이다.

그렇지만 고려인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통하여 극복하여 나가려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큰 성공을 거두는 사례도 이미 목격된다. 또한 고려인에게는 대한민국이라는 조상의 나라가 있으며 이 나라가 경제적으로 활기있게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고 있다. 한국의 자본이 투자되고 많은 기업인들이 진출함으로써 현지의 고려인들은 일자리를 얻고 경영을 배우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또 많은 수의 고려인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는 경험을 갖게 됨으로써 경제적으로도 성장하고 일하는 방식도 터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미 카자흐스탄의 경우에는 많은 부를 축적한 고려인 기업가들도 나타나고 있다. 고려인에게 주어진 상황은 지금도 어렵다. 하지만 고려인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슬기롭게 난관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그들을 도울 수 있다면 그들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 그 도움을 잘 활용하여 성공신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권희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경향신문  2007년 03월 01일 16: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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