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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1932년 4월 26일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거류민단 사무실. 25세의 열혈 청년 윤봉길 의사는 ‘한인애국단 선서식’을 가진 뒤 임시정부 국무위원이던 백범 김구 선생과 기념촬영을 마쳤다. 사흘 뒤인 29일 오전 11시40분. 윤 의사는 상하이 훙커우 공원(현 루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왕의 생일인 천장절 및 전승기념 축하식 단상에 수통형 폭탄을 투척해 일군 대장 등을 응징하는 의거를 단행했다. 그해 12월 19일 아침 총살형으로 순국하기까지 의사의 삶은 애국애족의 화신 그 자체였다.

윤 의사의 거사는 당시 우리 민족의 꺼져가는 조국 광복에의 신념에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중국인의 항일 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쾌거였다. 또 윤 의사 의거 후 중국인들이 한국 독립의 당위성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을 정도였으니 거사의 의의는 지대했다. 짧은 윤 의사의 생애이지만 만세 불후의 이름을 빛나게 한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의사의 기개는 조부와 부모의 근면성, 신의 존중 정신에서 영향 받은 바 컸다. 빼앗긴 내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없다는 신념도 여기에서 싹텄다. 윤 의사가 의거 전 고향에서 농촌부흥운동을 전개했고 이후 독립운동에 뛰어들면서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대장부는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신념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또 있다. 민족지도자 백범 선생과의 귀한 만남이다. ‘백범일지’에는 거사 당일의 모습이 이렇게 적혀 있다. “윤군은 식장을 향해 떠나는 자동차 안에 앉아 돈을 꺼내 나에게 건넸다. ‘자동차비 주고도 5, 6원은 남습니다’며. 나는 목이 멘 목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고 했더니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며 고개를 숙였다. 천하영웅 윤봉길을 싣고 자동차는 홍구공원으로 달렸다.”

윤 의사가 일본군에 연행되는 사건 당시 사진 속 인물이 윤 의사가 아니라는 의혹 제기에 따라 국내 교과서에서 삭제되면서 진위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윤 의사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에 흠이 가지 않도록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할 것이다.

황종택 논설위원

  세계일보 2007.02.2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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