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도본부는    · 시작페이지로    · 즐겨찾기    · 오시는길    · 메일보내기    · 사이트맵

2023년 09월 28일 목요일

내용검색  

약탈당한 문화재

세계마당

우리마당

재외동포

문화재

동북공정

순국선열

상고사

역사

  현재위치 > 독도본부 > 민족광장 > 순국선열 > 기사

 


헤이그 특사 파견 100년

한국, 초청국 명단에 12번째 올라… ‘불청객’ 아니었다



순국한 지 100년이 흘렀지만 헤이그에는 이준 열사의 흔적이 여전하다. 순국 당시 열사가 머물던 호텔은 기념관인 ‘이준평화박물관’으로 조성됐다.(왼쪽) 이준 열사의 유해는 헤이그 외곽의 한 묘지에 묻혀 있다가 1963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이 묘지에는 열사의 묘비와 흉상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헤이그=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100년이 지났지만 헤이그 특사 사건은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은 ‘미제(未濟) 사건’이다. 한국 대표단이 문전박대를 당한 이유가 관련 사료 부족으로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당시 헤이그에서 한국 대표단의 활동에 관여한 인물들도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은 무엇인지 되짚어 본다.》

 

▽한국 12번째 초청국=만국평화회의 사무국이 한국 대표단의 입장을 거부한 것은 ‘초청국’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헤이그의 열사기념관에 설립된 이준아카데미가 1993년 찾아낸 ‘초청국 명단’에는 한국(Cor´ee)이 12번째 국가로 기록돼 있다. 프랑스어로 기록된 이 문서에서 알파벳 순서에 따라 명단의 마지막 국가는 ‘47번 베네수엘라’였다.

 만국평화회의 의장도 1907년 6월 15일 개회사를 하면서 ‘47개국 대표가 헤이그에 모였다’고 말했다. 한국을 정식 초청국으로 인정했다는 뜻으로 보인다.

 문제는 주최국인 네덜란드 측이 발송한 정식 초청장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기항 이준아카데미 원장은 “네덜란드 국립문서보관소를 뒤져 초청장이나 관련 문서를 찾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들=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던 열사들이 한국의 처지를 그나마 알릴 수 있었던 것은 영국 언론인 윌리엄 스티드의 적극적인 도움 덕분이었다.

 ‘만국평화회의보’의 편집인이었던 스티드는 한국 대표단의 호소문을 상세히 소개해 대표단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또한 한국 대표들을 위해 기자클럽 연설회를 주선했다.

 스티드는 인도주의 활동을 위해 1912년 4월 미국행 배에 몸을 실었다가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최후를 맞았다. 그가 탄 배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유명한 ‘타이타닉’호였다.

 알프레드 노벨이 평화상을 제정하는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귀족 베르타 폰 주트너 여사도 한국 대표단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유명 언론인이었던 주트너 여사는 한국 대표단의 연설회에 참석한 뒤 “한국 문제를 중재재판소로 가져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 나아가 국제군을 창설해 일본에 군사적인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종 황제의 외교 고문으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도 당시 헤이그에 있었다. 그는 한국 대표단이 무사히 헤이그에 도착할 수 있도록 서슬 퍼런 일제의 눈초리를 자신에게 붙들어 놓는 나름의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준 열사의 최후 모습=열사의 최후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위종 열사가 뒤늦게 전해 듣고 언론에 밝힌 최후 모습만이 기록으로 전해 올 뿐이다.

 “몇 시간 동안 그는 의식을 잃은 듯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내 조국을 구해 주십시오. 일본이 대한제국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이게 그의 마지막 말입니다.”

 네덜란드에서 1966년 발간된 한 백과사전은 ‘이준은 평화회의 참석이 거부되자 자결했다’고 기록했으나 이를 뒷받침할 사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단식 끝에 순절했다는 설, 종기를 수술하다 세균 감염으로 사망했다는 설도 모두 확인되지 않은 풍문에 그쳤다.

 1962년 동아일보 정연권(78·전 동아일보 이사) 기자도 열사의 최후를 추적하기 위해 헤이그를 찾았다. 정 전 이사는 “열사가 묻힌 공동묘지에 갔을 때 50년 넘게 이역 하늘을 떠돌고 있을 한 맺힌 넋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의 노력을 유심히 지켜본 네덜란드의 한 작가는 이 사건에 호기심을 품게 됐고 수년간 연구 끝에 ‘1907년 헤이그에서 한 한국인의 비극’이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은 1978년에 발간된 네덜란드 연감에 실렸다.

 교민 이기항, 송창주 씨 부부는 이 글을 본 뒤 이준 열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들은 열사가 최후를 맞은 드용호텔이 1995년 재개발로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헤이그 시에 유적지 보존에 관한 청원서를 제출한 뒤 사재를 털어 건물을 사고 기념관을 설립했다.

▽국내외 기념행사들=이준 열사가 순국한 7월 14일을 전후로 100주기 기념행사가 풍성하다. 헤이그에서는 이준열사기념관 주최로 14일 기념식이 열리며 같은 날 오전 헤이그 인근 레이트센담에서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이준 열사 기념교회를 봉헌한다.

 본보가 주최하는 ‘열사의 길을 따라서’ 현지답사는 6월 25일 서울을 출발해 부산∼블라디보스토크∼이르쿠츠크∼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베를린∼브뤼셀을 거쳐 7월 13일 헤이그에 도착하는 대장정이다.

 또한 본보는 헤이그 현지를 찾는 대학생 500명(선착순)에게 배낭여행 비용을 지원하는 ‘유럽의 하늘에서 조국을 바라보자’ 프로그램 참가자를 3월 중 모집할 예정이다. 7월 13∼15일에는 헤이그 현지에서 학술심포지엄, 한국무용공연, 미술전 등 행사를 진행한다.

 국내에서도 7월 14일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주최로 서울 강북구 수유동 이준 열사 묘소에서 순국100주년 기념식이 열리며 역사자료전 등이 개최될 예정이다.

 ▼“정의를 찾아왔건만 여기도 정의란 없단 말인가”▼

1907년 고종황제의 밀명을 품고 서울을 떠난 이준 열사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상설 열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위종 열사와 각각 합류한 뒤 시베리아를 횡단해 독일 베를린, 벨기에 브뤼셀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이르는 장구한 여정에 올랐다.

당시 만국평화회의는 6월 15일부터 10월 18일까지 열렸다.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한 3명의 특사는 일제의 방해로 회의 참석조차 할 수 없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27일 다시 회의장을 찾아 ‘독립 호소문’을 각국 대표에게 배포했다.

 마침내 현지 언론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만국평화회의보’는 6월 30일자에서 ‘왜 한국을 제외시키는가’라는 제목으로 호소문 내용을 전했다. 7월 5일자에서는 열사들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다음은 당시 보도된 일문일답.

 ―여기서 무얼 하나. 왜 딱한 모습으로 나타나 모임의 평온을 깨뜨리나.

 “법과 정의 그리고 평화의 신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먼 나라에서 왔다.”

 ―무슨 말을 하고 싶나.

 “우리는 이 조약(을사늑약)이 국제법상 유효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요청하고자 한다. 일본은 우리를 식민 상태로 몰아넣고서 우리의 독립을 존중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그렇다면 이 세상에 정의란 없다는 얘기인가, 여기 헤이그에서조차도….”

 열사들은 7월 8일 국제기자클럽에 초청받았고, 외국어에 능통한 이위종 열사가 ‘한국의 호소’라는 주제로 열변을 토했다.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온 대표의 연설에 각국 언론은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인도네시아의 로코모티브지 기자는 “서명을 해서 한국을 지지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던 중 7월 14일 드용 호텔에서 이준 열사가 순국하는 비극이 발생하고 만다. 이준 열사의 시신 운구를 위해서는 당시 일본 영사의 허가가 필요했지만 일본 영사는 끝내 허가증에 사인해 주지 않았다. 일행은 할 수 없이 9월 5일 장례식을 치르고 이준 열사를 차가운 이국땅에 묻었다.

 헤이그=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동아일보 2007.02.17 03:00

 
관련
내용
관련내용이 없습니다

 

 

| 개 요 | 이 책은 2008년도에 일본 중의원에서 독도문제와 ...

 

 
  Copyright ⓒ 2001.독도본부. All rights reserved
전화 02-747-3588 전송 02-738-2050 ⓔ-Mail : dokdo2058@korea.com
후원 : 기업은행 024-047973-01-019(독도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