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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1907년 조선에 사는 일본인들 사이에 “경주 토함산 동쪽에서 큰 석불(石佛)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산속 석굴 안에 있는 불상을 우연히 본 우체부가 일본인 우체국장에게 말한 것이 퍼져 나간 것이다. 전국의 도굴꾼이 토함산으로 몰려왔다. 석불 주위 감실(龕室)의 불상 10개 중 2개가 사라졌다. 소네 통감이 다녀간 뒤 석불 뒤 작은 5층 석탑도 없어졌다. 1100년을 평화롭게 앉아 있던 돌부처에게 시련이 시작됐다.


▶첫 총독 데라우치는 토함산에 올라 석굴암을 둘러보고 대대적인 보수를 지시했다. 창건 후 처음 석굴암을 해체한 뒤 다시 정비하는 큰 공사가 1913년부터 3년 동안 벌어졌다. 일제는 석굴을 보호한다며 콘크리트로 두께 2m의 외벽을 세웠다. 공사가 끝나자 석굴 안에 물이 차고 이끼가 끼기 시작했다. 일제는 증기를 뿜어 이끼를 씻어냈다.


▶석굴암 보존·관리는 해방 후에도 골칫거리였다. 1957년 “펄펄 끓는 수증기 세례에 다박솔로 문질러댄 석굴암”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증기 세척을 하청받은 업자가 ‘한 자(尺) 이상 떨어져서 너무 뜨겁지 않게’ 하라는 작업 원칙을 전혀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또 한 번 석굴암 보수공사를 하기로 했다. 1963년 습한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석굴 앞에 목조건물을 만들었다. 그래도 습기가 없어지지 않자 에어컨을 설치하고 관람객의 내부 출입을 금했다.


▶그 보수공사 때 책임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입구 양쪽 팔부신중(八部神衆·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 가운데 맨 앞 한 쌍만 90도 꺾여 있는 것이 원래 모양이냐, 아니면 일자(一字)였던 것을 일제가 첫 보수 때 꺾었느냐는 논쟁이었다. 결국 당시 중앙감독관이던 황수영 박사의 주장에 따라 꺾인 부분을 바로 폈다. 그런데 그제 성균관대 박물관이 공개한 첫 보수공사 직전의 석굴암 사진을 보면 원래 90도로 꺾여 있다.


▶석굴암은 인도 아잔타, 중국 돈황·운강·용문 석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 석굴사원이다. 1909년 전문가로는 처음 석굴암을 둘러본 도쿄대 교수 세키노 데이(關野貞)는 “동양 무비(無比·비할 데 없음)의 작품”이라고 찬탄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올라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광창(光窓) 존재 여부를 비롯해 석굴암이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길이 10m의 돌을 자르면서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던 신라시대 조상님께 죄송스럽기만 하다.

이선민 논설위원 smlee@chosun.com   조선일보   2007.09.18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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