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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한국역사 - 4. 임나일본부설의 허구<上>


일본의 신공황후가 신라 ‘정벌’을 위해 한반도에 발을 내딛는 장면을 형상화한 일본 메이지 시대 상상도. ‘정한론’의 모티브를 제공한 이 신공황후의 실존 모델로 추정되는 야마토 소국의 히미코 여왕은 무당 내지 신녀였다는 점에서 이는 철저히 후대 가공의 산물이다.

《일본이 한국역사를 극심하게 왜곡 날조한 식민주의 사관의 하나에 소위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이 있다. 일본의 ‘야마토(邪馬壹 또는 大和)’ 고대 왕국의 신공황후(神功皇后)가 3세기 중엽 신라를 ‘정벌’하여 신라왕의 항복을 받았으며, 4∼6세기에 야마토 왕국이 한반도의 낙동강과 섬진강 사이 6가라(加羅)를 정복하여 임나일본부라는 일종의 총독부를 두고 직할 식민지로 약 200년간 통치했다는 것이다. 백제와 신라도 임나일본부를 통해 야마토 왕국에 신복(臣服)하여 조공을 바쳤으며, 고구려도 임나일본부에 조공을 바쳤다는 것이다. 일제는 19세기 말 한국을 침략할 때 임나일본부설을 침략도구로 사용했다. 즉,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점령하려는 것은 4∼6세기의 식민지 구강토를 복구하려는 것이라고 일본 국민의 한국 침략 정신교육에 임나일본부설을 사용했다. 그러나 당대의 사료를 보면 역사적 진실은 임나일본부설과 정반대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변진조에 보면 변진12국이 등장한다. 이 가운데 변진미오야마국(弁辰彌烏邪馬國)은 지금의 경북 고령지방에 있던 변한의 소왕국이었다. 이 명칭에서 변진은 변한·진한의 합성어이고, 미오야마는 고대변진어이다. 미오는 왕족계통의 뜻이고 야마는 부족명이었다. 필자는 변한 12개국이 6가라로 개편된 시기에 변진미오야마국의 야마족 일부가 일본열도에 건너가 세운 소왕국이 야마토 소왕국이라고 본다.

 한국역사에서는 변한 12개국이 6가라로 개편된 원인과 과정을 밝히지 못했다. 그런데 부여족의 이동 경로를 보면 일부가 남하해 고구려를 건국하고 다시 백제를 건국한 다음 다른 한 부여족 군단이 육로로 죽령·조령을 넘어 낙동강과 섬진강 사이로 남하해서 변한 12국을 정복 흡수 융합하여 최고 귀족장군들과 왕족이 6가라를 건국한 흔적이 보인다.

 이때 선발대가 이른바 김수로(金首露)이며 그가 건국한 가라가 금관가라(金官加羅)다. 부여의 최고 귀족장인 가(加)들은 각각 5개 가라의 나라를 세우고 부여왕족은 미오야마국 자리에 임나(任那)를 세워 6가라연맹이 수립됐다. 이때 임나는 ‘임금나라’의 뜻임을 이미 일제의 학자들도 밝힌 바 있다. 가라는 ‘가(부여의 최고 귀족장 호칭)의 나라’라는 뜻의 보통명사이고 그 앞에 붙이는 호칭이 나라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변한 12개국이 6가라로 개편될 때 변한 12개국 지배세력은 일부가 투항하여 정복자에게 융합됐으나 일부는 그 후 새 정착지를 찾아 일본열도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 왜인전에 변한 12개국과 이름이 동일한 야마토국(耶馬壹國), 구야국(狗倻國), 안야국(安邪國), 구노국(狗奴國 또는 樂奴國) 등 4개 나라 이름이 나온다. 일본열도의 이 4소왕국은 6가라 수립 직후 변한 12개국의 일부가 일본열도에 건너가 수립한 분국들인 것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야마토국을 변한미오야마국의 야마족이 일본열도에 건너가 세운 것이라고 설명할 때, 여기서 ‘야마’는 부족 이름이고 ‘토’는 ‘또’로 ‘땅’의 뜻으로 해석한다. 한국 고대어에서 ‘땅’은 ‘ㅱ’나 ‘ㅱ’이다. ‘따’와 ‘또’는 호환된다. 야마토는 ‘야마족의 땅(the Land of Yama)’이란 뜻이다. 고조선문명권에서는 이주민족이 새 정착지에서 대체로 자기 부족 다음에 땅을 붙여 나라 이름을 만드는 관습이 있었다. 훈족이 ‘훈의 땅’이라는 뜻으로 헝가리(Hungary)를, 불가족이 ‘불가족의 땅’이라는 뜻으로 불가리아(Bulgaria)를 쓰듯 야마는 ‘높은 산(高山)’ ‘산’ ‘동산’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미오야마국’ 자리에 교체 수립된 6가라의 하나인 임나를 그 후 일본열도에 이주해 수립된 ‘야마토’에서 계속 ‘미마나’로 훈독한 것은 임나의 한문자 훈독이 아니라 ‘미오야마나’(‘나’는 ‘국’의 고대 한국어)의 준말 훈독으로 봐야 한다. 이 역시 ‘야마토’의 기원이 한반도 변한 ‘미오야마국’이었음을 보조적으로 증명해 준다. 결국 일본의 민족과 국가의 기원이라고 하는 ‘야마토’의 기원이 한반도 변한의 ‘미오야마국’이다.

 ‘삼국지’ 왜인전은 야마토 소왕국에 대해 이례적으로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이 사료는 야마토에 대해 ‘이 나라도 본래 역시 남자가 왕이 되었으나 정착한 지 70∼80년간 서로 싸우기를 여러 해 했다. 마침내 한 여자를 함께 세워 왕을 삼으니, 이름이 히미코(卑彌呼)다’라고 기록했다.

 

이 야마토 소왕국이 그 후 발전하여 일본 고대국가를 수립했고, 히미코는 일본 최초의 여왕이며 후에 ‘신공황후’의 원형이 된 여왕이다.

 삼국지 왜인전에 의하면 히미코는 귀도(鬼道)를 섬기고 뭇사람을 혹하는 데 능했다. 즉, 무녀(巫女)였다. 나이가 들어도 남편을 취하지 않았다. 남동생이 있어 치국을 보좌했다. 여왕이 된 후에는 사람들 앞에 잘 나타나지 않고 여종 1000여 명으로 시종 들게 했다. 남자는 오직 한 사람이 음식을 공급하고 명령 전달을 위해 출입하게 했다.

 필자는 히미코는 부여족계 왕족 여성이라고 본다. 이름에서 ‘히’는 ‘해’의 일본식 발음이다. ‘미’는 왕족계보를 나타내고 ‘코’는 ‘자녀’이다. 부여의 왕족은 ‘해’씨였다. 백제의 왕족은 ‘부여’씨였고 ‘해’씨는 백제의 상층 귀족이었다.

 부여족 일단이 변한에 내려와 정복 합성해서 6가라를 수립하고 그 후 미오야마국 일부가 일본열도에 들어와 야마토 소왕국을 건설했는데 처음 남성 왕의 70∼80년 통치를 거친 후에 무장들의 합의로 부여 왕족 여성 히미코를 여왕에 추대한 것으로 해석된다.

 ‘삼국지’ 왜인전에 의하면 히미코는 서기 238년 대방군(帶方郡) 태수에게 사절을 보내 중국 위나라 황제에게 공물을 바치고 ‘친위왜왕(親魏倭王)’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때부터 야마토는 ‘야마토 왜(倭)’라고 불리면서 일본열도 안 약 30개 소왕국 가운데서 무력은 약하지만 중국의 공인을 받은 대표적 ‘왜’로서 행세했다.

 야마토의 히미코 여왕은 247년에는 일본열도 안의 구노국이 ‘야마토’를 무력 정복하려 위협하므로 급히 사절을 대방군에 보내 도움을 청했다. 위 황제는 사절 장정(張政) 일행과 조서 및 황당(黃幢·관군의 깃발)을 보냈다. 야마토는 이 조서와 황당으로 배후에 강국인 위나라가 있음을 과시해 위기를 면했다.

히미코가 248년에 죽자 무덤을 큰 규모로 쓰고 남자 왕을 세웠다. 그러나 나라 안이 불복해 다시 내란이 시작되고 1000여 명이 죽었다. 이에 히미코의 종친인 13세의 이요(壹與) 또는 다이요(臺與)를 여왕으로 세워 나라를 안정시켰다. 위나라 사절 장정은 이때까지 체류하면서 이요에게 통치술을 가르치다 돌아갔다.

 삼국지 왜인전은 위나라 사절 장정 일행이 직접 야마토에 와서 수년간 체류하며 직접 관찰한 것들을 자료로 했기 때문에 상세하고 정확함을 일본 학자들도 인정하는 사료이다. 그런데 이 사료에 히미코 여왕이나 이요 여왕의 치적 어디에도 한반도 남부를 침공 점령했거나 신라를 ‘정벌’하여 신라왕의 항복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야마토 소왕국은 이웃 구노국의 침입도 막아내기 어려울 만큼 무력이 약했으므로 신라 정벌을 실행할 여지도 없는 약소국이었다.

 400여 년이 흘러 야마토왕국이 강성해져서 일본을 통일한 후 역사 정립이 필요하게 되자 서기 712년에 ‘고사기(古事記)’를 찬하여 역대왕의 계보를 체계화하고 8년 후인 720년에 ‘일본서기(日本書紀)’를 편찬하여 그 내용을 보강했다.

 이때 고사기에서 야마토의 초대 남자 왕을 ‘신무(神武)’ 천황으로 시기를 끌어 올려 높이고 히미코와 이요 여왕에 해당되는 자리에 신공황후라는 섭정 황후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양심적인 일본 학자들은 신무부터 제9대 ‘개화(開化)’까지는 가상의 천황이라고 실재를 부정하고 있다.

 그런데 고사기와 일본서기 신공기 49년(서기 249년)에 신공황후가 직접 배를 타고 물고기의 도움을 받으며 신라에 도착하니 신라왕이 싸울 엄두도 못 내고 스스로 몸을 결박하여 항복하므로 신라를 ‘정벌’해서 신라왕을 말먹이꾼으로 정했으며, 이 소식을 듣고 고구려왕과 백제왕이 신공황후를 찾아와서 야마토의 서번(西藩)이 되고 영구히 조공을 그치지 않겠다고 하므로 내관가둔창(內官家屯倉)으로 정했는데 이것이 삼한(三韓)이라는 것이요, 해마다 신라왕이 80척 배의 조공을 일본국에 바치는 것이 이러한 연유라고 기록돼 있다.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벌’했다는 서기 249년은 히미코가 죽은 248년의 다음 해이고 이요의 제1년이다. 위나라 사절이 야마토를 떠나기 직전이다. 만일 이 엄청난 사건이 사실이라면 위나라 사절이 본국에 보고했을 것이고 왜인전에 기록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그러면 왜 고사기와 일본서기 편찬자는 이러한 역사날조를 자행했을까? 혹시라도 일본에 근거자료가 있었을까? 일본서기의 이 부분을 필자가 글자를 낱낱이 캐 보며 읽다가 깨달은 것이 있다. 일본서기 신공황후기는 히미코를 기리는 일본 8세기 초 무녀(巫女)의 본풀이(서사무가)라는 것이다. 문장 구성과 표현, 그리고 황당한 내용 구성이 무당의 전형적인 본풀이 그대로다. 역사적 사실이 아님은 명백하다. 더 연구해 볼 일이다.

 신용하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동아일보 2007.04.2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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