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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이 테러리스트”라니?

최근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주석 백범 김구선생의 노선에 대한 왜곡과 오해가 너무 심하다.

백범은 1940년 3월 1일 국내외 동포를 향하여 임시정부의 노선을 ‘한국독립운동의 근본적 의미는 일본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동아시아 평화를 수호하며, 독립·자유·평등의 신한국을 세워 대동세계를 만드는 데 있다’고 천명하였다. 백범은 ‘나는 진정한 세계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실현되기를 원한다’고 설파하였다. 임시정부 주석 백범은 진정한 세계평화주의자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광복군과 특공대를 편성해 작전한 것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무력 침략하여 강점했기 때문에 이를 몰아내고 자유 독립을 실현하기 위한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손문의 중화민국 호법정부, 레닌의 노농정부, 폴란드의 망명정부, 핀란드의 망명정부, 드골의 프랑스 망명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한 것이다.

백범이 1932년 ‘한인애국단’을 편성해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를 일으킨 것을 놓고 ‘테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망발이다. 일본침략군이 1932년 1월 28일 병력 10만과 비행기 100여대로 상해를 침략하여 점령해 버린 ‘상해사변’이 있었다. 프랑스 조계 안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침략군에게 포위돼 버렸다.

임시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특공대’를 편성해 난국을 타개하기로 결의하고 특공대 단장으로 백범을 지명 의결했다. 백범은 특공대 ‘한인애국단’을 편성하고, 단원 윤봉길을 보내 1932년 4월 29일 상해점령 일본군 사령관 시라가와 대장 등 군·정 수뇌 7명을 섬멸해 버렸다. 이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 일본제국의 특공대 전투였다.

이것을 일제는 ‘테러’라고 규정했을까? 그렇지 않다. 일본 육군성 비밀자료에 의하면, 윤 의사의 시라가와 사령관 폭사에 대해 만주에서의 “조선독립을 위한 편의대(便衣隊: 민간복장의 유격특공대)의 공격과 동일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임시정부의 특공작전임을 명확히 했다. 따라서 시라가와의 죽음을 ‘공무 사망’이 아니라 ‘전사(戰死)’로 규정했다.

일제가 군사력으로 남의 나라를 침략 점령하고 주권을 빼앗았으므로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싸운 광복군과 특공대 활동에 대해 ‘테러’ 운운하는 것은 전혀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왜곡이고 오해이다.

백범과 임시정부의 활동은 건국준비와 외교에 집중되어 있었다. 예컨대, 1941년 카이로 선언에서 약소민족들 가운데서 오직 “한국의 독립”만 연합국 수뇌들이 약속 보장한 것은 백범과 임시정부가 쟁취한 외교 성과였다.

또한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의정원(국회)에서 1941년 11월 채택케 하여 광복 후 즉각 ‘대한민국 건국’을 준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의 대한민국 건국강령과 임시정부 헌법은 1948년 7월의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 매우 많이 반영되어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되었다. 지금도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에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4·19혁명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임시정부 주석 백범은 모든 것을 조국과 겨레에 바쳐 희생한 근대 한국 최고의 애국자이고 큰 스승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탄생의 부모와 같은 독립운동 최고기관이었다. 백범과 임시정부를 더 이상 모독해선 안 된다.

신용하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조선일보  2007.08.0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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