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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帥) 깃발

미국의 아시아함대 사령관 J 로저스는 마침내 공격명령을 내렸다. 1871년 4월3일 콜로라도호 등 호위함 3척에 병사 1230명을 태우고 강화도 앞 물류도에서 틈을 살핀 지 20일만이었다. 450명의 미 해군이 강화도의 초지진에 상륙한 뒤 덕진진까지 밀고들어왔다. 그 이튿날인 4월 24일 미군은 결사항전의 깃발을 올리고 있던 광성진 공략에 나섰다. 2시간 포탄이 비오듯했다. 미국과 조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력충돌한 신미양요(辛未洋擾)는 포과 총 대 칼과 창의 대결이었다. 공식 사망자수는 우리측 53명, 미군측 3명이다.

우리측 사망 53명은 시신이 수습된 것만 따진 것일 뿐, 광성진을 지키던 350여명이 몰살했다. 수비대장 어재연과 그의 동생으로 백의종군했던 어재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전투에 참가했던 미 슐레이 대령은 “조선군은 용감했다. 그들은 항복같은 건 아예 몰랐다. 무기를 잃은 자들은 돌과 흙을 집어 던졌다”고 증언했다. 어재연 장군은 칼이 부러지자 납으로 된 총알을 손으로 던졌다고 한다. 끝내 어장군은 목이 잘렸지만 아내가 매어준 상투 조리개로 그나마 시신을 수습했다. 동생도 버선을 뒤집어 신고 출전하는 바람에 시신의 일부나마 찾을 수 있었다. 광성진의 쌍충비각은 이 형제를 기린 것이다.

미국 해군사관학교박물관에 신미양요때 미군이 전리품으로 빼앗아간 조선 군기가 소장, 전시되어 있다. ‘수(帥)’자가 적혀 있는 가로 세로 4.5m의 이 대형 깃발은 어재연 장군의 깃발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이 이 깃발의 반환을 추진중이라고 한다. 미국 한 상원의원은 북한에 억류중인 미 푸에블로호 반환을 위해 이 깃발을 돌려주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해사박물관측은 반환은 힘들어도 장기 대여는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旗)는 예나 지금이나 군이든 민간이든 지휘권을 상징한다. 중국 주(周)나라에선 왕실기에 왕권의 모든 속성을 부여해 기수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될 정도였다. 지금도 서양군대는 대원의 충성서약을 부대기에 입맞춤으로 대신한다. 전투에서 기를 잃는 것은 패배를 뜻한다. 깃발이 돌아온다고 광성진 수군들의 원혼이 달래지는 것은 아니다. 깃발 반환보다 역사를 곱씹는 게 더 필요한 일인 듯 싶다.

〈유병선 논설위원〉 경향신문  2007년 05월 07일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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