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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항일르포 - 上 조국독립 '피의결의' 들리는 듯

의거준비서 결행까지 자취
 차이자거우역 우덕순, 조도선 2명이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준비했던 차이자거우역. 이들이 거사하기 전 발각돼 갇혀 있던 역 지하실은 아무런 관리 없이 방치돼 있다. 차이자거우=유덕영 기자
오는 10월 29일이면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의거 98주년이 된다. 본지와 ‘안중근의사숭모회’는 지난달 12일부터 9박10일 일정으로 안 의사의 중국과 러시아 일대 항일 유적지를 찾았다. 안 의사 항일운동 유적지 답사를 두 차례에 걸쳐 르포로 싣는다.

 

대학생 29명과 함께한 탐방단은 안 의사가 1900년대 초 러시아와 중국을 넘나들며 대일 투쟁을 했던 곳과 의거 현장, 순국한 뤼순감옥 등 안 의사의 항일운동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갔다. 러시아 자루비노항을 통해 크라스키노,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중국의 훈춘, 하얼빈, 뤼순 등으로 이어지는 대장정이었다.

강원 속초에서 뱃길로 20시간 가까이 달려 러시아에 도착한 탐방단의 첫 목적지는 크라스키노 지역의 니즈네예 얀치헤(연추하리). 이곳은 한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곳으로, 안 의사와 동지들도 이 마을을 본거지로 국내 진공 작전 등 독립투쟁을 벌였다.

특히 안 의사는 1909년 3월 김기용, 백규삼 등 동지 11명과 함께 왼손 넷째손가락 한 마디를 끊어 조국의 국권 회복 의지를 다졌다. 안 의사는 이들과 ‘단지동맹’을 맺은 뒤 태극기에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 쓴 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탐방단은 단지동맹의 현장을 찾으려 했지만 이미 마을이 없어진 데다 수풀로 덮여 있어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길가에서 대강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은 2001년 안 의사 등의 조국독립 결의를 기리는 ‘단지동맹비’를 마을 입구 주카노보 다리 아래쪽에 세웠다. 하지만 탐방팀이 확인했더니 비는 훼손이 심하고 관리가 어려워져 지난 6월 이 마을에 있는 한국계 기업의 농장 정문 맞은편의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현지 가이드는 “동네 아이들이 던진 돌에 맞아 비석이 많이 손상됐고, 다리 아래쪽 저지대에 설치돼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기도 해 현 위치로 옮겨졌다”고 설명했다.

탐방단원 이세영(22·여·성균관대 3학년)씨는 “단지동맹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없고, 비석마저 많이 상해 안타깝다”면서 “하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손가락까지 잘랐던 안 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결의가 느껴져 숙연해진다”고 말했다.

탐방단은 이어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한인들이 1937년 현재의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모여 살았다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 기념탑과 러시아·중국·북한이 맞닿아 있어 안 의사가 독립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발판이 됐다는 방천 지역을 거쳐 중국 훈춘의 취안허(圈河)촌 초가를 찾았다.

安의사 유묵비 하얼빈공원(지금의 자오린공원)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의 유묵비. 안 의사가 직접 쓴 ‘청초당(靑草塘)’ ‘연지(硯池)’라는 글귀가 앞 뒷면에 각각 새겨져 있다. 하얼빈=유덕영 기자

취안허촌 초가는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하기 1년 전인 1908년 4∼6월경 머물며 독립운동을 구상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초가는 방 하나에 마루와 부엌이 연결돼 있는 작은 집이었고, 마루에는 안 의사의 영정이 걸려 있는 것이 전부일 정도로 초라했다.

탐방단은 이후 안 의사가 의거를 앞두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던 제홍교, 하얼빈공원(현 자오린공원)과 차이자거우(蔡家溝)역 등을 차례로 찾았다.

제홍교는 하얼빈역에서 불과 200∼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에 서니 하얼빈역 플랫폼이 한눈에 들어왔다. 제홍교는 안 의사가 하얼빈역을 바라보며 거사를 구상했던 곳이지만 1926년 다리가 새로 건설돼 당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안 의사가 거사를 앞두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거닐었다는 하얼빈공원(현 자오린공원) 한켠에는 ‘청초당(靑草塘)’과 ‘연지(硯池)’라고 안 의사가 옥중에서 쓴 글을 새긴 유묵비가 지난해 들어섰다.

이어 탐방단은 하얼빈에서 차로 2시간 남짓 걸리는 차이자거우역을 찾았다. 이 역은 이토가 탄 열차가 이역을 지난다는 정보에 따라 안 의사와 우덕순, 조도선 3명이 거사를 준비했던 곳이다. 당시 안 의사는 확실한 의거를 위해 하얼빈에서 준비하기로 하고, 두 사람이 여기서 이토를 노렸다.

주민들에게 물어 찾아갔지만 역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안 의사와 함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계획했던 우덕순, 조도선 2명이 갇혀 있던 지하실은 입구가역 앞에 있어 볼 수 있었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크라스키노·훈춘·하얼빈· 차이자거우=유덕영 기자  firedy@segye.com 세계일보 2007.08.05(일)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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