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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妃 인원왕후의 한글문집 3권 발견



‘션군유사’ ‘션비유사’ ‘륙아뉵장’의 표지.

‘이렇게 귀한 음식을 어찌 천한 입으로 먹겠습니까.’

 왕비 앞에 납작 엎드린 아버지는 딸이 내린 다과를 받고도 뒷걸음질을 쳤다. 사위인 임금이 내린 음식에 대해서는 더 어려워해 왕비는 ‘마시며 씹으시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18세기 조선의 왕비가 입궁 후 친정 부모와의 관계를 세밀히 기록한 한글 문집 세 권이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하영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는 2006년 5월 충북 충주의 골동품 사업가 이병창 씨에게서 입수한 세 권의 문집을 검토한 결과 문집의 필자가 조선 제19대 왕 숙종(재위기간 1674∼1720)의 세 번째 정비(正妃)인 인원왕후 김씨(1687∼1757)로 확인됐다고 8일 밝혔다.

 이들 문집은 조선시대 왕실 문화 및 18세기 국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특히 왕비와 왕비 부모의 일상과 내면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조선시대 궁중 문화를 좀 더 체계적이고 완벽하게 복원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처음엔 후대의 필사본일 것으로 생각했으나 꼼꼼하게 확인 검토한 결과 자료의 제본 형태나 배접 방식의 우아함, 정갈한 궁서체(궁중 여인들이 한글을 쓸 때 사용한 글씨체)와 문장 등에서 왕후가 직접 지은 글로 귀중하게 보관되어 왔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신병주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는 “왕비들의 한글 기록은 그 수가 적어 사료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왕실 여인들의 한글 문집은 선조 비였던 인목대비의 ‘계축일기’와 사도세자 비였던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정도만이 알려져 있다.

 이번에 발견된 자료는 인원왕후가 1702년 숙종의 비가 된 뒤 친부모와의 관계를 구구절절 기록한 14쪽 분량의 ‘션군유사(선군유사·先君遺事)’와 17쪽 분량의 ‘션비유사(선비유사·先비遺事)’, 자신이 즐겨 읽던 문학작품을 모은 39쪽 분량의 ‘륙아뉵장’ 등 총 세 권이다.

‘션군유사’에 따르면 “부친께서는 궁궐에 출입할 때마다 항상 조심하고 근신하여 다만 몸을 굽혀 목화부리(나막신 앞의 뾰족한 부분)만 보시고 눈을 굴려 곁으로 보시는 일이 없었다”고 묘사되는 등 당시 궁중 법도의 엄격함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정 교수는 “인원왕후의 문집에는 궁중 출입을 하던 왕비 부모의 행적과 왕비와 나눈 대화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당시 궁중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다”며 “그뿐만 아니라 순수 한글 기록인 만큼 18세기 국어 연구 및 궁중 언어 연구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자료의 검토 작업에 참여했던 유림단체 박약회의 서수용 사무총장은 “글 내용이 인원왕후의 생애와 부합하고 ‘내가 어렸을 때’ 등 1인칭의 회상조의 문장이라는 점, 생부 김주신의 행적이 조선왕조실록의 ‘국구김주신졸기(國舅金柱臣卒記)’와 일치하는 점 등을 볼 때 왕후 자신이 직접 서술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인원왕후 문집에 대한 연구논문을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소가 이달 말 발간하는 ‘한국문화연구’ 제12호를 통해 학계에 발표할 예정이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동아일보 2007.02.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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