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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독립운동 현장 가보니… 흔적 없는 항일유적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던 중국 만주지역의 독립운동 유적지가 대부분 방치되거나 훼손이 심각해 복원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광복 62주년을 맞아 지난달 초 이 지역을 답사한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14일 유적지 폐허 사실을 공개한 뒤 기존 기념비마저 보존 상태가 엉망이라고 밝혔다.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장 연구위원에 따르면 중국 랴오닝(遙寧)성 신빈(新賓)현 왕칭먼(旺淸門) 조선혁명군 주둔지는 이후 조선족 소학교가 됐지만 학교는 폐교되고 건물이 허물어져 야적장으로 변했다. 조선혁명군은 1929∼38년 사이 일본 군대와 치열한 교전을 벌였던 민족주의 계열 독립군부대로, 남만주지역 독립운동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조선족(재중 동포)들이 대도시로 떠나 학생 수가 급감하자 폐교와 동시에 부지마저 곧 압류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으로 1930년대 한중연합 항일투쟁을 이끌었던 양세봉(1896∼1934) 장군을 기려 중국인과 조선족들이 공동으로 교내에 건립했던 흉상은 갈 곳이 없는 처지가 됐다.


지린(吉林)성 류허(柳河)현 싼위안푸(三源浦)에 이회영(1867∼1932) 선생 등이 세운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 자리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장 연구위원은 “중국인들이 살고 있는 집과 주변 텃밭만이 독립군들이 머물렀던 곳을 지키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린성 화룽(和龍)현 청산리임업장 입구에 세워진 청산리대첩 기념비는 훼손이 심각하다는 전언이다. 2001년 8월 세워진 기념비는 관리가 전혀 안 돼 왼쪽 벽면과 글씨가 떨어져 나가고 계단 축대가 무너지는 등 상태가 엉망이라고 한다. 인근의 서일(1881∼1921), 나철(1863∼1916), 김교헌(1868∼1923) 대종교 삼종사 묘도 훼손이 심각하다고 장 연구위원은 전했다. 봉분이 허물어져 대충 마대로 덮어놓은 게 전부라고 한다.


장 연구위원은 만주지역 독립유적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원인을 세 가지로 꼽았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들이 대도시로 이전해 조선족 마을이 한족 마을로 변해 유적지가 사라지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청산리전투의 현장인 지린성 왕칭(汪淸)현 다칸쯔촌(大坎子村) 조선족 마을에는 이제 조선족이 남아 있지 않다.


중국 정부의 사회주의 계열이 아닌 민족주의 계열 독립유적지에 대한 경계심도 유적지 보존을 어렵게 한 이유다. 중국 공산당원으로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장 양정우(1905∼1940)의 기념공원 조성이나, 김일성이 다닌 지린성 위원(毓文)중학교의 거대한 김일성 전신상 건립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임시정부 법통론을 중시하는 우리 정부의 외면도 원인 중 하나다. 현재 중국에는 상하이, 충칭(重慶), 류저우(柳州)에 임시정부기념관이 있고 조만간 항저우(杭州)에도 임정기념관이 건립될 예정이지만 만주지역에는 제대로 된 기념관이 없다.
장 연구위원은 “만주지역은 광복 직전 한국인이 200여만명이나 거주할 정도로 독립운동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철저히 버림받고 있다”며 “조선혁명군이 주둔했던 소학교에는 양세봉 장군의 흉상이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부지를 매입해 기념관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장원주 기자  strum@segye.com 2007년 08월 15일 (수) 07:49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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