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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영동리 고분서 신라·백제 토기 함께 출토


AD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자 신라는 백제를 도우려 1만명의 군사를 파견한다. 그러나 백제 수도 한성은 함락됐고, 백제는 천도한다. 그러자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 남진에 대처하기 위해 결혼동맹을 맺는다.

493년이다. 삼국사기는 “동성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니 신라 소지왕은 이찬 비지(比智)의 딸을 시집보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혼동맹은 곧바로 효력을 발휘했다. “1년 뒤 신라가 살수전투에서 고구려에 패하자 백제가 3000명을 보내 포위를 풀었다”(삼국사기)는 기록이 있으니까, 이 동맹은 약 60년간이나 지속됐다.

이 백제·신라간 굳건한 결혼동맹을 알려주는 유물이 전남 나주 영동리에서 나왔다.

영동리 고분군을 발굴 중인 동신대박물관은 22일 “왕관 26기, 석실묘 8기, 석관 3기 등 37기의 무덤(매장주체부)이 확인됐다”면서 “특히 4호 석실분에서는 전형적인 신라토기 5점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신라토기는 모두 덮개(蓋杯)였으며, 그 가운데 4점은 세발토기(三足器) 등 백제토기 30여점과 함께 출토됐다. 또한 고대 영산강 재지세력의 토기들도 함께 나왔다.

영산강 유역에서는 1996년 나주 복암리 고분에서도 신라계 유물인 재갈과 행엽 등이 확인된 바 있다. 학계에서는 이 유물을 근거로 고대 영산강 세력과 신라의 관계를 짐작했지만, 후속 유물들이 나오지 않아 연구는 답보상태였다.

이정호 교수는 “이 토기들은 신라에서 직접 들여온 것”이라며 “당대 고구려와 백제(영산강 세력 포함), 신라 간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외에도 석곽 한 곳에서만 7명의 인골이 한꺼번에 출토되는 등 30여기의 무덤이 이번에 추가로 확인됐다. 순장(殉葬) 등 특수한 매장습관을 제외하고 무덤 한곳에서 이렇게 많은 인골이 드러나기는 극히 드물다.

〈이기환 선임기자〉 경향신문  2007년 02월 22일 18: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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